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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국민대 웹진 uniK vol.9 - 투데이이슈]땅콩집, 주거의 개념을 일깨우다






유치원 어린이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신기하게도 삼각형 지붕을 얹은 네모꼴 단독주택을 그린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만 자라난 아이들도 예외가 없다. 유치원 아이들의 그림이 보여주듯 집이란 것의 상식은 네모난 단독주택이다. 그러면 단독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건물과 마당이 한 세트라는 점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상식대로의 집’은 그러니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인 것이다. 그러면 이 집이란 것은 누가 설계해야 할까?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건축가다. 그리고 집은 비싸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10년쯤 열심히 일하면(물론 빚을 얻어야 하지만) 살 수 있어야 한다. ‘집’이란, 의식주 가운데 하나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상식대로라면 집이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며, 설계 전문가인 건축가가 설계해야 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가족끼리 즐겁게 살면서 추억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도통 먹히지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90년대 이후 아파트가 주거의 표준이 되면서 단독주택이 드물어지면서 단독주택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많아졌다. 사실 아파트가 나쁜 주거형태는 아니다. 한국처럼 땅이 좁은 나라에서는 가장 유용한 주거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는 생활쓰레기 등을 집단 관리하고 공용 공간이 많아 실은 단독주택에 비해 친환경적인 면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주거형태가 아파트로 획일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파트는 비인간적인 형태의 집이라고 생각하며 싫증을 느끼거나 폄훼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마음 같아서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단독주택으로 선뜻 집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집 주인이 늘 집을 손봐야 하니 불편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살기에 좋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돈이 많이 들어 평범한 서민들로서는 꿈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땅콩집’은 이러한 통념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였다. 쉽게 말해 단독주택은 결코 짓는 데 많은 돈이 들지 않으며, 살기에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 10년쯤 일해서 모은 돈(대출까지 받아 3억 원 정도)으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단독주택이지만 춥지 않고 유지관리비가 적은 집을 지어 보이자는 것이었다.






일반 서민들의 단독주택은 건축가가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업체가 대부분 설계와 시공을 겸하게 된다.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길 경우 설계비가 비쌀까 걱정해서다. 그러나 꼭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한편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생각하는데, 이것 또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다. 지금 25평 아파트에 살면 25평 크기 정도의 단독주택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좁더라도 마당이 있으면 된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마당이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마당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마당은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공간이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곳이 바로 마당이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모아 내가 꿈꾸는 그림 같은 집을 지으려면, 언제가 될지 모를 일. 돈을 버는 데 성공해 멋진 집을 짓더라도 아이가 이미 다 컸다면 무슨 소용일까. 단독주택은 어른들에게는 아파트보다 불편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집이다. 아파트는 반대로 어른들에게 편리한 대신 아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집이다. 흔히들 반대로 행하고 있지만,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단독주택에, 아이들이 자라면 아파트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주거형태일 수 있다.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 자기가 가진 만큼 작으면 작은 대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자’는 것이 바로 ‘땅콩집’을 실현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친구와 함께 의기투합해 각자가 잡은 예산은 3억이 마지노선이었다. 2억쯤 되는 돈에 1억쯤 빌리면,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지을 수 있다. 문제는 땅값. 서울에서는 3억에 땅도 사고 집도 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경기도를 골랐다. 하지만 경기도 일대 땅값도 평당 400만원을 훌쩍 넘긴다. 마당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니까 단독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땅은 30평 이상이어야 했다.
땅콩집이 조금 특별했던 것은, 이렇게 가구당 3억 원대에 단독주택 짓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두 집이 마당을 공유하기로 한 점이었다. 단독주택을 짓고 싶은데 땅값이 비싸 돈이 모자라니 두 집이 함께 짓는 것이다. 땅을 사서 건물을 두 채 짓고 마당을 함께 쓰는 것이다. 집 한 채에 두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은 두 채인데 마당이 하나인 셈. 아파트 옆집과 마당을 함께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만 생소할 뿐 외국에선 ‘듀플렉스’라고 해서 아주 흔하다. 듀플렉스가 껍질 하나에 알맹이 두 개가 들어있는 땅콩처럼 한 필지에 집 두 채가 나란히 붙어 있으니 ‘땅콩집’이라고 불러보자고 우리가 만들어낸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땅콩집에 대해 흥미로워하는 동시에 오해하는 부분이 ‘목조주택’이란 점이다. 왜 목조주택으로 했나? 콘크리트로 짓든, 철로 짓든, 나무로 짓든 시공비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 중 가장 단열이 잘 되는 소재가 나무다. 단열이 잘되면 유지비가 적게 들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겨울에는 따뜻하다. 가장 시공이 빠른 소재 또한 목조다. 콘크리트처럼 굳히는 기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가장 친환경적인 소재이기도 한데, 콘크리트나 철처럼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 에너지가 소비되거나 탄소가 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콩집은 목조로 지었고, 집을 짓는 데는 단 6주가 걸렸다.



흔히 목조주택이라고 하면 대부분 통나무집을 연상하는데 이 또한 편견이다. 건축에서는 뼈대가 목조이면 목조주택이라고 한다. 집의 껍데기, 즉 내벽이나 외벽의 경우만 목조가 아닌 다른 재료를 선택한다 할지라도 이 집은 목조주택으로 분류된다. 나무로 뼈대를 시공한 뒤 벽돌집이 좋으면 벽돌로 벽을 만들면 되고, 시멘트 패널이든 돌이든 철제 판이든, 붙이고 싶은 재료를 붙일 수 있다.

국내에는 목조주택이 적은 까닭에 이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이 같은 개념으로 볼 때 외국,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단독주택은 전체의 90%가 목조주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관만 봐서는 나무집인지 전혀 알기 어렵다. 실제 살아보니 유지비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땅콩집은 실 평수 48평이지만, 32평형 아파트에 살 때보다 전기 난방 요금이 오히려 더 적게 나온다는 것이 그 예다.

일본의 경우 면역력이 떨어지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학교 건물을 몇 년 전부터 콘크리트 건물에서 목조건물로 바꾸기 시작했다. 콘크리트가 아토피에 나쁘다는 주장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콘크리트가 마모되면 생기는 분진 안에는 크롬 성분들이 들어있는데 몸 안에 들어가면 체내 면역세포들이 크롬 성분을 기억해, 생활하면서 크롬에 자극을 받게 될 때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 또 예전에는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와 자갈모래를 섞어 만들었지만 요즘에는 자갈모래 대신 페자재를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자갈모래를 너무 무분별하게 채취해 환경보호 측면에서 채취를 막았는데 피부 질환이나 아토피 같은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콘크리트는 나무보다도 훨씬 수분을 잘 빨아들여 장마철에는 곰팡이가 핀다.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수준을 다 흡수해 집 안이 더 건조해진다. 아토피에는 수분 보퉁이 중요한데, 가습기를 틀어도 그 수분을 콘크리트가 보이지 않게 계속 빨아들이니 효과가 떨어진다. 목조주택은 이런 점에서 콘크리트보다 유리하다.

땅콩집은 ‘상식대로 지은 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로운 공법이나 철학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땅콩집에 사회적 관심이 뜨겁고, 동시에 잘못된 인식도 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집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많았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마당에서 가족과 함께 평생 공유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땅을 밟고 살아가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면 단독주택을 망설이지 말자. 단독주택은 결코 짓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고, 살기 불편한 집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중산층 누구나 지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할 지 의외로 깊게 생각지 못한다. 우리 아파트 시세가 얼마인지, 앞으로 재개발이 될 것 인지에는 관심이 많아도, 다락방이 있으면 어떤 재미가 있을지, 올 가을 마당에 심어놓은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릴 열매들을 누구와 나눌지, 가족 모두가 함께 자기 집 페인트칠을 하는 재미는 어떤 것일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집의 상식에 대하여. 어떤 집에서 우리 가족의 추억을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