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하계 SGE 프로그램] 베이징, 7일간의 중국미술 체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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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나라 중국. 그 중심부 수도 베이징(北京)에 국민대학교 미술학부가 떴다. 하계 SGE(Sungkok Grobal Exposure)프로그램에 미술학부 입체미술전공 15명이 선발된 것. 이를 계기로 베이징 중앙민족대학교 미술학부 학생들과의 교류를 위해 하계 방학이 시작된 날부터 비행기에 올라타기까지 입체미술전공 학생들의 노력이 계속 되었다. 학생 주도하에 탐방 계획을 짜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미술의 핵심을 알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공부했다. 그러기를 두 달. 8월 17일, 드디어 출국날이 다가왔다. 이제 그 체험기가 시작된다! 체험을 시작하기 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사항에 학생들과 같이 신경 써 주신 이웅배 입체미술전공 주임 교수님. 중앙민족대학교와의 미술교류에 대해 교수님께 짧은 질문을 해보았다.
Q. 미술교류로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교를 선택하게 된 계기?
8월 17일 오후 2시. 우리는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에 내려 숙소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15명의 학생들과 교수님 한 분, 그리고 통역사 한 분을 동행했다. 수도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공항철도로 이동하는 순간, 베이징의 더위와 냄새가 코끝에 느껴졌다. 퀘퀘하지만 익숙한 냄새에 한국과는 다른 이 낯선 나라에서의 7일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입체미술전공 학생들 모두 공항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후 2시간이 넘는 긴 입국절차와 이동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중앙민족대학 근처 ‘백년가일’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초 계획과 비슷하게 숙소 근처 15명이 모일 수 있는 식당을 찾아 O.T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7일간의 일정표를 다시 한번 숙지하고, 교류 프로그램 동안 중국미술의 다양함을 보고 느낄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무사귀환을 위한 약속과 규칙을 통보받았다.
8월 18일 오전 8시 30분. 숙소에서 5분거리에 있는 중앙민족대학교 미술대학으로 이동했다. 이 교류에 큰 힘을 써 주신 조선족 박춘자(朴春子)교수님과 고윤희(高润喜)부학장님이 아침 일찍부터 우리를 반겨주셨다. 우리는 차가 미리 준비된 강의실에 앉아 중국의 소수민족 미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중국의 현대(근대)미술은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930~40년대 유럽의 영향을 받았던 시기, 그 후 1940~50년대 소련의 영향을, 1950~60년대 미국, 독일등의 작품에 영향을, 1960~8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평등사상과 선전적 미술이 성행하던 시기와 현재에 이르러 국제화, 개성화 된 현대미술시기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이후 소수민족미술을 주제로 한 강의가 진행되었다. 중국의 넓은 대륙 특성상 작가의 다양한 출신지역으로 인해 중국의 현대미술은 매우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소수민족인 티벳과 내몽고지역의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이 흥미로웠다. 소수민족 출신 작가들은 현대미술 이전부터 자기 민족이 중요시 하는 토테미즘 사상을 강조하는 그림과 조각을 그려왔다. 그것이 현대에 이르러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漢)족 출신 작가들도 현재에는 티벳, 내몽고, 위구르 등 소수민족의 전통 그림과 조각에 관심이 많다. 강의를 마치면서 두 분 모두 ‘현대미술은 작가의 생각이 작업의 중요한 기반이다.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를 강조하셨다. 오전과 오후, 두 강의 사이 잠깐의 휴식시간동안 중앙민족대학교 미술학부 학생들과 캠퍼스 투어를 했다. 캠퍼스의 규모는 한국보다 훨씬 컸으나, 건물은 사회주의국가의 건축디자인처럼 일렬의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예술과 관련된 건축물은 중국 전통의 색이 항상 깃들어 있었다. 이 점이 중국 대학교 건축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중국의 소수민족과 현대미술 강의로 인해 현재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있는 날이었다. 한국, 작지만 강한 이 나라에서 예술가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중국이라는 큰 나라로의 예술적 침투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질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중국의 798 예술특구는 마치 우리나라 홍대거리와 삼청동을 합쳐 놓은 것 같다. 1970년대 중국 최초로 원자탄 부품을 생산한 공업공단이 었었고, 베이징의 근대화를 이끈 곳이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과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공장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정부에선 이곳을 전자타운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비워놓게 된다. 그러다 1990년대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를 찾아 모여들면서 예술촌이 형성되었고, 현재에는 중국정부에서 600억원의 예산을 별도로 배정해 예술문화산업특구로 공식 지정해 베이징의 ‘소호’라고 불리운다. 이곳은 자로 잰듯한 곧고 깔끔한 거리가 눈에 띄며, 형형색색의 조각품과 공예품이 넘쳐난다. 또한 이곳은 보는데만 하루가 걸릴 정도로 갤러리들이 무수히 많다. 8월 19일 오전 10시. 9시부터 1시간 반 동안의 지하철, 그리고 버스 이동 끝에 우리는 798 예술특구에 도착했다. 중앙민족대학교 학생들의 도움으로 ‘Asia Art Center’와’Ullen Center for Contemporary Art’, ’PYO Gallery’등 예술구 곳곳의 다양한 갤러리들을 무료로 볼 수 있었다. 학생증 제시만으로 무료관람인 곳이 많았고, 한국 젊은 작가 초대전도 많았다. 한국 화랑이 중국 곳곳에 진출해 있었다. 새삼 한국 화랑들의 발빠름에 놀랐다. 798 예술특구의 날씨는 정말 더웠지만, 길거리 재미난 그림이 많아 더운 줄 몰랐던 하루였다. 거대한 예술특구를 보면서 '여기가 바로 베이징 미술의 심장부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나라의 삼청동 거리가 떠올랐다. 두 곳을 비교해 보며 중국의 경이로운 크기에 놀랐다. 어찌면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을지도 모른다. 이번 SGE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시장의 크기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남은 중국에서의 4일 동안 더 많은 깨달음을 얻어가길 바라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송장 예술구는 베이징 외곽에 위치했다. 이곳은 798 예술특구와는 다르게 조금 더 시골스러운 분위가 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같은 곳이라고 한다. 원래 농촌이었던 마을에 199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해 현재에는 4000명 가까이 되는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가지고 주거생활을 하고 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도예, 연극, 무예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8월 20일 오전 9시. 우리는 숙소 앞에서 한국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송장 예술구로 이동했다. 송장 예술구에 도착하니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국중미술관’과 ’송장미술관’을 관람했다. 두 갤러리는 여러 학술적인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현대미술 작품과 중국의 전통적인 작품인 서예, 동양화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북한의 사실주의 회화작품도 관람할 수 있었다. 중국의 더운 날씨로 인해 국중미술관 관장님께서 미술관 아래 와인창고를 구경할 수 있게 해주셨다. 이 와인창고는 전쟁당시 방공호로 지어진 것을 개조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 현대미술 아래에 숨쉬는 역사의 흔적이 신기했다. 송장미술관은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작품만을 전시하는 갤러리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비슷한 높이와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어진지 10년이 채 안된 건물이었고, 작품과 작품간의 간격이 매우 컸다. 그 만큼 작품이 적었다. 그러나 키네틱, 영상, 조각, 회화, 설치등 다양한 방식의 작업이었다. 전시관을 지키고 있는 도슨트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근처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들이었다.
그 후 우리는 미술대학을 졸업한 젊은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 보았다. 평범한 크기의 작업장과 작업대를 가진 작가였다. 특이했던 점은 재료의 물성에 더 초점을 두고 조각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개념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보다 재료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더 의미를 두었다. 우리가 설치미술이나 개념적인 작업보다 작업물 자체가 일반인이 봤을 때도 작품처럼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가와의 대담 후, 우리는 송장 예술구 근처 목조 가옥을 방문했다. 가옥의 주인은 이웅배 교수님의 지인 작가였다. 이 가옥은 청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손님이 왔을 때 차를 대접하는 곳으로 쓰인다고 했다. 100년이 더 된 가옥에서 느껴지는 나무 냄새와 아름다움 덕에 차맛이 더 좋았졌다. 차 한 잔의 휴식을 끝으로 송장 예술구 탐방이 끝났다. 너무나 큰 규모에 온종일 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했지만, 그만큼 중국미술을 한층 더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8월 21일. 36도가 넘는 엄청난 중국 더위와 싸움 5일째, 매일 아침 9시 전에 이동하던 것을 오늘만큼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오전은 팀 별로 휴식과 자유시간을 가지고, 오후에는 중앙민족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용안리역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각자 자유로운 드로잉 시간을 가지고 중앙민족대학교 학생들과 한국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5시 한국문화원 지하 1층에서 문화원 주최로 열린 전시 오프닝에도 참석하였다. 단아한 한국 현대 도자기와 자유로우면서도 공감각적인 한국 현대 평면미술을 관람하면서, 중국미술과의 차이를 중앙민족대학교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았다. 전시 관람 후 전시의 주제<텅 빈 충만: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으로 중국학생들과 함께 토론하였다. 현대미술에 대해 토론하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개성있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전통'이라는 매체를 중시하므로써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미대를 진학할 때 동양화보다는 디자인, 회화를 선호한다. 그러나 많은 수의 중국 미대생들은 중국화를 전공으로 선택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중국에서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8월 22일.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중국의 특성상, 우리는 점심과 저녁을 중앙민족대학교 학생들과의 토론시간으로 잡았다. 마지막 날이니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문화와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소수민족으로서 현대미술 안의 소수민족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함께 교류하며 서로를 어떻게 알아갈지에 대해 토의하였다. 토의는 식사를 하는 동안도 계속 되었다. 서로가 자신의 나라 미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한 주제당 4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토론하면서, 첫째 날보다 친해진 스스로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문화, 미술, 교류, 한류열풍과 중국 등 그 외 여러가지 일상적인 주제로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다. 모든 토의가 끝난 후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돌아간 후에도 연락할 것을 다짐했다. 돌아온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 날 서로 깊게 이야기한 덕분에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현재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연락을 하고 있고, 다시 또 만나기 위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지원할 생각이다.
8월 23일. 7일간의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위해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을 찾았다. 이제 막 중국의 더운 날씨, 큰 규모, 그리고 신기한(?) 위생관념에 적응했기에 다들 아쉬워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중앙민족대학교와의 미술교류가 잘 성사되어 양학교간의 작은 미술교류전 계획이 진행중이다. 우리의 미술교류는 성공적이었으며 중국 소수민족의 미술뿐만아니라 현대미술,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짧지만 강렬하게 알게 되었다. 중앙민족대학교 학생들이 매일같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 덕분도 있고, 미술교류를 위한 양쪽 교수님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기 전 각자 드로잉북을 준비해 7일간 중국에 대한 기록을 그림과 글로 표현했다. 이로인해 미술학부 입체미술전공 15명 모두가 다른 예술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다. 곧 만들어질 각양각색의 15개의 작품이 기대된다. 그리고 가기 전 영상제작부를 2명 선출하여 우리가 생활한 것을 영상으로 담았다. 중국체험으로 인한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가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든 것이 결과물로서 만들어 질 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7일간의 체험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 더 많은 교류를 위해 힘쓸 것이다. 곧 진행될 작품전과 영상전에 여러분이 놀러왔으면 한다. 경이로운 나라 중국. 그 곳에 우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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