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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茶 문화 중흥에 나선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일본의 지인한테서 드라마 ‘대장금’이 아쉬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조선의 다양한 궁중요리를 보여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차(茶)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차밭 대화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다도 종주국 면모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저도 많이 속이 상했습니다.”
한국 차 문화 중흥에 나선 김의정(63) 명원문화재단이사장은 혀를 끌끌 차고 만다. 한국의 전통 다례가 있는데도 상당수 다인들이 일본 다도를 추종하는 데다 이를 바로잡을 모처럼의 기회도 날려버렸다는 생각에서다. 국내에선 제사를 드리는 ‘차례(茶禮)’도 차 대신 물이나 술을 올릴 정도로 차 문화가 철저히 망가져 있다. 그는 인사동에 일본식 찻집이 늘어나는 것도 못마땅하다.

“다례는 얼이 깃든 전통 문화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찬란한 꽃을 피웠지요.”

다례는 고려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때 ‘고쇼마루’라는 배로 조선 도공과 차 도구를 쓸어갔다. 조선에서 가져간 ‘찻사발’(이도다완·교토 대덕사 소장)을 국보로 삼는 등 우리의 선진 차 문화를 강점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국회에서 ‘국제 차 문화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차 문화가 부흥돼야 21세기 한국의 정신문화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례가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고, 한국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는 날을 꿈꾸는 것은 한낱 망상일까. 세미나에는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국회의원 20여명이 참석해 다례 교육 입법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다례에는 자기 존중, 타인 배려, 자연 사랑, 충·효·열 사상 등 모든 것이 녹아 있습니다. 가정에서 전통 다례가 살아나고, 손님에게 커피 대신 차를 대접한다면 삶의 격이 달라질 것입니다.”

‘다례 사랑’은 모친(명원 김미희·1920∼1981)에게서 물려 받았다. 쌍용그룹 창업자인 성곡 김성곤(1913∼1975)의 부인인 명원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 선사(1786∼1866)가 수행한 해남 일지암을 복원했고, 1970년대 도공과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재를 털어 전통 다례의 맥을 살려 나갔다. 명원은 또 궁중·사원·접빈·생활 다례법을 정리해 국내 최초로 ‘차 문화 학술대회’를 열어 ‘명원다례법’을 발표했다. ‘한국차인회’도 결성했다. 특히 조선의 마지막 상궁 김명길에게서 궁중 다례의 맥을 이어받은 것은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명원은 차 문화 복원에 앞장서고도 그토록 숙원하던 ‘차의 날’(매년 5월25일, 올해 20회) 제정을 보지는 못했다.

김 이사장은 95년 모친의 호를 따 명원문화재단을 만들었다. 과거 부친이 모친을 외조했듯, 김 이사장의 남편 이승원(국민대 재단이사)씨가 곁에서 그림자처럼 돕고 있으니 ‘다례 사랑’의 대잇기 사연이 남다른 셈이다. 김 이사장은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우리 다례의 매력은 ‘소박하고 자연스런 미와 멋’으로 집약된다. 이에 비해 일본 다도는 너무 인위적이다. 그는 국내에 다례를 가르치는 유치원이 늘고 있고 주한 외교사절이나 해외 입양아, 젊은 층들 사이에 다례 열기가 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다례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다례의 참 멋을 안다면 지혜롭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지요. 내년 봄에는 매주 토요일 덕수궁 내 정간헌에서 다례 시연회를 열어 일반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김 이사장은 요즘 서울 신문로 명원문화재단과 성북동 명원다례전수관에서 직접 다례를 전수하느라 쉴 틈조차 없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소녀가 전통 차 문화를 이끄는 ‘다례 여걸’로 변했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출처 : 세계일보 2006.12.14 (목)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