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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性이 자라는 공간 '정글짐' / 건축가 장윤규(건축학부) 교수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집' 지은 건축가 장윤규·서현]

고루 뚫린 정사각 窓 통해 햇볕 쬐고 바깥풍경과 소통… 교사 '네모 공포증'도 극복
"우는 아이 줄고 온화해져"
 
 

어떤 공간에서 일하느냐가 업무에 영향을 미치듯이 어떤 공간에서 자라느냐도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 말랑말랑한 촉수로 세상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최근 어린이집 문제로 시끌벅적한 가운데 정형화된 형태에서 벗어난 디자인으로 어린이 교육 환경에 귀감이 될 만한 어린이집 하나가 들어섰다.

파주출판도시를 가로지르는 갈대샛강 옆. 구멍 뽕뽕 뚫린 상자를 쌓은 모양의 3층 건물(대지면적 1120㎡, 연면적 1078㎡)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방팔방 뚫려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정글짐같은 구조의 이색 건물. 지난해 9월 들어선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집'이다.

파주출판도시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시'를 지향하며 책과 건축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의 자녀 복지엔 소홀했다. 입주 출판사 직원 총 5500여명 가운데 70% 정도가 여성인데 어린이집 하나 없었다. 워킹맘 출판사 직원들은 육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지난해 '숙원 사업'이 이뤄졌다. 근로복지공단 지원을 받아 직장 보육 시설로 출판단지 입주 기업 직원이 자녀를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을 짓게 됐다.

건축으로 일궈낸 이 지역의 문맥이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설계로 이어졌다. 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 송영만 회장(효형출판 대표)은 "출판단지와 어울리는 건물,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자유분방한 건축물을 짓기로 하고 건축가를 물색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건축가가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와 서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였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집을 벗어나 처음 접하는 건축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이집을 보세요. 수용소가 따로 없습니다. 통제·억압·관리 같은 단어가 절로 연상되는…." 창으로부터 햇살이 환히 쏟아지는 어린이집 안에서 장 교수가 말했다. 천편일률적인 어린이집의 문법을 깨기 위한 첫 번째 시도. 네모 창(窓)이었다. 한 변이 각각 45㎝, 80㎝, 120㎝인 정사각형 창을 외벽에 고루 뚫었다. 공간을 환하게 하고, 아이들의 마음에 바깥 풍경을 담기 위한 고려였다.
 


교사 설득이 최대 관건이었다. "저희는 '네모 공포증'이 있어요. 교사들 머릿속엔 '네모'→'모서리'→'안전사고'라는 등식이 있어요. 워낙 안전에 민감하다 보니. 이번에 고정관념을 깼네요." 어린이집 도정현 원장이 말했다. "'와, 눈이 와!' 아이들이 작은 창에 턱 괴고 앉아 말해요. 답답하지 않으니 우는 아이도 확실히 적네요."

두 번째 시도. 흰색 관철이었다. "어린이집은 무조건 알록달록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더군요. 우린 하얀 도화지 같은 건물을 제안했어요. 어른들이 색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하얀색 위에 자유롭게 색을 입히도록. 안과 밖, 창과 층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서 교수가 하얀 벽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그스름한 노을, 진회색 먹구름…. 시시각각 자연이 풀어놓은 물감이 하얀 벽면을 채색한다.

이 어린이집의 수용 정원은 99명, 어린이 1인당 시설면적은 약 10㎡다. 영유아보육법에 규정된 1인당 시설면적 4.29㎡보다 두 배 이상이다. "서울 민간 어린이집에 보낼 땐 왠지 답답했어요. 여기 다니고부턴 아이가 좀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다섯 살 아들을 이곳에 보내는 이은정 푸른숲 편집장의 말이 고스란히 전해준다. 공간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7/20150217001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