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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실속' 美 부동산투자 도와드려요 / 오문석 (영문 33회)동문
"최근 국내에서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미국 비자 면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 등 해외 부동산 투자에 눈을 돌릴 때입니다."오문석(52) 뉴스타 부동산 사장은 8일 "세계화 시대에 미국은 이웃과도 같다"며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뉴스타 부동산은 미국 전 지역을 대상으로 부동산 중개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회사. 오 사장은 "미국에서의 부동산 투자는 안전하면서도 실속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부동산 관련 제도가 잘 구비돼 있어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갑자기 버블이 꺼질 염려도 없구요." 그는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안마다 다르다고 대답했다. 오 사장은 "미국도 지난 4년 간 전국적으로 집값 등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아리조나, 워싱턴 등의 지역은 계속 인구가 늘고 있어 급작스러운 가격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부동산에 처음 투자하려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명확환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 사장은 "단순히 값이 오르려니 하고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을 구매할 때는 전문적인 조언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만큼 미국 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환율부문도 신경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사장은 국민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지난 87년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부동산 분야가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2001년 뉴스타 부동산 워싱턴 지사를 설립했다. 현재 뉴스타 부동산은 버지니아, 메릴랜드, 로스앤젤레스에 지사를 두고 있다. 2005년 매출 규모만 40억 달러가 넘는다. 그는 오는 15일 한국FM학회의 후원으로 강남 교보생명 빌딩에서 '미국 부동산 투자 실전 전략' 세미나를 열 계획도 가지고 있다.
200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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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헬렌 켈러’ 저시력인연합회장 미영순씨 (정·외 76학번)
[서울신문 2006-05-30 09:00][서울신문]‘빛의 천사’라고 했다. 한평생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전 세계 맹·농아를 위해 온몸으로 살았다. 헬렌 켈러(1968년 사망),3중 장애를 극복하고 하버드대학까지 졸업한 위대한 사상가로 존경받는다.50대 나이에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사흘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답은 이러했다. 첫째날-‘나에게 삶의 보람을 찾아준 친절함과 따뜻함, 동료애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보리라. 그 동정어린 친절과 인내의 산 증거를 발견해내리라. 소중한 친구들을 모두 불러내어 그들 안에 있는 아름다움의 외적 증거를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리라.’ 둘째날-‘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잠든 대지를 깨우는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리라.’ 셋째날-‘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리라. 이윽고 밤이 이르러 일시 유예가 끝나고 영원한 암흑이 나에게 다시 닥칠지라도, 미처 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틈도 없이 나의 마음은 광휘로 가득찰 것이다.’ ● 여고 2학년 때 실명… ‘고통·희망의 삶´ 한국의 헬렌 켈러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미영순(米榮順·58·정치학박사)씨. 쌀 미(米)자의 성을 쓰는 특별한 가족사를 안고 있다. 경기여고 2학년 때 갑자기 시력을 잃은 후 맹인-반맹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방송통신대와 국민대를 졸업한 뒤 타이완 유학까지 했다.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 전문가로 활약도 했다. 지난 99년에는 ‘전국 저시력인연합회’를 창설한 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저시력 장애인(약 50만명)들이나 맹인들을 위해 ‘빛의 천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흐린 세상으로 살아온 40년 인생, 경외스러움으로 문득 다가온다. 지난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위치한 연합회 사무실에서 미씨를 만났다. 올 1월 건양대 부속 ‘김안과병원’의 지원으로 이 병원 3층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주로 저시력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 상담을 해준다. 인사를 건넸더니 “미안해요, 잘 생긴 사람 같은데 알아보지 못해서.”라며 환하게 웃는다. 목소리가 무척 맑았다. 둥근 모자를 쓴 모습이 얼핏 헬렌 켈러를 연상케 했다. 더듬더듬 안경을 찾는다. 더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내용에 대해 물었더니 “하얀 쌀밥은 색깔 있는 그릇에 담아주어야 해요. 안 보일수록 밥과 반찬 그릇은 내용물과 다른 색깔이어야 좋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시력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물었다.“남자 여자 구분이 안됩니다. 그저 어떤 형체만 어렴풋하게 아른거릴 뿐이지요.” 5월의 라일락이나 아카시아도 그저 마음에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 전국 저시력인연합회 만들어 상담·봉사활동 미씨는 최근 장애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주관했다. 전국의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란 주제로 글짓기 대회를 열고 나무 심는 행사도 가졌다. 시각장애인들은 남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세상과 주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취지에서였다. 가족이 있느냐고 하자 “독야청청이죠.”라는 즉답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렸다. 오색찬란하던 세상이 어느날 흐린 세상으로 다가온 것은 고2 겨울방학 때. 까닭없이 시력이 뚝 떨어졌다. 안경을 맞춰 써봤지만 일주일도 안돼 무용지물. 그렇게 반복하기를 4,5차례 거듭했다. 결국 공부밖에 몰랐던 17살 소녀에게 캄캄한 암흑이 찾아왔다. 실명상태였다. 나중에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중2 때 야맹증이 있었는데 비타민A를 복용하면 된다는 말만 믿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화근이었다. 우선 다니던 학교에 휴학원을 냈다. 당시 미씨네 집은 서울 성북구 수유리. 삼양동 소재 여맹원을 찾아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수유리에 있는 절 화계사를 자주 찾았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희망의 끈´ 놓지 않는 여자 이때 숭산 큰스님과 인연을 맺는다. 하루는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범종 옆에 쭈그려 앉아 있는 단발머리의 여학생 모습이 숭산 스님의 눈에 띈 것. 스님은 미씨를 방으로 불러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고 즉석에서 법문을 들려준다.“자 이 종이에 선을 그어 둘로 나눈 뒤 한쪽에 X, 다른쪽에 Y라고 해보자. 눈에 보이는 X인자는 X1,X2… 등으로 이어지고, 안 보이는 Y인자도 Y1,Y2…등으로 쭉 이어지겠지. 여기에 공통인자가 있다. 그 인자를 찾는 것이 바로 불교이니라.” 잠자코 듣던 미씨는 “스님, 그 공통인자는 Z겠지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나 미씨가 반백이 된 뒤 스님을 다시 찾아갔다. 이때 스님은 “티끌처럼 작아도 세상을 품는 넉넉한 쉼터에 연꽃이 피어났구나.”라는 말로 격려했다. 또 미씨가 2004년 수필집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여자’를 펴낼 때 스님은 다음과 같은 추천사로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장중유리애지도(掌中有理碍之道) 장이칙구인지비(臟裏則救人之悲) -손 안에는 장애를 다스리는 길이 있고, 마음에는 남을 구하려는 사랑이 있네. “아직도 Z는 못찾았지요. 아무튼 눈이 아니라 정신을 통해 사물을 보는 법을 터득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휴학한 지 6개월 후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어렴풋이나마 세상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 미씨는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구나.”하며 돌멩이 하나도, 바람에 쓸려가는 휴지 조각도 아름답게 보였다. 1년만에 다시 복학했다. 교실을 못찾아 헤맬 때도 있었고 배구공을 축구공으로 착각하는 시력에도 불구하고 67년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이어 서울대 법대시험에 응시했다. 첫날 수학과목은 만점을 받았으나 이튿날 독일어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갑자기 캄캄해져 시험장을 빠져나와 한없이 울기만 했다. 법대를 나와 10년동안 무료변론한 뒤 국회활동을 거쳐 대통령이 되는 꿈이 무너졌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배웠다. 가야금, 장고, 단소, 시조, 한국무용, 요리, 꽃꽂이, 영어회화 등등….73년 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5개학과에 2년제. 아버지가 새벽에 일어나 강의방송을 녹음하고 낮시간에 딸에게 들려줬다. 교재를 읽어주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도움으로 방통대를 당당히 수석졸업했다. 국민대 정외과에 장학생으로 편입하면서 배움의 열정은 더했다. 집과 학교 통학은 친구들의 도움에 의지했다. 혼자 등하교할 때에는 ‘8’자를 크게 쓴 카드를 이용해 버스를 세우곤했다. 이는 당시 8번 버스종점 기사들 사이에 오랫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80년 국민대를 졸업한 이듬해 타이완 유학시험에 장학생으로 뽑혔다. 유학시절에도 노트정리를 해주고 빈 종이에 큰 글씨로 써주는 룸메이트와 짝궁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강의는 망원경을 가지고 들었다. 곧 터질 듯한 높아진 안압으로 책 읽기가 너무 힘들어 한번 읽을 때마다 죄다 암기를 해야 했다.84년 중국정치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내친김에 중국문화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았다.89년 귀국한 후 ‘세종연구소’와 ‘북방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다.94년에는 흑룡강대학 객원교수를 겸했다. “마음이 흐리면 흐리게 보이고 밝으면 밝게 보입니다. 주위에서 ‘헬렌 켈러가 미국에만 있느냐.’‘지체장애인 루스벨트도 대통령을 했다.’는 말로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었지요.” 미씨의 부모는 둘 다 세상을 떠나 영등포에서 외롭게 혼자 지낸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북 경성.6·10만세운동에 연루돼 열일곱살에 중국 하얼빈으로 피신했다. 어머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한 구소련 한국교포 2세. 옥사코프스키 여학교를 나와 하얼빈 대학에서 노어과 교수로 재직할 때 아버지를 만났다. 해방되면서 부모는 고향에 들어갔다가 6·25 직전에 월남했으며 48년 서울에서 무남독녀의 미씨를 낳았다. ● 성씨를 米자로 쓰는 독특한 가족사 성을 쌀 ‘미’자로 쓰게 된 연유에 대해 “재령 이씨였던 19대 할아버지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관직에 있을 때 함경도 지방에 쌀 보급을 워낙 잘해서 성을 ‘미’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지금 국내에는 50명 정도가 이 성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동그라미는 처음 떠난 제자리로 와야 완성이 되지요.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또박또박 처음의 자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로 살아왔어요. 비록 빈 손일망정 그 빚을 갚고 가야지요.”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서울 출생 ▲67년 경기여고 졸업 ▲76년 방통대 수석 졸업 ▲80년 국민대 정외과 졸업 ▲84년 타이완 중국정치대학 석사 ▲89년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박사 ▲89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92년 북방연구소 연구위원 ▲94년 흑룡강대학 객원교수 ▲99년∼현재 사단법인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 상훈 2004년 이웃돕기 유공자포상 국민포장 수상. ● 주요 저서 눈물 고인 가슴에 눈물 대신 품은 뜻(96년 고려원), 새벽 산사에 가보세요(97년 시공사),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여자(04년 북포스).
200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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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고수 칼답변에 '팬클럽' 우르르 / 고준석 (영어영문 94학번)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아이러브 고준석과 부동산재테크’(http://cafe.daum.net/gsm888)라는 팬 클럽이 있다. 신한은행 고준석(42) 부동산재테크팀장을 좋아하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만든 카페다. 6년 전 고 팀장과 인연을 맺게 된 전업주부 K씨가 지난해 5월 개설한 후 현재 회원수가 2500여명에 이른다.회원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 이들 중 20여명이 신한은행의 PB(프라이빗뱅킹·은행이 부자고객의 자산을 관리해 주는 서비스) 고객까지 돼주었다.인터넷 카페 질문 일일이 답글고 팀장의 부동산 재테크 상담 실력에 탄복한 한 열성 팬은 자기 부친을 설득해 토지보상금 170억원을 신한은행에 예치하기도 했다.대학(국민대 영문과) 졸업 후 1990년 입행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부동산 전문가로 변신했다.1994년 본점 여신관리부로 발령 받은 그는 고객이 대출을 못 갚아 은행이 담보로 잡고 있던 부동산을 경매 처분하는 일을 도맡게 됐다. 5년간 2000여건의 경매 부동산을 처리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고, 자연스레 부동산 실무지식에 눈을 떴다.2001년 경매 부동산 처분 경험을 토대로 경매 가이드북인 ‘융자계 고대리입니다’라는 책을 출판해 일약 경매 분야의 스타 필자로 떠올랐다. 그의 전문성을 인정한 은행은 2002년 그를 PB사업부로 발령내고, ‘부동산재테크팀장’이란 타이틀을 붙여줬다.물 만난 고기처럼 발동이 걸린 그는 부동산 이론을 더 파고들었다. PB고객들의 부동산 자산을 관리해주는 업무를 총괄하면서 동국대 부동산학과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게 된 그는 각종 매스컴의 단골 필자가 됐고, 대학 강사, 백화점 문화센터 강사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그는 지난 4월 신한·조흥은행의 합병 이후 관리 고객이 2배로 불어나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팬 클럽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팬 카페의 ‘부동산 재테크 Q&A’에는 매일 수십개씩 질문이 올라오지만, 아무리 바빠도 24시간 이내에 답글을 달아준다. 그의 답변은 두루뭉술하지 않고 족집게처럼 단순 명쾌한 것으로 유명하다.“○○동 34평 재건축 아파트를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요?”(회원 A씨), “팔지 말고 좀더 가지고 계십시오. ○억원까지 더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고 팀장)“아직 거품이라고 단정하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강남 아파트 버블(bubble·거품) 붕괴론’에 대한 진단도 명쾌했다.그는 “국민소득 수준이 꽤 올라 원하는 주거문화가 바뀌고 있고, 통화량 자체가 크게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에 몰린 자금이 수백조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아직 거품이라고 진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서울 강남의 블루칩 아파트(현재 최고가 평당 5000만원대)의 경우 평당 6000만~7000만원대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김홍수기자 hongsu@chosun.com[조선일보 2006.05.23 22:46 47]
200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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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는 公私 구분하고 솔선수범 해야”
▲ 정성진 청렴위 위원장은 공직자의 청렴을 주관하는 위치에서 일하는 까닭에 사무실에 백련강(百鍊鋼)이라는 글귀까지 써놓고 철저한 자기 수련을하고있다.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아달라고 하자 몹시 쑥스러워 했다.- 김선규기자 [문화일보 2006-05-02 16:41]존경받는 원로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극한 적 이념대립과 정치적 반목의 와중에 존경받을 만한 원로가 남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표가 될만한 원로가 사라짐으로써 갈등 과 대립의 완충지대가 없어져 우리 사회의 파열음은 커져만 가 고 있다. ‘원로 부재의 시대’ . 문화일보는 아직도 존경받고 있는 각계의 원로들을 찾아 격주로 화요일마다 2일 신설된 ‘나 의 일, 나의 길’ 면을 통해 소개하기로 했다.대검 중수부장과 국민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진(66) 국가청렴위원 회 위원장은 후배 검사들로부터 여전히 존경받는 몇 안되는 검찰 원로중 한명이다. 부정부패 척결이 국가적으로 큰 과제인 가운 데 3·1절 골프파동, 이명박 서울시장 황제테니스 논란 등 공직 자의 처신과 관련한 현안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정성진 청렴 위위원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계동 사무실에서 만나 공직자의 바람 직한 처신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위원장님이 참여정부의 공직을 맡은 것이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안 갈수 있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디다. 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그러는데… .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벼 슬 욕심이 남아서 이 자리를 맡은 것이 아니거든요. 검사생활 25 년에 검사장까지 지냈고 국민대 총장을 역임한 것으로 (벼슬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명이라고 얘기하면 거창하고… . 운 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청렴위에서는 이해찬 전국무총리의 3·1절 골프파동, 이 명박 서울시장의 이른바 ‘황제 테니스’ 논란, 이강철 청와대 정무특보의 청와대앞 횟집 개업 등 여러 현안을 조사중입니다.하지만 여권 인사들과 야당쪽에 대한 형평성 시비도 있었는데요.“걱정하지 마십시요. 법과 원칙을 따르되 그런식으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도 청렴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 전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후 공무원들의 골프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청와대 관계자의 핀잔을 듣고 거두어들이는 등 ‘약한 모습’ 을 보였다는 지적이 있었지요.“공무원들의 골프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다는 것은 잘못 전달된 것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공직자들이 직무상 관련이 있는 사람 들과 골프 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공 무원 행동강령의 정신으로 보아도 당연한 것입니다. 가족, 친지 나 동창 또는 정책 협의과정에서 사교로 하는 골프는 여전히 허 용되고 있습니다. 문제의 청와대 관계자는 취지를 정확히 모르고 말 한 것입니다. 신경쓰지 않습니다.” ―위원장님도 골프를 치시죠? 한달에 몇번 정도나 골프장에 가 십니까.“배운 지 25년 정도 됐는데 지금도 80대 후반 정도의 스코어는 가능합니다. 요즘은 한달에 한두번 골프장에 나갑니다.” ―동반자는요? 내기도 하시는지.“주로 부담없는 어릴적 친구들입니다. 때와 사람을 가리는 편 이며 친구들이니까 비용의 일부를 나누어 내는 정도의 내기도 가 끔은 합니다.” ―청렴위 산하에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문제 때문에 검찰과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정권 이 검찰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수처를 만든다고 의심합니다. 검찰 후배들도 불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공수처는 지난번 대선에서 여야가 모두 공약했던 것입니다.초기에 (공수처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로 검찰과 갈등이 있었지 만 기소권을 검찰에 유보하는 방안에 합의하여 국회에 제출, 논 란이 끝났습니다. 검사들은 내가 청렴위원장으로 온 뒤 오히려 안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야 모두 법안처리에는 소극적입니 다.?? ―1993년 25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난뒤 1995년부터 국민대에서 법대 교수로 5년, 총장으로 4년을 보내셨는데요. 검찰 생활과 대학 생활을 비교 하신다면? 또 검찰 간부와 대학 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의 차이는 무엇인가요.“하는 일이 다르니까 직접 비교하기는 그렇고… . 저로서는 대 학생활이 더 인상에 남습니다. 공통점은 민주적 리더십만이 조직 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 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줄 자세가 돼 있어야 합니다.그러나 무조건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되고 필요한 순간에는 결단 을 내려야 합니다.” ―대학 개혁이 화급한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데요.“분야별로 보면 가장 앞서있는 곳이 기업이고 그 다음이 정부, 마지막이 대학 등 교육계라고 생각합니다. 부패 척결에서도 가 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대학은 시스템이 아닌 인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민대 총장으로 있던 4년 동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쉽지 않았습니 다. 대학에도 기업적 경영을 도입해야 하지만 학문과 지성의 전당 이라는 풍토랄까 그런 것 때문에 어렵습니다. 교육개혁을 위해서 는 교육부장관은 한 5년쯤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듭 니다.” ―이 정부 들어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위기의식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배 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검사는 언제나 기본과 품격을 지켜야 합니다. 검사도 가정 등 일상생활이 있지만 성직자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처신에 있어 서 속되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범속한 시류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신병처리 방향을 놓고 수사 검 사들이 고민이 많았고 특히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 선배들에게 자문을 했다고 하던데 위원장님한테도 전화가 왔습니까.“… .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 문제로 검찰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 자문회의까지 소집됐다고 하더군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원칙에 입각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일도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3년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대검 중수부장을 물러날때 받았던 상처는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다 치유가 됐겠지요.“당시는 그런 상황을 막아주지 못했던 윗사람들에 대한 환멸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50대에 스스로를 재충전할 전 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측면도 있습니다. 나 중에 만났을때 그들은 죄인처럼 미안해 하고 오히려 제가 당당해 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용서가 된 것이지요.” ―지도층 공직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논 어에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몸가짐이 바르 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 正 雖令不從)’ 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생을 되돌려 다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도 법 대에 가서 검사가 되시겠습니까.“아뇨. 역사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soo-lj@munhwa.com 정성진 위원장은 누구‘상속재산’ 탓 중수부장 물러나 국민대 총장 등 9년 ‘강단 생활’[문화일보 2006-05-02 16:41]정성진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은 검사시절부터 강직하고 정확하 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아 그를 아끼거나 따르 는 선·후배들이 유난히 많다. 정 위원장의 자기관리는 유별나다 . 지금도 ‘수분지성(守分至誠)’ 을 좌우명으로 자신의 분수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백련강(百鍊鋼)이라는 글을 사무 실에 걸어 놓고 끊임 없이 스스로를 연마하고 있다.평검사 시절 일찍이 ‘확실한 검찰총장감’ 이라는 말을 듣고 다녔지만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25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너무 많은 재산을 신고한 것이 이유였 다. 부정으로 축재한 것도 아니고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에 항 거한 야당 지도자 고 서민호 선생의 외동딸인 부인이 어머니로부 터 상속받은 것이었다.그를 따르는 20여명의 후배 검사들이 돈을 모아 사준 책가방을 들고 2년간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일본 게이오 대학을 연수하고 돌아와 1995년 국민대 법대 교수로 변신, 5년은 교수로, 총장으 로 4년등 모두 9년을 대학에서 보냈는데 총장을 그만둘때 많은 교수들이 남아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대학 생활도 성공작이었다.초등학교와 중·고교때는 각종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여러차례 차지할 정도로 수재였다. 어린 시절 대구의 책방을 뒤져가며 독 서를 많이 한 탓인지 시를 좋아하는 등 문학적 감수성이 남다르 고 조예도 깊다. 연초 시무식때는 직원들에게 시를 낭송해 주기 도 하는데 특히 같은 또래인 의사출신 재미 시인 마종기의 작품 을 ?종판磯? 언젠가 서울 광화문의 한 큰 건물에 나붙은 글, “착 한 당신, 피곤해도 잊지 말아요/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이라는 내용으로 끝나는 ‘바람의말’ 을 쓴 시인이다.▲1940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 중·고등학교, 서울대 법대 졸 업 ▲사시 2회 합격 ▲대검 중수부 과장, 서울지검 특수 3부장 ▲대구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국민대 법대 교수, 국민대 총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한국법학원 원장 ▲2004.8~현재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
200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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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디자인 리더…세계가 인정한 무한대 상상력 / 안상균(금속공예90) 미 오번대교수
'한국 산업을 업그레이드할 창조적인 디자인 에너지, 우리 숨결로 불어넣습니다.' 산업자원부와 디자인진흥원이 매일경제신문과 함께 제4기 '차세대 디자인 리더' 10 명을 선정했다. ◆ 안상균 美 오번대 교수 / 금속공예 90학번 "디자이너는 정치가나 과학자 못지않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 니다 ." 미국 오번대 조교수로 재직중인 안상균 씨(35)는 미래형 자전거 등 첨단 교통기구 디자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안씨는 미래지향적이고 날렵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탈 수 있는 교통기구를 디자인해 지난해 독일 '레드닷'의 컨셉트 디자인 분야에서 루미너리 어워드 대상을 수상해 주목받았다.이 작품은 일견 조각작품을 연상시킬 정도로 디자인이 독특하 다.국민대 금속공예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2002년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안씨는 미국 프로페인 디자인그룹에서 실무 경력을 쌓기도 했다. 안씨는 올 해 애틀랜타 디자인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물론이고 IF와 레드닷 등 국제 공모전에 참가할 계획이다.
2006-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