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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법기술자 아닌 법률선비… 철두철미 금욕해야”/정성진 전 총장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지난 18일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사석에서 만난 지 3년은 족히 지난 듯한데…, 이름과 얼굴이 따로 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선뜻 받아들일까….’ 몇차례 발신음 끝에 전화를 받은 김 전 장관은 이런 걱정을 말 그대로 기우로 만들었다. 이름을 밝히기가 무섭게 “박 부장, 승진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연락도 못하고 미안하네, 잘 지냈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책이나 인사시점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놀라움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왔다.

당연히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는 말이 술술 풀렸고 김 전 장관은 몇차례 고사 끝에 응낙했다. 그가 과거 수사의 세세한 내용은 물론 아랫사람 경조사까지 챙기는 것을 두고 법조계 후배들이 ‘기억과다’라는 별명을 지어준 일화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렇게 성사된 인터뷰를 위해 지난 21일 서울 중구 장충동2가 자택을 찾았을 때 정 전 장관은 현관문 밖까지 마중을 나왔다.

―2008년 2월29일 법무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신 지 벌써 2년 3개월여가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요즘 자유롭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납니다. 시간을 제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원래 아침형 인간이라서 오전 4, 5시가 되면 일어납니다. 신문을 본 후에는 운동하러 갑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용인에 있는 서재에 갑니다. 청눌재(淸訥齋)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거기서 그날 읽을 책 읽고, 오후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 2년간 책을 50권 정도 읽었습니다.”

―특별한 주제나 분야를 정해서 책을 읽으십니까.

“아닙니다. 영혼의 자유라고 할까,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전 생활을 담연(淡然·욕심이 없고 깨끗함)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역사 분야의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리고 법치주의와 공직윤리는 제 삶에서 끝없는 과제이자 관심사여서 관련된 책들도 읽습니다. 정말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래도 고위공직에서 물러나면 허전함 같은 걸 느끼지 않으십니까.

“지난 2년여 동안 평생을 공직에 있던 사람이 공직을 떠난 후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 제 나름대로 정리를 했습니다.”

사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에도 ‘담연’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고위공직이 가져다주는 메리트가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평소 승진욕심, 자리욕심 없다는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곤 하던 농담을 건네보았다.

―대장 진급에 실패하고 예편하게 된 중장에게 참모가 ‘장군님은 스리스타까지 하셨으니까 덜 아쉽겠습니다’라고 위로하자 중장이 ‘넌 1층에서 떨어지면 아프냐, 3층에서 떨어지면 아프냐’고 반문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관님은 거의 4층에서 떨어지신 셈이신데.

“저는 항상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다 보면 맑고 어디에 구애되지 않는, 자적하는 상태가 됩니다. 또 가족이나 주위를 배려하고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특히 법률가로서 퇴임 이후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사건이 많든 적든 후배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감히 저와 비교할 수 없지만 공자가 주유천하를 하다가 돌아온 게 68세라고 합니다. 저도 우연히 68세에 공직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다 최근 발생한 스폰서 검사 사건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과거에도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항상 문제가 됐는데 그때는 주로 검찰권 행사의 독립성 문제가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찰 문화, 검찰의 권한과 관련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검찰제도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하고 검찰 문화도 반드시 고쳐나가야 합니다. 다만 걱정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검찰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혁명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우리 검찰도 굴곡이 없진 않았지만 광복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기강을 확립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검찰 일부에 문제가 있다고 검찰을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고 신뢰를 실추시켜 놓으면 결국은 국민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이번 사안의 경우 이유가 어쨌든 검찰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국민도 검찰을 악의 상징처럼 봐서는 안 되지만, 검찰도 스스로를 법 기능인, 법 기술자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법률지사, 법률선비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건 몸가짐의 문제입니다. 철두철미하게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스토익(stoic : 금욕적인)한 것이 검사들의 에토스(ethos : 기풍)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요즘은 검찰의 부패 못지않게 무능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과거에 비해 국민 권리의식이 높아져서 수사가 적법절차를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과거에는 임의동행해서, 고문은 아니지만 집요하게 추궁해 자백을 받아내고 이를 근거로 증거를 찾아내는 수사가 많았는데 이젠 불가능합니다. 둘째는 수사에 경험있는 베테랑들이 검찰을 떠나고 상대적으로 아마추어 기질이 강한 사람들이 수사를 맡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명숙 사건처럼 의도는 순수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의혹과 실망을 주는 결과가 생기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이런 진통은 선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국민 권리가 보장되는 투명한 나라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검찰이 국민을 위한 제도인 만큼 국민들도 검찰을 비판하되 그냥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는 겁니다. 국민이 보기에 법이 잠자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코 법이 죽어서는 안되니까요.”

―이명박 정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데 상응하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평가할 만하고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몇가지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법질서 바로세우기나 부패통제 노력이 국민을 승복시키고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좀 기품 있게, 설득력 있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선의와 실용정신을 갖고 하더라도, 국민이 저항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도덕적이고 국민을 감동시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합니다. ‘Be hard on the issue, be soft on the people’(쟁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사람에 대해서는 부드럽게)‘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게 이 정부의 과제입니다.”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도 그런 점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패 통제나 법치주의 정착도 국민이 믿고 따라야 하듯이 정책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감동을 줘야 따라옵니다. 법치주의가 안되는 이유를 조사해보면 꼭 정치, 국회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원구성부터 예산안 심의에 이르기까지 도통 법을 안 지키고 그게 늘 보도되니까 국민들이 법치주의의 출발점부터 믿지 않습니다. 국회, 정부 책임자, 사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지도층에서 솔선수범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도덕사회, 윤리사회였습니다. 법보다 예, 윤리, 도덕을 앞세웠거든요. 국민이 법에 대해 ‘우리를 귀찮게 하고 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강합니다. ‘법이 자신을 위한 것이고 법을 따라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하고 느끼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역사적 요인도 적지 않습니다. 일제시대 때 법은 식민지 통제의 수단이었고. 광복 후 군사정부 시절에는 독재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법에 대해 체질적으로 저항감, 거부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법치주의를 체질화하려면 위에서부터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요즘 어떤 분들을 자주 만나십니까.

“고마운 일은 저하고 근무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근무 안한 분들도 가끔 연락을 준다는 겁니다. 국민대의 경우 아무 기반도 없이 가서 교수와 총장을 했는데 대학 사람들이 저를 따라주고 협조해준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나름의 의지나 자세가 그분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쪽에서 마음을 주면 저쪽에서도 마음을 주게 된다고 봅니다. 지도자는 작은 자리에 있든 큰 자리에 있든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통솔이 되지 않습니다.”

―상대를 잘 기억하고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것으로 유명하신데 그것도 마음을 주는 한 방식이신가요.

“저는 지금도 중·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제일 친하고 자주 만납니다. 보통 검찰 같은 권력기관에 있으면 청탁문제 등으로 사이가 멀어지는데 저는 지금도 사이가 좋습니다. 마음을 주고받고 슬픈 일이나 기쁜 일 있을 때 관심을 보여준 것이 축적되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인간적인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검찰권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게 바탕이 안 되면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못합니다.”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古稀)에 이르셨는데 본인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몇점이나 주시겠습니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항상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앙드레 지드가 ‘삶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영원한 열정을 몰고 가는 자는 행복하리라’고 했어요. 이 말이 저한테는 와닿더라고요.”

―검찰 후배를 포함해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검사들에게는 언제나 원칙과 명분을 중요시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젊은이에게는 열심히 자기를 연마하되 개인보다는 공동체의식을 좀 더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열리고 트여 있는 것도 필요하지만 속이 들어차 깊이가 있고 남을 배려하면서 잘 협조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좀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625010336430150020

출처 : 문화일보                              기사입력 : 2010-06-25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