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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등단 후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소설가 조현(43)씨는 SF코드를 버무려 톡톡 튀는 재미의 단편소설을 주로 발표했다. 등단 당시에는 평단이 한국문학의 돌파구로 추리, 스릴러, SF등 장르소설을 주목하던 때라 문운도 따랐다.
하지만 단편 '그 순간 너와 나는'은 이런 조씨의 장기를 정확히 거스르는 작품이다. 예심 심사위원들은 "대중문학부터 순문학까지 다양한 화법이 가능한 작가의 재능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본심 후보작에 올렸다.
"왕십리는 지방에서 상경한 서민들이 처음 정착하는 장소거든요. 상왕십리 쪽 소규모 가내수공업 공장이 많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도축장도 있었는데, 이런 한편에 한양대로 상징되는 지식인 그룹도 있죠."
조씨는 "서울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왕십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왕십리에 해박한 이유는 이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열두 살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에는 조씨의 자전적 경험이 상당 부분 녹아있다.
1980년 서울로 전학 온 '나'는 부잣집 아들 민호와 철호, 승훈과 함께 '4인방'으로 불리며 차차 서울생활에 적응해 간다. 철호의 부모는 왕십리에서 마찌꼬바(영세 공장)를, 승훈의 아버지는 우시장을 운영한다. '나'는 우연히 굿 구경에 나섰다 미설을 만나게 되고 '성숙해 가는 여자애의 분위기'에 설렌다.
미설은 무당의 딸로 그녀 역시 가끔 미래의 일을 보거나 꿈꾼다. 미설의 예지력을 비밀로 간직하며 미묘한 감정을 쌓던 두 사람은 방학이 시작되자 인형을 타기 위해 함께 여름 성경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약간의 오해가 생기고, '나'는 미설을 철호의 마찌꼬바로 데려와 4인방과 함께 다그치는 와중에 미설의 손가락이 프레스기에 들어가는 사고가 난다. 병원에서 미설은 어른이 된 민혁이 미설에게 교회에서 받은 인형을 선물로 건네는 날 '내'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꿈의 내용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고 '나'를 달랜다. 어른이 된 '나'는 민혁을 만나고, 그가 금발인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민혁과 '나'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민혁을 불러내 기어코 인형을 받아낸 후 미설에게 건넨다. 그후 민혁은 5년 후 병으로 세상을 뜬다.
이 작품은 80년대 왕십리 '4인방'을 통해 서울의 현대를 반추하는 연작소설의 서두 격인 작품이다. 민혁, 철호, 승훈이 단명하는 것은 소설적 허구지만, 민혁의 서재 있는 넓은 집이나 무당 집 딸은 유년시절 작가가 왕십리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재현한 것이다. 조씨는 "원래 장편으로 구상한 소설"이라며 "이 소설 초반 실종된 딸아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연작 소설에서는 이 딸을 찾으며 얽히는 4인방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교직원인 조씨는 예술대학 영화기자재실에 일하며 퇴근 후 틈틈이 소설을 썼다.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영화를 전공하며 시나리오로 서사를 공부했다. 조씨가 본격적으로 주경야작(晝耕夜作)을 한 건 2005년 무렵부터다. 매일 영화비평, 콩트 등을 적게는 200자원고지 10매, 많게는 30매를 써 블로그에 올렸고, 30대를 마감하며 응모한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 약력 -
▦1969년 전남 담양 출생
▦숭실대 행정학과, 국민대 종합예술대학원 졸업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으로 등단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11/h2012110120232884210.htm
출처 : 한국일보 기사보도 2012.11.01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