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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산림자원)교수 6일 강릉서 '소나무와 한국인의 삶' 강연
강릉생명의 숲 특별강연 [강원일보 2005-12-05 00:12] 강릉생명의숲(공동대표:박양자 심상우 목영주)과 한국산지보전협회(회장:김성훈)는 6일 오후7시 강릉시청 2층 대강당에서 `백두대간 보전과 우리 소나무 살리기' 특별강연을 갖는다. 이날 소나무연구로 유명한 전영우 국민대교수가 `소나무와 한국인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이애주 서울대교수의 `소나무 살림의식-소나무춤' 공연도 함께 펼쳐진다. 강릉생명의숲 관계자는 “소나무재선충병으로부터 백두대간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참여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며 “우리 지방의 소나무는 우리가 지킨다는 소나무 사랑 자존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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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스타]"은경 선배 연기력 뛰어 넘을래요"
[세계일보 2005-12-01 17:21]연기자 신은경(23)이 영화 ‘결혼 원정기’로 인기 급상승하고 있다.그런데 신은경이 ‘결혼원정기’고, ‘인기 급상승’이라니 ‘혹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어볼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원정기’의 신은경은 ‘조폭마누라’의 신은경과는 다르다. 영화상에서 유준상(희철)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아름다운 우즈베키스탄 여인’ 알로나가 그다. 그는 그 영화에서 희철에게 진실한 사랑을 주는, 그래서 끝내 희철과 맺어져 한국에서 살아가는 역할을 맡았다.“신은경 선배와 이름이 같아 많은 도움이 돼요. 하지만 연기자 개인으로 봐서는 어려움도 많지요. 열심히 노력해 신은경 선배를 뛰어넘는 연기자가 될 겁니다”. 그는 현재 국민대 연극영화과 4학년에 재학중이다.아주 선한 반달형 눈매가 돋보이는 그는 이번 영화로 인해 인기스타로의 대열에 성큼 뛰어든 느낌이다. ‘나의 결혼원정기’ 홈페이지에 ‘알로나가 누구냐’,‘무척 관심이 간다’,‘혹 우즈베키스탄 배우는 아니냐’는 등의 글이 연일 오르고 있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때는 팬들이 영어로 접근해 사진 좀 찍자고 하더군요. 제 연기가 리얼했다는 뜻이죠. 무척 기뻤어요.”실제로 신수경은 지난 여름 우즈베키스탄 출장 전에 3개월 가량 러시아어를 익히며 자신의 ‘제3 외국어’로 만들었다. “외국어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영어와 러시아어가 서로 통하거든요. 현지에서는 러시아로 조금씩 회화도 했어요.” 그는 2004년 MBC 31기 탤런트로 입사했다. 이미 봉은중과 진선여고 때는 연극부에서 활동하며 탄탄한 연기의 틀을 만들기도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인생이 지표’라는 신은경은 “최근 ‘나의 결혼원정기’로 인해 TV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기뻐했다. ◇ 프로필 생년월일=1982,10,17 출생지=서울 키=172㎝ 몸무게=50㎏ 데뷔=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 학력=국민대 연극영화과 재학중 꿈=영문소설작가 글 황용희, 사진 이재하기자 hee7@sportsworldi.com
200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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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건설산업 박청일 대표, 명품으로 도약 / 동문 (경제 14회)
[한경 주거문화대상] 아파트브랜드 부문 : 동양건설산업 '파라곤' [한국경제 2005-11-29 14:24] 브랜드가 주거상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비중있는 요인으로 부각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양건설산업의 '파라곤'(Paragon)은 단 기간에 유럽풍 고급 아파트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파라곤은 '완벽함의 극치,걸작,100캐럿 이상의 완전한 금강석'을 의미하는 말로 최정상의 주거공간을 의미한다.파라곤의 선호도와 인지도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동양건설산업의 차별화된 고급화 전략 때문이다.이 회사는 많은 주거상품을 공급하기 보다는 독특한 외관과 새로운 공간을 갖춘 고급 상품을 선별해 공급하는 데 주력해왔다.2000년 들어 주택사업을 강화하면서 파라곤 브랜드를 적용해 선보인 '논현 파라곤'을 비롯해 이후 '정자 파라곤' '목동 파라곤' '대전 파라곤' 등은 모두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인정받고 있다.또 파라곤의 브랜드 가치는 철저한 품질관리에서 나오고 있다.동양건설산업은 사업부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최상의 상품이 나올 수 있는 곳만을 선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검토 부지 중 1%만 최종 선택한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다.오재순 동양건설산업 팀장은 "시공에서도 1%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회사의 철학"이라고 강조했다.동양건설산업은 지난 7월1일자로 동양고속건설의 건설사업 부문과 운수부문이 각각 동양건설산업과 동양고속운수의 두 개 회사로 분할되면서 만들어진 회사다.회사 분할 후 전문화된 사업부문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돼 더욱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객의 꿈이 담긴 명품 브랜드로 거듭나겠습니다."박청일 동양건설산업 대표는 동양 파라곤을 최고의 주택 브랜드로 인정해준 데 대해 무한히 감사하다며 이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어떤 상황 속에서도 고객에게 주거 명품만을 선사하겠다는 회사의 목표를 묵묵히 실천해준 임직원 모두에게도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박 대표는 파라곤이 짧은 시기에 주거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7년간 한결같이 실천해온 '빠르기보다는 바르게 성장하겠다'는 경영 이념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다른 건설사처럼 많은 광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단지 외관과 차별화된 테마공원 및 부대시설,명품 인테리어 등이 값진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박 대표는 브랜드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일관된 품질에 혁신을 더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앞으로도 이 같은 원칙을 충실히 지켜 파라곤 브랜드가 붙은 상품은 언제나 최고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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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환갑 지나 사업재미에 푹 빠졌죠
[매일경제 2005-11-19 08:32] 한국에서 아파트 전문기업으로서 입지를 어느 정도 다졌다고 판단해서 몇 년 전부 터 눈을 외국으로 돌리기 시작했다.국내 부동산 경기는 정부 정책이나 시장 트렌드에 따라 부침이 크기 때문에 건설회 사 경영인은 많은 리스크를 안고 사업에 나서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 등 여러 곳을 기회 있을 때마다 휴일 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돌아다녔다. 하지만 항상 마음 속에 남는 것은 우리가 안주 할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2003년 우연히 지인과 함께 카자흐 스탄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옛 소련권이면서도 풍부한 자원 매장량과 정치적인 안정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해 우리가 투자하기에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투자를 섣불리 하기에는 우리가 카자흐스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토지계약을 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꾹 참고 1년여 동 안 시장조사와 카자흐스탄 내부 정세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 기간에 카자흐스탄 손님을 우리나라에 초대해 본사가 지은 경기도 용인 구성 아 파트단지, 천안 불당 아파트단지 내 스포츠센터, 조경시설, 기타 여러 공용시설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하고 그들 느낌을 느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 동안 한국에 다녀간 카자흐스탄 주요 인사들은 족히 100명이 넘을 정도였다. 이 를 통해 카자흐스탄에 '동일하이빌'이라면 소비자들이 충분히 좋아하고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해 8월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위에서는 카자흐스탄이란 나라는 투자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말리는 사람 이 동조하는 사람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39년생인 필자는 50대 후반에 주택업계에 뛰어든 열정으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동일하이빌 아파트의 우수성을 충분히 알릴 수 있다는 자부심과 도전정신으로 과감하게 선택했다. 선택과정에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이루고 오직 카자흐스탄 사업에만 몰두했다. '현 실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선택을 통한 제2 도약이냐'는 기로에서 과감히 고통과 도 전을 택했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과 모험의 연속이 아닌가. 카자흐스탄은 지금까지 다녀본 동남아 국가보다는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구비돼 있고 제도적으로도 시작과 끝이 보이는 예측 가능한 시장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토 지를 취득하고 인허가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긴장된 순간은 지난해 12월 나자르바 예프 대통령 앞에서 직접 사업설명을 할 때였다. 카자흐스탄에서 건설업계 1ㆍ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사업설명을 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도로 부문과 건축물에 대한 수정 지시를(대통령은 건축에 관련된 업무를 수행 한 경험이 있음) 내리는 것을 보고 우리도 지적을 많이 당하겠다는 불안감을 가지 고 프레젠테이션에 임했다. 현지 국영방송이 생중계하는 상황에서 하는 프레젠테이션은 긴장감과 두려움을 떨 치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로 우리가 한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천천히 설명해 나갔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대통령 입가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아무런 수정도 없이 배석한 참모와 카자흐스탄 현지 건설업체 간부들에게 "앞으로 집을 지을 때는 동일하이빌처럼 지어라"며 즉석 훈령을 내리는 게 아닌가. 감격적 인 순간이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대통령궁 앞에 경제특구 내에 세워질 동일하이빌은 이렇게 태어났다. 지금 현지에서는 동일하이빌을 만나려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 말 한마디 가 공문서화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자흐스탄 시장에서 짜릿한 첫 경험을 겪으면서 '바로 이런 것이 사업하는 묘미구 나'라는 생각도 든다. 동일하이빌은 총 계약분 3000가구 가운데 1차분 389가구(20~120평형)에 대해서는 지난 9월 분양을 시작해 현재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진출은 사업적으로나 국익 측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집을 짓는다는 것에서 벗어나 가능하면 카자흐스탄에 도움을 많이 줄 때 우 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 카자흐스탄 연평균 소득은 3000달러 정도지만 1만달러가 넘는 소득계층도 많 다. 그들에 맞는 문화에 적합한 아파트를 만들고 싶다. 현재 그곳은 이자율이 연 1 4~15%대에 이르고 투자수익률은 20% 이상이다. 토지이용료가 상승세고 자재값도 오르는 추세여서 건축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당연 히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는 동일하이빌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국내 투자자들을 모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펀드를 가지고 내국법인을 만들어서 운영수익을 국내에 송금하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임대효율을 따지자면 최소 10% 정도는 보장할 수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분 석한다. 이로 인해 집중되고 있는 부동산 투자와 투기도 분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 다. 개별투자와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카자흐스탄에 투자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닌가.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양국이 상생할 수 있 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번 카자흐스탄 진출을 계기로 앞으로 우즈베키스탄이 나 키르기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에도 적극적으로 동일하이빌이란 브랜 드를 형성하고 한국 주거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 구한말 한민족의 강제이주라는 한(恨)이 맺힌 중앙아시아에 이제 고급아파트를 수 출하면서 배달민족의 저력을 과시하고 싶다. [고재일 동일토건회장]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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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암살자 홍종우와 김옥균, 과연 누가 옳았는가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조재곤/푸른역사 19세기 말 개화기의 조선이라는 시공간은 100년도 넘는 과거지만 지금도 끝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거기서 시작된 개방과 자주(自主)의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세가 발톱을 세우고 조선을 노리던 이 시기,왕권은 무기력했고 관료들은 비겁했다. 조정은 일본파,청나라파,러시아파 등으로 갈려 외세의 역학관계에 따라 출렁거렸고 어지럼증을 앓았다. 이같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일단의 혁명가들이 등장한다. 개화사상으로 무장한 이들은 갑신정변(1894년)이라는 쿠데타에 자신들의 운명을 던진다. 그러나 거사는 ‘3일천하’로 끝난다. 일본으로 도피한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1994년 청나라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암살당한다. 김옥균의 몸에 3발의 총탄을 박아 넣은 이는 조선인 홍종우였다. 종래의 역사는 김옥균을 ‘근대화의 선각자’로 평가하되 홍종우를 ‘근대화를 가로막은 수구파’로 규정했다. 19세기 말 조선 내부의 갈등을 개화파와 척사파의 양자구도로 보던 관점에서 이같은 평가는 당연시 되어왔다. 그러나 홍종우가 왜 김옥균을 쏘았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해 나간 이 책은 홍종우를 개화파의 일원으로 편입시킨다. 그리고 홍종우의 김옥균 암살을 개화파와 척사파의 갈등이 아니라 개화파 내부의 갈등으로 본다. 김옥균이 외세의존적 근대화를 추구했다면,홍종우는 자주적 근대화를 지향했다. 개화기 조선의 갈등양상을 이분법으로만 보던 우리들에게 이 책은 또 하나의 갈등축을 제시하며,그 새로운 축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홍종우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홍종우는 김옥균에 비해서 덜 알려졌다. 명문가의 자제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김옥균과는 달리 홍종우는 벽촌의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개화사상에 눈뜨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90년 프랑스로 건너가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 된다. 그로부터 3년에 체류하면서 그는 볼테르의 사상을 흡수하며 근대화의 열망을 키워갔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근대화는 김옥균과는 방법을 달리 했다. 둘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김옥균이 일본 망명 시절,단발을 하고 이와다 슈사쿠로 개명한데 반해 홍종우는 파리 체류 시절 늘 한복을 입고 다녔다. 김옥균은 일본을 조선의 나아갈 모델로 보고 일본의 도움을 받아서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했었으나,홍종우는 서구 문명을 익히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제국주의의 야심을 경계했다. 둘 사이의 이같은 차이가 과연 암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를 가져올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책의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다만 주체적 근대화를 위해서 왕권 강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홍종우의 눈에 일본을 끌어들여 왕권을 뒤집으려고 노리는 김옥균의 존재가 위협적이었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외세의존적 개화파에 대한 홍종우의 시각이 어떠했는지는 후에 보부상 조직을 이용해 개화파의 근거지였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김옥균 암살사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격랑의 개화기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간 두 지식인,김옥균과 홍종우의 일생을 흥미롭게 복원해냈으며,각각 개화파와 자주파를 대표하는 두 인물의 삶과 생각을 교차시키며 당시 조선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둘 중 누가 옳았는가?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2005-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