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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우편사업지원단 신임 이사장에 선한길씨 / 동문 (2005.8. 정보관리학박사)
[연합뉴스 2005-12-08 16:43] (서울=연합뉴스) 국기헌 기자 = 한국우편사업지원단(前 체성회) 신임 이사장에 선한길(50) 한세대 IT학부 교수가 8일 선임됐다. 선 신임 이사장은 KAIST 경영정보공학 석사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정보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창조지식경영연구소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자문위원, 열린우리당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penpia21@yna.co.kr (끝)
200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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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동문 역량 모아 '국민대 서포터즈' 될 터
국민대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국민대 동문’ 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게 된다. 동문회는 이러한 모든 동문들을 하나로 모아 함께 모교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실행하는 일을 하는 가장 든든한 ‘국민대 서포터즈’의 역할을 한다.지난 10월 27일,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이 32대 총동문회장에 선출되었다. 우리학교 행정학과 69학번이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은 장영달 회장은 이미 93년부터 12년간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아오기도 했다. 수락 연설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총동문회의 운영하여 모든 선·후배들과 함께 해공 신익희 선생의 건학이념을 펼쳐 갈 것을 약속한다"는 각오를 밝힌 장영달 회장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1. 총동문회장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랜 시간 동문회 일을 하시면서, 동문회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을 거 같은데요, 앞으로 동문회 운영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고 싶으신 부분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6만 동문 모두가 서로 하나 될 수 있도록 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싶습니다.2. 내년이 개교 60주년입니다. 모교 발전에 있어 동문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는데요, 생각하고 계시는 동문의 모교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제가 취임한지 얼마 안되서 아직 자세한 계획을 많이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60주년을 맞아서 최대한 많은 동문들이 모여서 재학생들과 함께 애교열정을 모아보는 행사를 한번 하고 싶습니다. 선선한 가을쯤에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이 모여서 멋진 공연도 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대동한마당을 기획하고 싶습니다.국민대학교는 민족 정통성을 지닌 대학은 유일한 대학입니다. 다른 학교와 비교해서 안됐지만, 어느 대학은 일본사람들이 세운 대학이고, 어느 대학은 미국사람이 만든 대학이고, 어느 대학은 항상 친일문제에 시달리는 대학입니다. 그러한 잡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대학이 국민대학이에요. 저는 재학생 후배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민족대학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년 60주년을 기해서 국내 최고의 민족대학이라는 명성을 전국적으로 펼쳐낼 수 있는 홍보기획을 대폭 강화해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제 임기 중에, 동문들이 모을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집중시켜서 후배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재정적인 역량을 확충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싶습니다.3. 학창 시절,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헌신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가장 많이 하셨던 고민과 생각은 어떤 것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일상의 수업이나 학교생활의 추억도 말씀해주시죠.전 69학번인데, 졸업은 88년도에 했어요. 국민대 입학하고 한 학기 다니고, 군대 가서 3년동안 군생활 하고 다시 복학을 해서 다녔지요. 그런데 복학 후 사회는 유신헌법이 제정된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었어요. 해공 신익희 선생님 알죠? 그분은 민족자주적인 민주주의 국가 이념을 바탕으로 국민대학을 창립하셨어요. 저는 신익희 선생님이 국민대학을 창립했다는 사실을 알고 주저없이 국민대학을 입학한 사람이거든요. 설립자와의 그러한 인연, 또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 그런거 때문에 복학 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그래서 8년 동안 감옥에 있었지요. 그때 국민대 동문들이 석방운동도 치열하게 벌여줬었습니다, 이태복 전 노동부 장관, 배기선 현 국회의원, 또 세상을 떠난 민족작가 권운상 동지, 이러한 동문들하고 민주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면서 보냈죠.거의 20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이도 먹고해서 어떻게 학교를 더 다닐 수 있겠느냐 싶었는데 교수님들께서 대학원을 권하셔서, 결국 법학과로 옮겨서 석사를 했어요. 전공은 노동법이었구요. 박사과정은 다른 대학교에서 행정학을 하면서 지금 논문을 쓰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있어 학사와 석사 과정을 국민대학에서 했다는 것을 가장 기분 좋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죠. 어디가서 학력 쓸 때도 어느 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그것만 올리려고하면 그거 쓰지 말고 국민대학만 넣으라 그래요.(웃음) 그 정도로 국민대학은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민족대학이자 저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4. 재학생과 동문회간의 교류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있어서 좀더 적극적인 접근을 해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맞아요. 사실 동문회에는 운영위원회가 있어서 운영위원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그러는데, 지금 30대 운영위원들까지는 들어왔어요. 그래서 젊은 20대 운영위원도 한사람쯤은 들어올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동문회의 의사결정기구인 운영위원회에 갓 졸업한 그러한 동문들까지말이죠. 갓 졸업한 동문들도 동문이에요, 젊은분들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러한 시스템 개혁을 할 계획이에요. 5. 국민대학교는 동문회장님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제가 입학은 여기(현재 총동문회관이 있는 창성동캠퍼스)에서 했는데, 한학기만 다니고 군대 간 사이 현재 정릉 캠퍼스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베트남 전쟁에 1년 동안 다녀온 후, 학교 공사 막 하고 있을 때, 처음 가봤거든요. 지금 정릉 캠퍼스 지을 때, 거기 공사판에 돌 하나라도 잘못 놓일까봐서 휴가 나오면 학교 건설 현장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학교 잘 지어지길 바라면서 돌 작업도 내가 도와주고 그랬어요. 그만큼 애정이 깃든 모교에요. 그래서 지금 학교 가서 후배들 보면 친 아들 딸들 같이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요.6. 학교에서 자주 뵙기를 바라면서 모교 재학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국민대 후배들은 대한민국에서 민족적인 정통성을 지닌 유일한 대학을 내가 인연을 맺고 다니고 있구나, 라는 최고의 자부심을 갖길 바래요. 소위 뭐 일류대학이라고 소문난 대학들이 있지만 그 대학이 갖지 못한 더 큰 가치를 국민대학교가 가지고 있어요. 나라가 어렵고 사회가 위기에 빠지면 자기가 몸담았던 공동체의 역사와 전통이 뭐냐에 따라서 좌우돼요. 한 가정의 역사도 그 가정이 얼마만큼 굳건한 토대위에 세워졌느냐가 중요하듯이 국가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러한 국가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 대학이라고 한다면, 그 대학,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장 중심적으로 버텨갈 수 있는 중심에 있는 대학이 국민대학이에요. 설사 잘 모르고 국민대학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국민대학은 대한민국 유일의 민족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대학이로구나,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고 재학생들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도록 전력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정치인이니까 정치권에서 최고의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할꺼에요. 어느 전공이든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정진하기만을 바래요. 동문회는 재학생들 여러분이 그렇게 노력하는 그 분들을 밀어주는 힘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 모을 겁니.‘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왠지 근엄하고 딱딱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달리 장영달 동문회장은 먹을 것과 노래방 쿠폰까지 챙겨주시는, 다정하고 재미있는 분이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동문회와 학교 일에 끝까지 신경을 쏟으시는 열정에서 앞으로 좀 더 활발해질 동문회 활동을 기대해 본다.
200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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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광일 (산림자원) 교수 6일 한국캐나다학회 참여
[굿모닝 서울 What's up?] [조선일보 2005-12-05 04:09] ■ 한국캐나다학회(회장 문영석)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외교안보연구원에서 ‘2005 연례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는 ‘한국과 캐나다의 인적 교류’이며, 대니얼 히버트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지리학과 교수, 한재동 웨스턴 온타리오대 교수, 장근수 포항공대 교수,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이연섭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탁광일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이현송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크리스털 한 캐나다교육원장 등이 참여한다. (031)280-3490
200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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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힘찬 호흡
2005년 가을 호 『실천문학』188페이지. 가만히 턱을 괸 채 페이지 한 구석을 응시하는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그 시선 끝에 커다랗게 새겨진 두 글자, ‘이하’. 제12회 실천문학 신인상 시 부문으로 등단한 이정하 군의 또 다른 이름이다.당선의 순간.“이정하 선생님이시죠?”로 시작되는 당선 전화에 ‘이거 큰일났구나’하는 생각부터 들었다는 이 군. 놀라움과 당황, 걱정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짧은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을 다양한 감정들이 떠오르는 듯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포기하려고 했죠. 취직하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배웠던 것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선 여부에 상관없이 제 모든 작품을 모아 투고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에요. 이를 발판으로 더 좋은 시들을 써나가고 싶습니다.”촬영장에서 발견한 ‘이 시대의 엑스트라.’그는 당선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엑스트라」를 꼽는다. 그 자신이 직접 엑스트라를 하며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쓴 이 작품은 촬영장에서 발견한 ‘이 시대의 엑스트라’를 그리고 있다.“태풍에 농사를 망치고, 직장에서 잘린 사회의 주변인물들이 그곳에서 엑스트라를 하고 있었어요. ‘만적의 난’ 장면을 찍는데, 50~60대의 할아버지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30시간이 넘도록 엎어지고 무릎까지고 하며 촬영하시는 거예요. 이들이 바로 이 사회의 노비, 만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시를 만나다. 시를 쓰다.사랑시가 시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대학교 1,2학년 시절, 정말 좋아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군에 입대한 그는 그곳에서 신대철(국문)교수의 시집『무인도를 위하여』를 만났다. “원체 억압받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최전방에서의 군생활로 숨이 막혀있던 저에겐 그 시들이 저를 호흡하게 하는 방독면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제대하자마자 교수님을 찾아갔죠. 신 교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시선.평소 억압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 군은 이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한 해의 휴학기간 동안 공장에서 원단을 나르고, 인권 단체와 집회를 찾아다니며 다른 삶의 모습들을 찾아다닌 것도 바로 이 때문. 대학 졸업 후에는 탈북자 대안학교의 자원교사 활동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할 생각이다.“신 교수님의 시가 저에게 그랬듯, 저도 사회 변두리의 사람들에게 방독면이 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들과 함께 걸어가며 치열하게 살면 살수록 좋은 시들이 나오겠지요.”시는 함께 써나가는 것.졸업을 앞둔 그는 아쉬운 것이 많다. 갑작스레 숨진 단짝친구의 기억이 그의 대학생활 대부분을 방황으로 채워놨기 때문이다. 등단을 통해 그 상처를 승화시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던 그에게 신인상 당선의 의미는 더욱 크다. “제 시는 그 친구, 저에게 불씨를 심어준 신대철 교수님, 그 불씨에 기름을 부어준 정선태(국문)교수님, 그리고 방황하던 저를 품어준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써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문단이나 사회에서 많은 어려운 일들과 부딪히겠지만, 이들과 함께 가고 있기에 전 자신감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사회의 엑스트라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그의 미래. 때론 힘들지 몰라도 외롭지는 않을 그의 길이 아름다워 보인다. 엑스트라― 만적의 난 이하나무깽이와 죽창을 틀어쥔 채 흡반 같은 카메라 앞에서만적의 난을 재현하는 새벽자정부터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태풍에 밭뙈기를 잃은 만적불황에 일자리를 잃은 만적경마에 처자식을 잃은 만적이가씨벌헐 씨벌헐 무릎을 찧어가며31시간 혁명을 일삼는 중이다.왜 없는 놈들은 역사를 통틀어엑스트라인가.쉴 새 없이 죽창을 휘두르며 나는노비 혁명을 주도한 만적이가최충헌의 家奴였다는 사실을 곱씹는다.차별이 차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혁명이 혁명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바람은 딴 데서 오지만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봉수대처럼 집채는 불타오르고보조 출연자들은 똥돼지처럼 소리치는반장의 악바리에 똥줄기가 빠지는데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우리들 만적들은서로의 상처를 어깨동무로 싸맨 채봉기의 창끝으로 冬天을 가른다.(발표지 : 『실천문학』 2005년 가을)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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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그려내는 ‘녹색 희망’
▲ 자칭 '무허가 길 위의 화가'. 길거리를 지난는 사람들의 옷을 캠버스 삼아 환경그림을 그리는 윤호섭 교수. ⓒ 전라도닷컴“뭐 그려줄까?”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도 아이들과 눈 맞추고 다정하게 그 질문 던지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나뭇잎사귀요” “고래요” “하트요”….저마다의 대답에 따라 옷 위에 초록빛 나뭇잎들이 돋아나고 고래가 헤엄친다. 붓놀림을 따라가는 아이들의 눈빛이 더할 수 없이 진지하다. 이제 아이들은 고래를, 나무 한 그루를, 가슴에 품고 다니게 될 것이다. 지난 10월8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린 빛고을나눔장터 ‘아름다운 세상’에서 ‘천연물감으로 티셔츠에 환경그림그리기’를 진행한 윤호섭(62·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씨. “쉬운 것부터 담담하게, 그리고 맹렬하게”그는 주말마다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칭 ‘무허가 길 위의 화가’이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을 캔버스 삼아 환경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온 지 4년째.“몇 년 전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던 면티들을 정리해보니 수십 벌이에요. 깜짝 놀랐지요. 무슨 옷을 이렇게 많이 소유하고 있었단 말인가 싶어서. 그 옷들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무얼까 궁리하다 그림을 그려 나눠 줬어요.”거리로 나서게 된 시초다.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환경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거리’와 ‘옷’이 딱이었다. 그 때가 2002년. 그로부터 4년간 4∼9월엔 일요일마다 인사동에 나갔다. 교수가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린다?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을까? “권위는 내 인생의 금기에요. 그거 아주 바보스런 일이야. 자신을 부자유하게 재미없게 살게 만드는 것이죠.”돈받고 그림 그려주는 노점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쯤이야 굴하지 않았다. 태풍이 아주 심하게 불었을 때 딱 두 번 빠졌을 뿐 거리에서 그림 그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쉬운 것부터 담담하게, 그리고 맹렬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 그대로. ⓒ 전라도닷컴그가 티셔츠에 주로 그리는 것은 돌고래, 황새, 나뭇잎, 도롱뇽, 웃는 별 등등. 그는 “우리 세대의 잘못으로 어린 친구들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황새를, 산양을 보여주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미안해 하는 어른이다. 그림 옆에 쓰는 말은 ‘지구사랑’ ‘No Whaling’ ‘Everyday Earthday’ 같은 말들이다.“사람들이 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길거리 사람들이 보잖아요. 걸어다니는 광고, 움직이는 그림메시지랄까. 좋은 뜻 퍼뜨려주니 내가 고마워 할 일이죠.”그림 그릴 때 쓰는 물감 역시 송진과 식물 엽록소로 만든 천연·친환경페인트다. 인사동에서 그림 그리면서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 인연으로 지난 10월 초엔 홍콩의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홍콩에서 그림 그리던 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어요. 허, 어째야 하나 당황했는데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들이 금세 비닐을 들고 와선 그림작업을 마칠 때까지 네 귀퉁이를 들고 서 있어 주는 거에요. 이 일 하면서 그런 뜻밖의 만남, 뜻밖의 감동들을 많이 누리고 있어요.”그가 환경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1년 세계잼보리대회 엠블렘과 공식포스터를 제작하면서 만난 일본 대학생 미야시다 마사요시군 때문. 친환경적인 생활을 실천하는 그 청년을 통해 환경에 ‘무심’했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한 사람의 의지와 실천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한사람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됐다. ⓒ 전라도닷컴“우리가 정말 버려야 할 것은 쓰레기통”그가 늘 고민하는 것은 “내 삶이 석유에너지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 그래서 될수록 가전제품을 쓰지 않는다. 냉장고도 없앴다. 우리가 흔히 ‘편리하다’고 의심없이 믿는 것들 속엔 ‘맹목성’이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그. “무빙워크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그냥 맨바닥을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힘 안 드세요?’ 묻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저는 사람들이 일상적이라고 믿는 소비문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제 발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죠. 누구나 무빙워크에 몸을 실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가능한 한 아파트 평수를 줄이고, 차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옷은 3분의 1로, 음식쓰레기는 0으로, 종이는 반으로…’를 지키며 살려 한다. 당연히 자동차는 소유하지 않았으며 출퇴근때는 자전거를 자주 이용한다. 쓰고 난 종이로 명함 만들기, 캔음료 안 마시기, 종이컵 쓰지 않기 등도 그의 생활수칙. 남들이 보면 ‘사서 고생’으로 보일 수도 있을 일들이 그에겐 기쁨이다. 좋은 차, 좋은 집 그런 소유와 소비의 욕망에서 그는 정말로 자유로울까. “완전히 무관심해졌달까. 큰 평수 아파트에서 이태리산 대리석 깔고 산다고 해서 내 삶의 무엇이 달라지나. ‘내 손으로 집 지어보는 것’외엔 다른 욕심이 별로 없어요.” ⓒ 전라도닷컴그 집 역시 버려진 물건으로만 짓고 싶단다. 임무를 끝낸 현수막, 야무진 종이상자, 어묵 꼬치용 나무젓가락 등도 그가 건축자재로 생각하고 매일 모으고 있는 것들이다. ‘버리지 않는다’를 원칙으로 삼은 그의 연구실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버려진 종이들을 모아 의자를 만들고 우려낸 티백들도 모아 작품으로 활용한다. 씹고난 껌도 마찬가지다. 웬만하면 그는 물건들에 ‘넌 끝장이야’라는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고 ‘쓸모’를 궁리해 새로운 소임을 준다. “우리가 정말 버려야 할 것은 쓰레기통”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상품들을 ‘단명’시키려 하지만 그는 버려진 물건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학생들에게도 그는 “타(他)에 해롭지 않은 질서가 바로 디자인이다”고 ‘그린디자인’의 개념을 강조한다. 재직하고 있는 국민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도 환경관련 디자인 과목을 개설했다.그에 따르면 “커팅 하나를 다르게 함으로써 ‘나머지’를 줄이고 낭비를 줄이는 것 역시 그린디자인”이다. 불필요하게 세련된 디자인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그의 강의는 특별하고 활기차기로 이름나 있다. 서울의 대기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강의실에 등장하기도 한다. ‘환경’과 ‘나눔’이란 뜻이 있는 곳엔 그가 있다!그는 어느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한다. 이유는 “소속되면 자유가 없어지니까. 자유롭지 않으면 창의적일 수 없으니까.”그러나 ‘환경’과 ‘나눔’이란 뜻이 있는 곳엔 꼭 나타난다! 몇 개의 붓과 물통, 페인트통, 아이들에게 나눠줄 환경 배지들과 엽서 등을 담은 큰 배낭을 메고. 이제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누군가는 ‘환경지킴이’로 부르고 누군가는 ‘괴짜’로 여기기도 한다.“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된 불편함은 없는가”라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즐거운 자승자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2005-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