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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작] 둘기의 가출 / 김경락(문예창작대학원 07) 동문

오랫동안 내게 주어진 달란트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무엇이 옮은 삶인지, 어떤 것이 나의 길인지, 그 끝없는 고민의 결과가 제겐 문학으로 귀결되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과연 잘하고 있는지 고민했다. 삶에 답은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고민하는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과 살아가기 위해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퇴근길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 축하한다는 기자님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져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둘기의 가출’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며,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언제가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이 작품을 읽어주겠다. 동화작가로 선정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잘 하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쓰겠다. 오늘 또 내 삶에 하나의 지표를 세운다.

문학을 가르쳐주신 국민대 문창과 교수님들과 글모임 ‘종각역 글벗들’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기쁨을 전한다. 둘기처럼 언제나 고민하며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작가가 되겠다.


 * 김경락 당선자 프로필

▲2010년 국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IT 회사 근무




[당선작 전문]



화창한 봄날입니다. 햇살이 적당히 내리쬐는 동물원 한 귀퉁이에 비둘기 가족이 모여 볕을 쬐고 있습니다.

구구구구- 비둘기들은 연신 부리로 땅에 흩어진 과자부스러기를 쪼아댑니다.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비둘기는 세상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바위와 돌로 꾸며진 넓은 우리에는 호랑이 가족이 볕을 쬐고 있고, 커다란 새 우리엔 화려한 깃을 펼친 공작새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아기 비둘기는 먹는 것보다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기야. 아빠처럼 먹이를 쪼아보렴.”

아빠 비둘기가 과자 부스러기를 쪼며 말합니다. 둘기는 먹이를 먹지 않고 묻습니다.

“아빠, 아빠. 우리는 왜 호랑이나 공작새처럼 우리에서 살지 않는 거죠?”

아빠 비둘기가 웃으며 말합니다.

“그건 우리가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다른 동물처럼 묶여있지 않고 자유롭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지.”

“그럼 우리는 왜 사육사가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사람들이 떨어뜨린 과자를 먹나요?”

둘기가 다시 묻자 아빠 비둘기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우리 비둘기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기 때문이지. 우리가 인간에게 사육당하지 않는 이유란다.”

아빠의 대답에 둘기는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곳을 벗어나지 않나요?”

아빠 비둘기는 이번엔 좀 더 골똘히 생각합니다.

“이곳에 있으면 쉽게 먹이를 얻기 때문이지.”

“그럼 사육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아빠 비둘기는 당황했지만 금세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니란다 얘야.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사육당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스스로 이곳에 머무는 거란다.”

둘기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동물원 저편에는 높은 빌딩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었죠.



아빠 비둘기는 저만치 떨어진 곳으로 가 먹이를 쪼기 시작합니다. 비둘기 가족은 장소를 옮겨가며 먹이를 쪼는 것에 정신이 팔렸지요. 비둘기들은 몸이 무거워 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살이 쪘습니다.

둘기는 비둘기 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혼자 노는 게 좋습니다. 백조와 오리가 노는 연못에 가기도 하고, 때론 먹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다른 비둘기와 달리 날아오르는 연습도 합니다.

어느 날이었지요. 둘기는 공작새 우리에서 공작 아저씨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공작 아저씨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깃을 접은 채 쉬고 있었습니다.

“공작 아저씨, 오늘은 왜 화려한 깃을 보여주지 않나요?”

“아기 비둘기로구나. 오늘은 구경하는 사람이 없어 잠깐 깃을 접은 거란다. 항상 깃을 펼치는 건 힘들단다.”

공작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정말 지친 표정이었습니다.

“그럼 평소에는 왜 깃을 펼치고 있나요?”

“그건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지. 다들 내 화려한 깃을 보고 감탄하니깐.”

“사람들이 볼 때만 깃을 펼치는 건가요?”

“음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는 원래 암컷에게 구애할 때 깃을 펼친단다. 하지만 이 동물원은 내 짝을 만들어줄 능력이 없단다. 그래도 난 깃을 펼칠 수밖에 없지. 내 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이 많아야 동물원이 유지될 테니 말이다.”

“아저씨는 동물원을 위해서 깃을 펼치는 거군요.”

그 말에 공작새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합니다.

“얘야.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단다. 때론 먹이를 위해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단다.”

둘기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둘기에게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볕이 따사로운 오후, 둘기는 동물원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다 호랑이 우리에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그곳에는 아기 호랑이들이 비스듬히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들은 따분해 보였습니다. 둘기를 보자 심심했던 아기 호랑이가 말을 겁니다.

“비둘기구나. 넌 어디서 왔니?”

“응 저기 밖에서.”

둘기는 동물원 밖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거긴 뭐가 있는데?”

아기 호랑이는 궁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둘기는 호랑이들이 아직 이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너 혹시 동물원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니? 거긴 환상적인 세상이 있을지도 몰라.”

“아냐. 난 여기가 좋아.”

둘기의 말에 새끼 호랑이가 대답합니다.

“왜?”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니깐.”

“하지만 이곳은 너무 답답하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아. 어차피 밖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걸. 괜히 밖으로 나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그 말에 둘기는 맥이 빠졌습니다.

“넌 겁쟁이야.”

둘기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맘대로 생각해. 난 저쪽에 가서 놀 거야.”

아기 호랑이는 앞발을 흔들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둘기는 대꾸하지 않고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 둘기는 먹이를 많이 먹어두었습니다. 그리고 힘차게 날아올랐지요. 둘기는 동물원 담장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멀리멀리 기력이 다할 때까지 날았습니다. 동물원 밖은 별천지였습니다. 높은 빌딩과 끝없이 펼쳐진 도로,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향해 갈수록 숨이 막혔습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 비둘기 떼가 보였습니다. 비둘기들은 하나같이 깃털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차도를 걸어 다니며 먹이를 주워 먹었습니다. 동물원과 달리 지저분한 음식이었지요. 어떤 비둘기는 간밤에 사람들이 버린 술에 취해 비틀대며 걸었고, 어떤 비둘기는 오른쪽 발목 아래가 없습니다. 둘기는 깜짝 놀라 소리 질렀습니다.

“그렇게 이상하게 볼 건 없어. 아이들이 날린 연줄에 발목이 걸려 잘린 것뿐이야.”

다리가 잘린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많이 아팠겠구나.”

“응,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이 도시에서 이 정도는 예삿일이야. 근데 넌 어디서 왔니?”

둘기는 날개를 들어 도시 저편 자신이 날아온 곳을 가리켰습니다.

“멀리서 왔구나. 여긴 보는 것처럼 이런 곳이야. 지저분하고 숨 막히지. 그래도 살다 보면 이곳도 괜찮아.”

“여긴 어디든 이러니?”

“뭐 그런 셈이지. 어딜 가나 비둘기의 삶이란 그런 거야. 내몰리고 떨어진 걸 주워 먹고.”

“하지만 자유롭지 않니? 적어도 갇혀 지내지는 않잖아.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그 말에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차라리 우리에 갇혀 편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어. 환영받지 못한 손님만큼 비참한 것도 없으니깐. 난 가끔 우리가 이 도시의 말썽꾸러기가 아닐까 생각해.”

둘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넌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랐구나. 이봐! 돌아갈 곳이 있다면 어서 돌아가도록 해. 이 빌어먹을 도시 생활에 찌들면 돌아가기 싫어져. 불청객 주제에 눈은 높아지거든.

그 말에 둘기는 슬펐습니다. 문득 동물원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웠습니다.

“나 그만 가야겠다. 반가웠어.”

둘기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나도 반가웠어.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둘기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고 화창한 봄이 되었습니다. 둘기는 햇살이 적당히 내리쬐는 동물원 한 귀퉁이에서 가족과 일광욕을 하고 있습니다. 둘기는 어느새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기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떨어뜨린 과자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평화로운 날들입니다.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막내 비둘기가 먹이를 먹는 것보다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이었지요.

“아빠. 왜 우리 비둘기들은 물소나 기린처럼 우리에 있지 않고 밖에 있는 거죠?”

막내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그 말에 둘기는 작년 봄 자신의 일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막내에게 무슨 말을 해주는 게 좋을까. 둘기는 가만히 입을 엽니다.

“그건 우리가 축복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느 동물보다 자유롭지. 그래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란다.”

그 말에 막내가 묻습니다.

“그럼 우리는 왜 사육사 아저씨가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사람들이 떨어뜨린 과자를 먹나요?”

“그건 비둘기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인간에게 사육당하지 않는 이유란다.”

생각해보면 그 말은 지난봄 아빠 비둘기가 들려준 것이었습니다. 둘기는 멀리서 먹이를 쪼고 있는 아빠 비둘기를 봅니다. 아빠 비둘기의 깃털은 작년보다 윤기가 없습니다. 문득 아빠 비둘기도 자신과 같은 고민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빠, 우리는 왜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여기만 있는 건가요?”

막내가 다시 묻습니다. 잠깐 생각에 빠진 둘기가 입을 엽니다.

“얘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구나. 아빠도 그랬단다.”

그 말에 막내는 가만히 둘기를 바라봅니다. 둘기는 말을 잇습니다.

“원한다면 이곳을 벗어나 너의 인생을 개척해 보렴. 세상을 경험해 보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려무나.”

그 말에 막내 비둘기는 둘기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합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전 그냥 여기서 살래요. 집 나가면 고생이잖아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과자부스러기를 쪼기 시작합니다.

“요즘 애들이란 참.”

둘기는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아까부터 막내가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이 언젠가 동물원 저편으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땐 정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둘기는 알 수 없습니다.

화창한 봄날입니다. 봄날의 동물원은 왜 이렇게 햇살이 따사롭기만 한 걸까요. 동물원 한 귀퉁이에는 오늘도 비둘기 가족이 모이를 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끝>


 

원문보기 :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20124400541098007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20124400540721007

출처 : 광주일보 | 2015년 01월 02일(금)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