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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D프린팅 업계가 주목하는 청년사업가, 이형경

 

청춘은 바쁘다. 매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딛는다. 그러한 일상이 때론 버겁고, 힘들며, 고단하다. 그러나 여기 그조차 기쁘고 행복하다 자신 있게 말하는 국민*인이 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어 제법 견고하게 자신의 회사를 건설해가고 있는 젊은 CEO, 경제학과 이형경 학우가 그 주인공이다. 전공과도 연계 없는 3d프린팅이란 무지(無地)의 분야에 거침없이 돌진해 차근차근 성공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Q. 본인 소개와 대표직을 맡고 계신 ‘3d one’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민대 경제학과에 재학중인 이형경입니다. 3d프린팅 플랫폼 회사인 3d one의 대표이자, 마찬가지로 3d프린팅 관련 회사인 3delight의 교육 팀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엔 한국 3d프린팅 협회 교재 집필진에 선정되어 바쁘고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3d one은 3d프린팅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여러 고등학교와 대학교 등에서 3d프린팅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이러한 교육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모아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 있습니다.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다소 생소하실 수 있겠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 3d프린팅 제품들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사느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시장가격이 명확히 형성되어있지 않은 것이죠. 저희가 구축하고자 하는 플랫폼은 그런 틀을 일컫습니다. 예를 들어 3d프린팅 컵을 만들고자 할 때 국민대학교 근방에서 3d프린팅이 가능한 곳은 어디이며,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끔 자료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3d프린팅 제품의 의뢰가 들어오면 제작도 하고 있습니다.

 

Q. 3d 프린팅은 아직 보편화되어있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남다른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나요?

몇 년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취업준비생의 입장이었어요. 경제학과다보니 자연스레 관련 업종인 은행권을 목표로 했는데, 유명 은행의 서포터즈 활동도 하고 직접 스터디도 만들어 준비했을 정도로 열심이었죠. 하지만 주위의 취업한 지인들이나 대외활동에서 마주한 은행원들의 업무를 보니 ‘매일 같은 일,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겠구나.’ 싶었어요. 갑자기 목표가 흐려지는 기분이었죠. 그러던 중 친구에게 우연찮게 3d프린팅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얼핏 들었지만 ‘이건 뭔가 특별하다’는 감이 왔어요. 3d프린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87년 특허가 난 꽤 오래된 기술이고,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3d프린팅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고요. 낯설지만 그만큼 구미가 당겼어요. 놓칠 수 없는 사업아이템이다 생각하고 창업을 준비하게 되었죠.

 

 

Q. 학과와의 연계성도 떨어지고,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당시의 저는 3d프린팅에 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으니까요. 무작정 3d프린팅 회사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어요. 회사에서는 4년제 대학이니, 학과니 하는 조건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며 받아주지 않았어요. 단지 조립하는 기술자를 원했죠. 그래서 시급 5천원만 받고 어떤 일이든 하겠노라며 다시 한 번 부탁했어요. 그렇게 3d프린팅 업계에 입문하게 되었죠. 피복을 벗기고 나사를 조이는 단순 노동에서부터 fdm프린팅 장비 만들기, 3d프린팅 출력까지 갖가지기술을 익혔어요. 회사에서 퇴근한 뒤 저녁에는 잠을 쪼개가며 3d프린팅에 관한 해외자료를 공부했고요.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어나 생각을 적어놓곤 했어요. 6개월 넘는 시간동안 쉴 틈 없이 일하고 배우며 참 열정적으로 준비했죠.

 

Q. 창업에 있어서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으셨나요?

물론이에요. 같이 3d one을 만들고 발로 뛰어준 친구와 후배들이 있고요. 국민대 창업교육센터에서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사무실을 구하는데 도움을 받았고 꼼꼼한 상담을 통해 탄탄히 사업기반을 다질 수 있었죠. 창업교육센터의 센터장님과 저희 학과의 장덕주 교수님께 틈틈이 멘토링 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경영학과 백종현 교수님께는 지금과 다른 사업이었긴 하지만, 사업계획서를 들고 가서 신랄한 비판을 들었던 일도 있었어요. 머릿속으로 어림잡아 구성했던 사업이 실질적으로는 다른 양상을 띤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실제 회사들의 경영사례를 말씀해주셨는데, 책과 현실은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제 사업의 뼈가되고 살이 된 가르침이었어요.  

 

Q. 사업 시작 후, 꽤 짧은 시간 안에 큰 성장을 이루었어요. 비결이 있나요?

준비 과정에 공을 들인 게 비결인 것 같아요. 창업을 하기 전 남들보다 더 탄탄히 준비해야겠다는 각오를 했어요. 워낙 모르는 분야이기도 했고 초기시장이다 보니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또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직접 몸으로 부딪혔어요. 컴퓨터 마우스로 쉽게 알아낸 정보들은 쉽게 잊혀지더라고요. 현장에서 일하며 방식과 구동에 대해 확실히 습득하고 출력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해외 리포트를 수 없이 찾아봤어요. 창업에 돌입하기 직전엔 같이 움직일 수 있는 협력소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어요. 협력소와는 서로 교육과 제품 등의 의뢰를 교환하기로 하는 거죠. 덕분에 회사를 차리자마자 일이 들어오더라고요. 들어온 일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 그게 경력으로 쌓여 다른 일을 잡는 기회가 되었어요. 

 

Q. 일이 바쁜 와중에도 현재 국민대에서 3d프린팅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3delightd의 교육 팀장을 맡고 있어 여기저기 3d프린팅 교육을 다녔어요. 그런데 강의를 했던 어느 대학에서 결과가 꽤 흡족했는지 3d프린팅 센터를 건립해 지원해줄테니 운영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가 오더라고요. 놀랍고 대단한 기회였지만 제겐 엄연히 모교가 있고, 더구나 재학중인데 타대학에서 센터를 운영한다는 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몸담고 있는 국민대에서 3d프린팅에 관해 뭘 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해보았죠. 누군가 국민대를 떠올렸을 때 3d프린팅이 특성화된 대학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어요. 일단 동아리를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3d프린팅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일부터 하기로 했어요. 2달 전 신소재공학부 이재갑 학장님의 도움을 받아 12명으로 구성된 소모임을 만들었고, 산학협력expo에 출전 지원한 상태에요. 교내행사도 기획중에 있고, 꾸준히 활동할 계획이에요.

 

 

Q. 그렇다면 청년CEO 이형경의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 싫어요. 6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고, 8시간 혹은 그 이상 근무하고 집에 돌아와서 기절하듯 잠드는 생활도 싫고요.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도 느끼듯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 내내 집중하지 않아요. 피로만 쌓일 뿐이죠. 퇴근 후엔 자기개발도 해야 하는데 지쳐 쓰러지기 일쑤에요. 이런 갑갑한 생활을 벗어나고픈, 저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돈 벌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회사, 팀프로젝트로 근무를 맡겨 공평히 수익을 분배하는 회사, 어찌 보면 막연한 말이지만 이런 이상적인 회사를 꿈꿔요. 그러기 위해서 저도 더 성장해야겠죠. 아직은 많이 모자라요. 모든 직원의 요구를 캐치할 줄 알고 다방면에 능한 CEO가 되어 지금의 꿈을 꼭 실현시키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창업을 준비중인 국민인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취업이 포장된 도로를 걷는 느낌이라면 창업은 황무지에 집을 짓는 것 같아요. 매뉴얼이 없거든요. 주도적으로 일하고 성과를 내고, 책임을 져야 해요. 하지만 힘들게 이뤄낸 만큼 일에서 얻는 만족감은 차원이 달라요. 다만 창업을 했다고 해서 당장 감도 오지 않는 거대한 목표는 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턱도 없이 높은 목표를 잡고 결과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실망하는 건 바보같은 일이에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면 다음 단계가 나와요. 그 단계를 지나면 다음 단계가 나오죠. 그러다보면 저절로 원대한 목표를 향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거에요. 또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창업이든 취업이든 답은 내 안에 있어요. 시간에 쫓겨서 혹은 그저 남들을 따라가느라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뛰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무엇이 내가 원하는 일인지 깊이 생각해보고 마침내 답을 찾았을 때 실행에 옮길 용기만 있으면 돼요.

 

인터뷰 내내 한 회사의 번듯한 대표로 얘기하던 그가 국민*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할 때는 오래 알고 지낸 선배처럼 진심어린 눈빛으로 조언을 보냈다. 사회라는 길을 아주 멀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앞서간 자신에게서 좋은 부분만 떼어 뒤를 따라올 후배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권위도 가식도 없이 내보인 그의 충고와 걱정, 격려와 응원이 국민*인에게 가 닿았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 역시도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며 머지 않은 날에, 가슴에 품은 꿈들을 이루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