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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인! 국민인!!
“학교 전체가 독서삼매경…함께 읽으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요”/ 허보영(교육학과) 동문

친구ㆍ선생님과 이어주는 딱풀
책에서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로
친구 이해하며 반 분위기 좋아져
자기본질 지키는 예방주사
질문 반복하며 자기성찰 쌓이면
어떤 상황에도 본모습 잃지 않아
철학을 공유하는 동료선생님
독서 교육은 학생을 기다리는 일
둘이니까 견딜 수 있고 든든해


어른들은 책 읽는 학생을 좋아한다.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빌려오는 것뿐만이 아니다.

책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하는 만큼 차분하게 만든다고 여긴다. 책이 지식뿐 아니라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점점 더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책을 읽자고 하면 몸을 뒤틀며 저항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에 들어올 때까지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한 학교에서는 한 학급, 한 학년도 아니고 학교 전체가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 독서 열풍을 이끌고 있는 홍천여고의 서현숙, 허보영 선생님을 만나 독서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교육에 해당하는 활동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 독서동아리가 있고, 수업시간에 하는 교과연계 독서토론이 있다. 1년에 네 번 독서토론 카페가 있다. ‘5인의 책친구’라고 해서 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하는 독서토론도 있다. 종류는 많은 것 같지만 뿌리는 하나다. 함께 읽고 독서토론 하기. 그걸 기본 철학으로 삼고 있다. 혼자 읽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이들도 그걸 공부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하기가 힘들다. 워낙 생활이 바쁘고 피곤하니까. 그런데 보니까 함께 읽는 것에 힘이 있는 것 같다. 여기 오기 전 특성화고에 근무했는데 그곳 학생들도 혼자서는 책을 못 읽는데 함께 읽으니까 읽더라. 함께 읽고 모여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다고 한다. 독서동아리를 통해서 함께 읽으니까 재미있고 다음 스케줄을 같이 계속 잡으니까 끊임없이 이어나가게 된다. 책 내용을 잘 이해 못하면 다른 학생들이 얘기를 해준다. ‘그건 이래서 이런 거야’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던 걸 이해하고 보지 못한 걸 보게 된다. 아까 추리소설을 읽고 애들이 얘기를 나누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소름 돋는다’고 하더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친구가 짚어준 모양이다. 그게 같이 읽는 맛인 것 같다.”

이들이 이끄는 독서교육에는 만남이 있었다. 학생과 학생이 만나고 학생과 교사가 만난다. 책을 매개로 하여 책 이야기를 넘어 서로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알지도 못했을 친구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삶에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만남을 통해 사귀게 되고 사귀는 것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것을 ‘서로를 엮어주는 뜨개질’ ‘딱풀’ ‘자신을 확대하는 대화’ ‘자신의 감춰진 활동을 드러내는 활동’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친구들과 있는데도 생각보다 자기의 내밀한 얘기나 사회, 친구, 학교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어쨌든 자기 얘기를 하게 되고 다른 친구 얘기도 듣고 하니까 확실히 서로에 대한 이해도 좋아진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모둠별로 책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면 부수적으로 반 분위기도 좋아진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교사에게도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같이 책을 읽고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밥 같이 먹으면 친해지듯이 책을 읽으며 영혼의 양식을 나눠먹어서 친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독서를 매개로 하여 교과와 교과 바깥, 수업과 동아리 활동, 교사와 학생을 중층적으로 엮어놨다는 점이다. 그저 수업시간에만 하면 재미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 동아리 활동으로만 하면 규모에서 제한이 있을 것인데 이들을 오밀조밀하게 엮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교과가 국어이고, 맡고 있는 일은 독서교육, 도서관이니까 다양하게 변주를 하고 있다. 우리가 일단 수업시간에 교과연계 독서수업으로 한 학기에 한 권 읽고 모둠별로 토론한다. 1학년 전체에 독서토론을 한 번 가르치는 셈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독서토론 주제를 선정하는 방법, 토론을 진행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정식으로 배운 뒤 그걸 바탕으로 독서동아리를 한다. 독서동아리는 모든 게 자유라는 데 매력이 있다. 교과연계 수업 땐 선생님이 책을 권해주고 그 책에서 골라서 토론하는데 동아리는 주제도 스스로 정하고 활동모임 주기나 장소도 자유롭게 정한다. 독서토론을 할 때도 훨씬 말랑말랑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세월호 유가족 육성을 기록한)‘금요일에 돌아오렴’을 읽고 책대화를 하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노란 리본을 만들고, 어떤 책은 책대화를 하고 나서 그걸 갖고 여론조사를 해서 붙여놓는 등 훨씬 실생활에 가깝고 문화가 되는 활동을 한다. 인문학 독서토론 카페는 우리가 주제도서를 발표하면 애들이 각자 읽고 주제 하나를 만들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모여서 토론하고, 끝나면 또 심화 글쓰기 대회를 한다. 비슷한데 조금씩 다르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책으로 활동을 한다. 조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학교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은 ‘사귐’을 가진다. 5인의 책친구는 계절별로 학생 다섯 명이 교사 한 명과 함께 서너 차례에 걸쳐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그것을 결과물로 만들어 낸다. 학교를 다니며 이렇게 교사와 소규모로 머리를 맞대고 책 한 권에 대해 길게 이야기해 본 경험을 가진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그렇기에 이 학교에서의 독서는 ‘교과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넘어 ‘추억’이 된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한 학생은 이것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누구나 함께 하고 싶은 학창시절의 활동이 됐다.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책을 읽고 친구들과 나눴던 생각이나 자기성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게 성공이란 뭘까’. 책을 읽지 않는다면 이런 질문을 세워놓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일이 지금의 학교 교육과정에서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내 삶에, 가정에, 학교에,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한 번씩 다시 생각하고 성찰해보는 것이다.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고 토론한 것이 학생들 인생에 원체험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을 출세하게 하거나 인생을 대단히 멋있게 만들어줄 큰 일은 아니지만, 홍세화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항체를 하나씩 만들어주는 일은 된다. 어떤 상황에도 나의 가장 본질적인 것까지 어디에다 팔아넘기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 나라고 할 수 있는 핵심만은 지키면서 살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거다. 정말 힘들고 살아가기 각박할 때 자기 몸과 마음과 머리에 각인된 인생의 원체험으로서 어떻게든 작용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무엇보다 독서의 가장 큰 역할은 ‘서사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파편화된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래도 인간의 삶은 ‘이야기’여야 한다’는 감각이 있어야 이 이야기로서의 삶을 파괴하는 시대에 맞설 수 있다. 그게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며 존엄한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홍천여고에서 학생들은 책을 매개로 서로를 염려하고 존중하는 만남을 통해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확장하는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사람의 성장을 도모하고 바라보는 것만큼 교사의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이 두 교사는 지금이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 좀 못 견디겠다 싶은 순간도 있는데 문득문득 감동을 줘서 어제는 흉보다가 오늘은 ‘그래도 참 예뻐요’라며 간증을 하게 된다.(웃음) 교사에게 제일 힘든 일이 입 다물고 있는 거다. 애들 하는 걸 보면 맘에 안들 때가 있어서 참견하고 싶은데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책도 이만큼 읽었으면 좋겠는데 영 못 읽고 졸고, 토론하는 거 보면 성에 안 차고, 질문을 만들어도 이상한 질문을 만들고, 이런 게 일상이다 보니까 끊임없이 참아야 한다. 그러다가도 유난히 살아있는 반에 들어가 애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감동 받고, 그런 일을 학생들이 매일매일 만들어준다. 그러면서도 견뎌야 한다. 그걸 우리는 둘이 같이 하니까 할 수 있다. 업무상 동료일 뿐만 아니라 독서교육의 길에서 철학을 함께 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서로 든든하다.”

혼자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혼자의 생각으로는 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둘이기 때문에 서로 지지하며 같이 견디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 동료가 있는 학교인 것이다. 학교에서도 독서교육을 혼자 담당하기 어렵다며 이 두 교사를 배치해줬다고 한다. 교사의 동료성에 대한 관리자의 이해와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학부모들 역시 협조적이며 학생부종합전형과 같은 입시제도의 변화도 이들의 활동이 좀 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제대로 된 교육이 하나 일어나기 위해 교육제도에서부터 관리자, 그리고 학부모에 이르는 협조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두 교사가 만들고 누리고 있는 가르침과 배움의 기쁨이, 교육이 다른 학교에도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서현숙ㆍ허보영 교사는

서현숙 교사는 1972년 강원 화천 출생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94년 교단에 나왔다. 허보영 교사는 77년 강원 홍천 출생으로, 국민대 교육학과를 나와 2006년 임용됐다. 각자의 근무지에서 독서교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오다가 지난해 홍천여고 국어 교사로 나란히 부임해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독서동아리 지도, 독서토론 수업은 물론 저자 초청 강연과 연계된 ‘독서토론 카페’, 사제가 함께하는 ‘5인의 책친구’ 등 다양한 독서활동 프로그램을 학생들의 높은 호응 속에 운영하면서 학교 독서교육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원문보기 : http://www.hankookilbo.com/v/2efe252f77cf4c5fbda7d7f0ef4b4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