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그림 파는 건 프로 되는 것… 아시아프에서 배웠다"/김성윤(회화전공 05)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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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프가 배출한 '27세 스타 작가' 김성윤 학교 친구들, 혹은 교수의 눈높이에 맞춰 그림을 그려왔던 미대생은 아시아프와 함께 '관객'을 만나고 비로소 '작가'가 됐다. 아시아프가 배출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성윤(27) 이야기다. 지난 11일 서울 수유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성윤은 "아시아프 참가 전엔 학교 내의 관계에만 의존하다 보니 작업의 긴장감이 떨어져 고민이었다.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불특정 관객에게 내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고, 이후부터는 관객의 시선까지 작업의 일부로 포함시키게 됐다. 그게 내겐 아시아프 참여의 가장 큰 성과다"라고 했다. 2009년 제2회 아시아프에 참여한 김성윤은 2010년 홍콩 아트페어에선 출품작 3점이 모두 팔렸고, 2011년 갤러리현대의 젊은 작가 소개 공간 '16번지'에서 연 개인전 'AUTH ENTIC'에서도 작품 15점이 모두 팔렸다. 국민대 예술대학 학생이던 김성윤은 2008년 제1회 아시아프 때는 군 복무 중이라 전시회 현장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아시아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던 터였다. "설치·미디어 작품이 대세인 요즘 미술계에서, 아시아프는 관객에게 회화를 보여줄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그림 그리는 대학생들에게 특히 주목도가 높았다." 2009년 아시아프에 그는 작품 두 점을 냈다. 친구에게 1970년대 복장을 입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캔버스에 옮긴 작품과 1970년대 설악산에 오른 등산객들의 단체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김성윤은 4:1의 경쟁률을 뚫고 아시아프 참여작가로 선정됐고, 작품 두 점 중 등산객을 그린 작품이 130만원에 팔렸다. 첫 작품 판매였다. 그는 그 돈으로 작업용 카메라를 샀다. "'그림을 판다는 것'은 '프로'가 되는 거다. 당시 내겐 사춘기 소년이 어른을 동경하는 것과 같았다. 그림이 팔린다는 것이 어떤 건지 많이 궁금했는데, 아시아프를 통해 경험하게 됐다." 작품 판매는 시작일 뿐이었다. 아시아프가 끝나자 화랑 2~3군데에서 전시회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갤러리현대 측은 "치밀한 화면 구성 능력과 아이디어의 독창성, 주제의 깊이 등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아시아프 이후 그는 주제를 바꿨다. 근대 올림픽으로. 홍콩 아트페어와 '16번지' 전시에서 팔린 작품도 '근대 올림픽' 시리즈다. 살아있는 비둘기를 총으로 쏘아 맞히기, 움직이는 사슴 모형 쏘기, 한 손으로 역기 들기 등 지금은 사라진 옛날 올림픽 종목 사진을 찾아내 이태원 등지에서 섭외한 외국인 모델에게 사진 속 선수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게 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그는 미국 인상주의 초상화가 존 싱어 사전트(Sargent·1856~1925)의 화법(畵法)으로 캔버스에 옮겼다. '사라진' 올림픽 종목이, '지금은 없는' 옛날 화풍으로 부활한 셈. 김성윤은 "회화라는 장르가 현재 처한 상황이 한때 인기 있었던 올림픽 종목의 '소멸'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상황을 지금은 낡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전트의 화풍으로 표현하면서 '소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남들보다 일찍 그림을 팔아봐서인지 오히려 판매에는 덤덤해졌다. 판매에 안달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는 이 젊은 작가는 아시아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프 관객은 고급 컬렉터가 아니라 그림을 잘 모르는 대중이다. 그러나 어리숙한 초보 컬렉터가 나중엔 큰 컬렉터가 되기도 한다. 대중이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는 것, 전문가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내 작업에 관심을 갖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거기서 얻는 긴장감과 흥분과 반성이 작업에 도움이 된다. 아시아프의 가장 큰 미덕은 그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1/2012052102722.html 출처 : 조선일보 기사입력 2012.05.22 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