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New&Hot
국민인! 국민인!!
총 3376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
2006 동아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 강혜경동문(영문82학번)
착한 어린이 이도영- 강 이 경(본명:강혜경)선생님이 상장을 들고 들어오셨다."지난번 교내 글짓기 대회 상이야. 지금부터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김병수!"김병수가 나가고, 그 다음엔 이보람이 나갔다. 나는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짝, 보람이가 자리로 돌아오자, 내가 말했다."이보람, 너 상 되게 많이 받는다!""뭐 이 정도쯤이야……. 왜? 너도 상 받고 싶어?"보람이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튼튼하기만 하면 돼.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보람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선생님이 목청을 높이셨다."모두들 주말 즐겁게 보내라. 참, 월요일에는 그림 그리기 대회가 있으니까 그림 그릴 준비 해 와.""네!" 하고 아이들이 대답했다.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먹을 걸 사러 가시고,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병실로 달려갔다."그 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들었어?"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 때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 한 분과 남자 아이 한 명이 들어왔다. 아이는 곧장 아주머니께 달려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엄마, 이거!""어머, 또 상 받았구나!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 병이 빨리 낫겠는걸."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엄마가 끼어드셨다."아줌마는 참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상장도 받아 오고. 어디 저도 좀 보여 주세요."'치,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 놓고서… 순 거짓말쟁이….'나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빠가 먹을 걸 잔뜩 사가지고 오셨지만, 하나도 맛이 없었다.월요일 3교시, 모두들 그림을 그리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도무지 무얼 그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이보람, 넌 뭐 그릴 거야?""난 나무 그릴 거야. 넌?""몰라."내가 말하자, 보람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보람이가 나무 두 그루를 그렸을 때, 내가 말했다."나도 나무 그릴래.""안 돼. 넌 딴 거 그려!"보람이는 성질을 내며 저쪽으로 휙 가 버렸다.'나무가 다 자기 건가 뭐. 가다가 팍 넘어져라!'보람이는 넘어지기는커녕 어느새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보람이에게 갔다."이보람, 나 좀 도와줘. 도와주면 너 대신 청소당번 할게."순간, 보람이 눈이 반짝였다. 나는 보람이가 마음을 바꿀까 봐 겁이 났다."그림만 그려 주면 색칠은 내가 할게."보람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쓱쓱 하더니 나무들을 멋지게 그려 주었다."색칠은 저기 가서 해. 내 옆에서 하지 말고."나는 신이 나서 도화지를 들고 멀리 갔다. 색칠을 하고 나니 나무들이 제법 그럴 듯했다. 색칠이 삐죽삐죽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그 때 그림은 멀리서 보는 거라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림을 세워 두고 뒤를 돌아 몇 걸음 걸어갔다.그림을 보려고 기분 좋게 뒤를 돌았을 때였다. 도화지가 바람에 날려 저만큼 가고 있었다."안 돼!"나는 도화지를 잡으려고 냅다 뛰었다. 도화지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만 도화지를 밟고 만 것이다. 나는 천천히 발을 들었다. 나무 그림 위에 운동화 자국이 쿡 찍혀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저녁에 밥을 먹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난 수학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글짓기도 못하고, 달리기도 항상 사 등밖에 못 해. 그리고 운도 없어! 죽을 때까지 상장 한 번 못 받을 거야…….'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 나는 이불을 휙 젖혔다. 어둠 속에서 모니터 전원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다음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우리 반 민수와 함께 집으로 왔다."우리 손자 인자 오나? 친구도 왔네. 어서 온나."할머니 목소리가 다른 날하고 달랐다. 할머니가 웃으며 나에게 눈을 흘기셨다."아이고, 니도 참, 상장을 탔시마 말을 해야쟤, 그래 처박아 두면 우야노. 상장은 이래 액자에 넣어가 벽에 쫙 걸어 놓는 기라."할머니 뒤로 상장이 죽 걸려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전국 어린이 미술 대회 우수상, 교내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달리기 일등상, 착한 어린이상……. 상을 이래 마이 받고도 말을 안 하다이, 니가 속이 보통 깊은 아가 아인 기라……."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민수를 보았다. 민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는 민수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저게 상이냐? 가짜로 인쇄한 거지! 하하하하……."민수가 겨우 웃음을 그쳤을 때, 내가 말했다."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나는 민수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 카드를 주었다.다음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다."왕 천재님 오셨다!""와하하하…."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민수를 노려보았다. 민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좀 조용히 하자. 너희가 만날 이렇게 떠드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지난 토요일에 교장 선생님이 일기장 걷으라고 하셨는데 까맣게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내일 일기장 꼭 가져와. 오늘 일기도 꼭 쓰고."그 날 저녁, 일기를 쓰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토요일 날 나는 엄마한테 가지 않았다. 아빠 차가 멀리 사라질 때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전화로 엄마 목소리만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오늘은 엄마한테 가려고 학교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자, 이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또 상장인가 보았다. 무슨 상장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셨다."이도영!"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했다. 보람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큰소리로 상장을 읽으셨다."상장. 최우수상. 2학년 1반 이도영. 위 어린이는 꾸준히 일기를 써서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상장을 줌. 양촌초등학교……."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상장을 다 읽고 나서 일기장을 펼치셨다."아이들한테 이 일기 좀 읽어 줄 수 있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는 아프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계신다. 수술도 받으셨다. 내가 일을 하나도 안 도와드려서 엄마 허리가 아픈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다 나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상을 받아서 빨리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빨리 나으라고 컴퓨터로 상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수한테 들켰다. 부끄럽고 화도 났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은데도 안 갔다. 하지만 그 까짓 상장이 없어도 이번 토요일에는 엄마한테 갈 거다. 상장을 못 받는 대신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할 거다. 옷도 아무 데나 벗어 놓지 않고, 가방도 항상 제자리에 놓겠다고 약속할 거다. 그러면 엄마가 기분이 좋아져서 빨리 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다.엄마, 사랑해요.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보람이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났다.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도 모르게 꾸벅 절을 했다."수업 끝! 월요일 날 만나자."선생님이 웃으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나는 상장을 안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꾸 웃음이 났다.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심사평김문기(아동문학가) 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대체로 예년에 비해 작품성이 훨씬 높아져 반가웠다, 두 심사위원은 신인들의 참신한 역량과 도전적 글쓰기를 소중히 여기며 작품들을 읽어나갔다.'할머니와 전기 새'는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소재로 삼은 발상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인물간의 소통보다는 언어의 유희만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점이 아쉬웠다.'엄마의 포장마차'는 이야기 전개가 능숙하고 구성이 탄탄하였다. 하지만 오빠의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결말이 쉽게 내다보이는 패턴으로 인해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꼬마 삼촌'은 재미있는 캐릭터 설정으로 이야기를 활달하게 이끌었고 어른 세계에 대한 이해와 화해의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시트콤 형식을 넘어서는 참신성을 읽어내기는 어려웠다.'망가진 리모콘'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약속을 파기하는 어른에게서 조종만 당하다가 독립을 선언하는 어린이 상을 그려내는 문제의식이 좋았다. 소통 단절을 선언한 후의 아이상은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의 아이 모습이 기대될 정도였다. 하지만 거의 대화체로 내용을 이끈 점이 절대적으로 아쉬웠다.당선작으로 뽑은 강혜경의 '착한 어린이, 이도영'은 이야기 전개가 활달하고 주제를 내세우는 솜씨도 좋았다. 반면에,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과 상장들을 복사하는 행위의 연결이 선명하지 않은 점이 작품의 결을 거칠게 했음을 밝힌다.이렇게 본심에 오른 작품들의 장단점이 엇비슷하여 당선자를 결정하기에 무척 어려웠는데 결국 아이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작품의 완성도에 좀더 비중을 두어 강혜경 씨를 당선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당선소감강이경(본명:강혜경)△1963년 경기 파주 출생 △1986년 국민대 영문과 졸업우리 집은 산자락에 있습니다. 봄이 되면 벚나무가 환하게 꽃등을 켜고, 여름이면 푸르른 칡넝쿨 위로 솔솔 바람이 불어요. 가을이면 노란 유치원 버스가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꼬마들을 태우고, 오늘처럼 눈 내린 아침이면 야생 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내려오지요.베란다 밖을 내다보다가 오소리 가족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지요. 오소리 가족도 그랬나 봐요.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어요.오소리 가족이 사는 걸 아시는 걸까요? 우리 동네에는 글 쓰는 분들이 많이 살아요. 그림 그리는 분들도 살지요. 어린이 책을 만드는 분도 살고요. 창밖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집에는 동화 쓰는 분이 산대요.꿈은 이루라고 있나 봐요. 저도 이제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제 글이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어린이 작가 교실 친구들,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태어나신 것 같은 정해왕 선생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름표를 달아 주신 동아일보에 가슴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끝으로, 힘겹게 사춘기를 보내는 나의 아들, 재우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2006-01-10
-
이완, 내년에는 체육선생님으로 교생실습?
[마이데일리 2006-01-04 10:22:39][마이데일리 = 강은진 기자]탤런트 이완이 2006년 목표로 방송생활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뜻을 밝혔다.지난 12월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완은 "대학교 2학년 데뷔와 함께 휴학 후, 2년이 지났다. 2006년에는 복학을 해야 한다"며 "2006년에는 방송생활과 함께 학업활동에 충실히 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이다"고 밝혔다.국민대학교 체육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완은 2003년 '천국의 계단'에서 신현준의 아역으로 데뷔, 이후 드라마 '작은아씨들' '백설공주' '해변으로가요'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이완은 SBS 새수목드라마 '천국의 나무' 주연으로 캐스팅, 3일 일본 나가노로 출국 3월 8일까지 촬영한다. 지난 여름 '해변으로 가요'에서 해상안전요원으로 출연해 운동실력을 자랑했던 이완은 100m 달리기가 11초 대일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고 재능을 갖고 있다. 이완이 계획대로 드라마 촬영 후 2006년 3학년에 복학하면, 2007년에는 체육선생님으로 교생실습을 나가게 된다. 이완은 "드라마 촬영을 끝낸 후 곧 3학년으로 복학할 것이다. 학업에 충실히 하며 방송활동을 하겠다"며 "아직 2007년 연이어 학교를 다닐지 휴학을 하게 될지 정하지 않았지만, 다닌다면 교생실습을 나가게 될 것이다"고 쑥스럽게 웃었다.지난 2003년 한남대 미술교육과 재학 중 연예계에 데뷔한 권상우도 대전 동산중학교에서 미술교생 실습, 이완 또한 체육선생님으로 교생실습을 나가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2006년, 학업과 방송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이완. 사진제공=SBS](강은진 기자 ing@mydaily.co.kr)
2006-01-04
-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일궈낸 국사편찬위 박한남·임천환씨
[한겨레 2006-01-01 21:00] 국사편찬위원회 박한남(49) 연구관과 임천환 연구원(42)에게 2005년은 정말 뜻깊은 한해였다. 의 원문과 한글 번역본 인터넷 서비스를 이룬 까닭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국민들이 이나 같은 역사드라마를 보다가 “정말 그랬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온라인서비스’(sillok.history.go.kr)에 들어가 바로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22일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는 2004년 6월 “인터넷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그 뒤 국무총리실 산하 복권위원회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았고, 1년6개월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 간의 과정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통치기록을 낱낱이 기록한 의 분량이 워낙 방대한 데다, 한글 번역본과 디지털본(시디)의 저작권이 민간업체에 귀속돼 있어 일은 꼬여만 갔다. 불운한 일들도 이어졌다. 2004년 9월과 2005년 6월에 박 연구관과 임 연구원이 교통사고를 당해 각각 3개월과 3주를 병실에서 보내야 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지병을 앓고 있던 박 연구관의 남편이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디지털 사관들’ 1년6개월만에 불가능을 현실로 고려사 등도 도전 의욕…“예산배정 왜 않죠?” 하지만 두 사람은 조선시대 사관의 자세로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안서를 들고 문화재청과 기획예산처를 향해 뛰었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을 좇아다녀야 했어요. 짬이 나면 실록과 씨름하며 원문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았죠. 입원 중에도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해야 했고요.” 박 연구관의 회고다. 결국 끈질긴 설득으로 지난해 복권위원회로부터 8억7400만원의 지원금을 따냈고, 나중에 불거질 수 있는 저작권 문제도 해결했다. 박 연구관은 “제대로 된 역사를 많은 국민에게 알리려면 실록의 인터넷 서비스부터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어깨를 짖눌렀다”며 “특히 요즘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교과서 같이 역사 왜곡이 심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박논리를 개발하려면 근거가 되는 사료 정리와 보존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지 열흘도 채 안됐지만, 반응은 벌써부터 뜨겁다. 실록의 원문과 한글 번역본의 동시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고, 세종실록 오례편과 광해군일기는 이미지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는 “고맙다” “수고했다”는 칭찬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의미 있는 사업이 내년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올해까지는 4억5600만원의 복권기금 예산이 책정돼 누락본의 삽입과 서비스 보완 등이 가능하지만, 당장 2007년부터는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은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교육부 소관이라 복권기금 혜택을 계속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육부 예산을 배정받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록뿐 아니라 승정원일기, 삼국사기, 고려사, 경국대전 등 기본 사료들도 원문과 한글 번역본이 온라인으로 서비스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임 연구원은 “정부가 황우석 교수 연구에는 수백억원을 지원하면서도 전통문화 유산의 과학적 보존에 대한 지원은 너무 인색하다”며 “사료 보존과 보급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국익’을 위한 일인데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2006-01-02
-
'제국주의를 말한다.' - <꼬레엥 2495>의 감독 하준수 교수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 정기 프로그램인 ‘한국영화 과거속의 미래’의 세 번째 기획으로 ‘장편영화컬렉션’을 마련하였다. 12월 5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이번 기획전에서는 최근 만들어진 주목할 만한 장편영화 5편을 상영했는데 우리 학교 하준수 교수(시각디자인학과)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가 선정되었다. 는 1993년 프랑스대통령이 약속한 외규장각도서 미반환 사건을 통해 문화제국주의를 꼬집은 다큐멘터리영화이다. 이 영화는 지난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PIFF)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한국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인 운파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영화를 본 후 하준수 교수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상 수상에 이어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도 상영하게 되었는데 소감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관계자가 이름을 잘못 확인하여 떨어진 줄 알고 낙담하던 차에 다음날 수상소식을 들어 예상치 못한 수상에 더욱 기뻤다. 거기다 서울에서 상영까지 할 수 있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원래 문화재약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단 문화재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부분이 담겨져 있어서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사항이라 꼭 한번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대학 다닐 때 이것에 관한 그래픽작업을 했었고 영화공부를 하면서 사건 10년째를 맞는 2003년을 기념해 2002년에 기획단계을 거쳐 3년 반 동안 제작하게 되었다.” - 3년 반이면 제작기간이 꽤 긴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어려웠던 점은? “접근 가능한 정보에 대한 한계가 제작하는데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눈앞에 있는데 정보를 가지고 있는 담당자의 인터뷰 거절 등이 영화제작상의 어려운 점이었고, 나중에 펀드를 구하기는 했지만 자비로 작업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 외에 우리가 프랑스로 건너가 촬영을 한 2003년도는 유럽에 폭염이 찾아온 해라 더위로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렇게 더운데 건물에 에어컨도 안틀고, 하물며 패스트푸드 점에서는 얼음이 없다고 따뜻한 콜라가 나왔다.” - 영화를 통해 감독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문화재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문화재는 키워드에 불과하며, 점점 교묘해지고 영리해지는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정치적인 제국주의가 가장 집약되어있던 사건이 ‘꼬레엥 2495’로 대변되는 외규장각도서 미반환 사건이라 생각되었고,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 이전에 제작한 영화들은 어떤 것이었나? “주로 뮤직비디오와 실험영화를 제작했었고,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제1회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었다. 이때부터 다큐멘터리에 대해 관심이 더 생긴 것 같다.” - 다음에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다면 소개를 해 달라. “내년 1월에 1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으로 학생들과 공동작업을 준비 중이며, 4월에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형식으로 장편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는 미처 보지 못한 국민인들을 위해 내년 우리학교에서도 상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국주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5-12-29
-
방은진 (의상 40회) 감독, <신인감독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수상
2005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 2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방은진(의상40회)동문."정말 예상하지 못했고 이런 상을 받을 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는지 모르겠다."장편 첫 감독작 로 올해의 여성영화인 상에 이어 연거푸 수상한 방은진 감독은 "나를 믿고 고생한 스태프들, 그리고 정순정 역을 완벽히 소화한 배우 엄정화에게 감사를 돌린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특히 방은진 감독은 영평상에서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어 이번 신인 감독상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수상자 호명이 이어지고 트로피를 받는 순간 제작자인 명계남에게 꽃다발을 받고 감사의 포옹을 한 방은진 감독은 힘들 때마다 "여기서 멈추지 마라! 이거 가지고 영화 하려고 했냐!"고 혹독한 질책을 가했던 이창동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이미 배우로서 연기를 보여준 방은진 감독이 로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며 "원래 한국공포영화에서 원한을 가진 여자는 귀신의 복장을 한 피해자로 나오는데 는 모성애와 원한을 가진 여성이 복수를 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시킨 만큼 본격적인 여성주의 시각의 감독 탄생을 알린 영화였다" 고 평가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성기는 후배인 방은진 감독에게 "나도 재주만 된다면 영화 감독 해보고 싶다!"는 말로 축하를 보내 그녀의 수상을 더욱 빛나게 했다. 신인감독상은 2차 투표에 걸쳐 '나의 결혼원정기'의 황병국 감독과 '연애의 목적'의 한재림 감독을 물리치고 영광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방은진 감독은 12월 8일 서울 종로 시네코아에서 열린 제 6회 여성 영화인 축제에서도 을 수상했다.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을 수상한 방은진 감독은 연극 무대를 거쳐 94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으로 데뷔, ‘301 302’(95), ‘로드무비’(2002), ‘수취인 불명’(2001) 등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이다. ‘오로라 공주’로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호평을 받으며 여배우에서 감독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모성의 복수극을 보여준 이 영화에서 그는 섬세한 연출로 특히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200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