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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희 교수(생명나노화학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에 선임
우리대학 성문희 교수(생명나노화학과)가 최근 한림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06년도 제 2회 정기총회에서 신규 정회원으로 선임되었다. 성문희 교수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선임은 일본 교토대학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우리대학의 생명나노화학과에 재직해 오면서 (주) 바이오리더스 대표이사, 바이오신소재산업화지원센터 센터장으로 탁월한 산학협력 및 연구성과를 인정받은 결과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과학기술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석학들을 회원으로 하여 각 부문별 전문성을 활용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기술인 단체로 현재 대정부 정책자문을 비롯해 학술진흥사업, 국제협력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00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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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茶 문화 중흥에 나선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일본의 지인한테서 드라마 ‘대장금’이 아쉬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조선의 다양한 궁중요리를 보여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차(茶)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차밭 대화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다도 종주국 면모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저도 많이 속이 상했습니다.”한국 차 문화 중흥에 나선 김의정(63) 명원문화재단이사장은 혀를 끌끌 차고 만다. 한국의 전통 다례가 있는데도 상당수 다인들이 일본 다도를 추종하는 데다 이를 바로잡을 모처럼의 기회도 날려버렸다는 생각에서다. 국내에선 제사를 드리는 ‘차례(茶禮)’도 차 대신 물이나 술을 올릴 정도로 차 문화가 철저히 망가져 있다. 그는 인사동에 일본식 찻집이 늘어나는 것도 못마땅하다. “다례는 얼이 깃든 전통 문화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찬란한 꽃을 피웠지요.” 다례는 고려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때 ‘고쇼마루’라는 배로 조선 도공과 차 도구를 쓸어갔다. 조선에서 가져간 ‘찻사발’(이도다완·교토 대덕사 소장)을 국보로 삼는 등 우리의 선진 차 문화를 강점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국회에서 ‘국제 차 문화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차 문화가 부흥돼야 21세기 한국의 정신문화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례가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고, 한국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는 날을 꿈꾸는 것은 한낱 망상일까. 세미나에는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국회의원 20여명이 참석해 다례 교육 입법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다례에는 자기 존중, 타인 배려, 자연 사랑, 충·효·열 사상 등 모든 것이 녹아 있습니다. 가정에서 전통 다례가 살아나고, 손님에게 커피 대신 차를 대접한다면 삶의 격이 달라질 것입니다.” ‘다례 사랑’은 모친(명원 김미희·1920∼1981)에게서 물려 받았다. 쌍용그룹 창업자인 성곡 김성곤(1913∼1975)의 부인인 명원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 선사(1786∼1866)가 수행한 해남 일지암을 복원했고, 1970년대 도공과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재를 털어 전통 다례의 맥을 살려 나갔다. 명원은 또 궁중·사원·접빈·생활 다례법을 정리해 국내 최초로 ‘차 문화 학술대회’를 열어 ‘명원다례법’을 발표했다. ‘한국차인회’도 결성했다. 특히 조선의 마지막 상궁 김명길에게서 궁중 다례의 맥을 이어받은 것은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명원은 차 문화 복원에 앞장서고도 그토록 숙원하던 ‘차의 날’(매년 5월25일, 올해 20회) 제정을 보지는 못했다. 김 이사장은 95년 모친의 호를 따 명원문화재단을 만들었다. 과거 부친이 모친을 외조했듯, 김 이사장의 남편 이승원(국민대 재단이사)씨가 곁에서 그림자처럼 돕고 있으니 ‘다례 사랑’의 대잇기 사연이 남다른 셈이다. 김 이사장은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우리 다례의 매력은 ‘소박하고 자연스런 미와 멋’으로 집약된다. 이에 비해 일본 다도는 너무 인위적이다. 그는 국내에 다례를 가르치는 유치원이 늘고 있고 주한 외교사절이나 해외 입양아, 젊은 층들 사이에 다례 열기가 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다례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다례의 참 멋을 안다면 지혜롭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지요. 내년 봄에는 매주 토요일 덕수궁 내 정간헌에서 다례 시연회를 열어 일반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김 이사장은 요즘 서울 신문로 명원문화재단과 성북동 명원다례전수관에서 직접 다례를 전수하느라 쉴 틈조차 없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소녀가 전통 차 문화를 이끄는 ‘다례 여걸’로 변했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출처 : 세계일보 2006.12.14 (목) 17:43
200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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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토목·건축대상 건설인 최우수상 / 정재철(건축) 명예교수
◆제 2회 토목·건축대상 건설인 / 최우수상 정재철 국민대 교수◆"70년대 초고층 건물은 거의 도맡다시피 했어요. 당시 열악했던 기술력에 비하면 요즘 우리나라 초고층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 정재철 국민대 교수는 70년대 초 어려웠던 건설 환경을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빠졌다. 정 교수가 초고층 건물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대인 70년대 초부터 탄생시킨 작품들로는 삼일빌딩을 시작으로 남대문 삼성생명 사옥, 용산 국제빌딩, 부산 롯데월드 등 10여 개에 달한다. 정 교수는 서울 스카이라인 설계의 원조였던 셈이다. 지금이야 서울에 초고층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지만 60~70년대 `개발시대`에 정 교수의 노고가 없었다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정 교수는 "삼일빌딩 구조 설계를 담당했을 당시에는 철골로 건물을 짓는다는 게 생소했고 일본 신일본제철에서 전량 수입해와야 했다"며 "컴퓨터도 사용 못하는 시절이라 수작업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요즘 우리나라 기술력에 대해선 손가락을 치켜든다. 정 교수는 "70년대 국외건설을 하면서 국내 건설사들의 기술력이 향상됐다"며 "실시 설계나 시공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초기 구상 설계는 다소 뒤떨어져 기본 계획은 해외에 의존하는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부산 롯데월드를 끝으로 실무에서 학계로 발길을 돌린 정 교수는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로서 우리나라 건축 교육과 기술 전반에 걸쳐 폭넓게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3~84년 미국 컬럼비아대 토목과 연구교수로 근무했고 92년부터 94년 8월까지 국민대 조형대 학장, 92년 10월~96년 8월 국민대 환경디자인 연구소 소장, 94년 3월~96년 8월 국민대 디자인 대학원 원장, 2002년 3월~2005년 건축대학 학장을 두루 역임한 바 있다. 국민대 재임중 1명의 공학박사 및 14명의 건축학석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학술 분야에선 대한건축학회 이사, 한국강구조학회 이사,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사 등으로 재임한 바 있다. 특히 2000년부터 2년간 대한건축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건축 교육의 질적 개선, 건축 정보의 체계화, 국제 학술 교류, 학회의 안정적 운영 등 성과를 이뤄냈다. 또 대한건축학회 학술상, 한국강구조학회 학술상 등의 수상 경력도 풍부하다. 사회활동으로는 건교부 중앙기술심의위원, 서울시 건설기술자문위원회 위원, 무역회관 건립 구조자문위원, 건설부 중앙설계심사위원, 독립기념관 구조자문위원 등 수많은 공공 프로젝트 건립에 심의 및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GS건설 기술 고문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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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TV `동영상 채널 100개 늘릴 것` / 그래텍 배인식 대표 (금속 86학번)
하루 방문자가 80만 명에 달하는 TV 포털 곰TV가 1일 과학탐구 영역의 이범씨 등 강남의 스타강사 20명이 참여하는 무료 수능.논술강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곰TV를 운영하는 그래텍의 배인식(38.사진) 사장은 이에 대해 "무료 강의는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일정 수준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동영상 채널을 운영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달 중 대학 언론학과 등이 운영하는 100여 개의 채널을 선보일 예정이다. 곰TV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36%)를 차지하는 '곰 플레이어'라는 동영상 재생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배 사장은 "사용자가 만든 동영상(UCC)을 그대로 올리도록 하면 남의 것을 복사하거나 변형한 동영상이 난무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면 사업 기반이 급속히 위축되고 개인에겐 법적 책임이 돌아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 곰TV는 방송사 등 기존 미디어가 제공하는 동영상을 사오거나 전문가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확보한 동영상, 또는 전문가 수준의 아마추어가 만든 동영상(PCC) 을 확보하는데 주력한다. 스타 강사의 무료 강의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됐다. 그는 "무료 서비스인 만큼 동영상 앞에 붙는 광고가 수입원"이라며 "연말께 하루 이용자 100만 명을 넘어서면 일정 수익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해외 진출 계획도 있다. 배 사장은 "일본어판 곰플레이어의 하루 사용자가 25만 명을 넘어 이를 기반으로 내년엔 일본에서 곰TV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국민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등에서 일한 그는 1999년 그래텍에 합류해 200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김원배 기자 [onebye@joongang.co.kr]
200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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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서원의 원형을 찾아서… 한국서원학회 학술대회 / 정만조 (국사) 교수
[동아일보]서원(書院)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엇갈린다. 조선 말 대원군이 당쟁의 근원지라면서 서원을 철폐한 것을 계기로 양반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권력기관이자 사색당파를 재생산하는 지역 거점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본디 서원은 사림세력이 왕권에 맞서 민본정치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거점이었고, 향촌공동체의 도덕적 교화의 중심지였고, 선비들이 강학과 교류를 펼칠 수 있는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 이런 서원의 역설적 면모는 23일 국민대에서 열린 ‘동아시아 서원 연구의 현황과 과제’ 국제학술대회의 여러 발표문에서도 확인됐다. 역사상 서원의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당 현종 때 세워진 ‘여정수서원(麗正修書院)’과 ‘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이다. 이들 기관은 일종의 관립도서관이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서원과 근본부터 달랐다. 그러다 후대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학문 연마의 공간에 서원이란 명칭을 쓰면서 사립교육기관으로 바뀌어 갔다. 또한 서원은 유가의 공간이었지만 불가의 영향을 받아 명산대처에 세워졌고 조직과 강학 형식도 선종의 그것을 모방했다. 서원에서 덕성과 명망이 높은 선비를 초빙해 산장(山丈) 또는 방장(方丈)으로 부른 것도 불가의 영향이다. 송대와 명대에 있어 국가의 견제를 받았던 서원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했지만 반대로 국가의 육성정책 아래 관학(官學)화했던 원대와 청대의 서원은 내실을 기하지 못했다. 중국에 4000여 개의 서원이 있었지만 국가유적지로 지정된 곳이 3곳에 불과한 이유도 청대에 관학화한 서원들이 황제의 명령에 따라 모두 신식 학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반면 정권(대원군)에 의해 대부분의 서원이 강제 철폐됐던 한국의 경우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필암서원 옥산서원 등 40여 곳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이날 창립된 한국서원학회의 회장으로 선출된 정만조 국민대 교수는 “서원은 과거시험공부 중심의 관학에 맞서 순수 학문 연마와 인격 도야에 충실한 독립적 공간일 때 가장 빛났다”며 “현대에도 인간 본성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서원을 재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출처 : [동아일보 2006-11-29 03:55]
2006-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