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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인! 국민인!!
경계도 틀도 모두 부숴버렸다…禪의 건축가 김개천 씨 / (실내디자인학과 교수)


그는 58년 개띠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기쁜 나머지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마을전체가 태극기로 펄럭이고 있었다. 개천절이었다. 잘됐다. 내친김에 아들 이름도 개천(開天)으로 지었다.
하늘을 연다. 이름이 무거워 힘들겠다고 하자 그는 “이름의 뜻에는 한참 작고, 키만 클 뿐이다”며 웃었다. 김개천(金開天`58`국민대 조형대학 실내디자인과 교수) 씨. 한국건축가협회상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을 수상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명묵의 건축’등 동양의 건축미학에 관한 저서와 함께 담양의 ‘정토사’, 양평의 ‘한칸집’, 조계종 ‘국제템플스테이센터’등을 지어 선(禪)의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불교적인 건축가로 꼽히는 그를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국민대에서 만났다.

-아주 젊어 보인다.

▶생각이 젊어서 그렇다. 물론 어머님 아버님 모두 젊어 보이는 집안의 내력 덕도 있다. 아마도 생각이 늙지 않아 젊어 보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생각이 늙지 않는가.

▶어떤 생각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옳다고 믿기 쉽다. 그래서 늙으면 바뀌기가 힘들고 야들야들하지 못하다. 자연히 받아들이는 힘이 약해진다. 자신의 고집과 틀을 없애는 것이 젊어지는 방법이다. 그래야 유연하다.

-당신의 건축도 유연하다고 생각하나.

▶건축은 나에게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도 않고 모든 것의 배후와 정면에 있을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중심에 있어야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배후에 있는 것이 더 멋지다. 나서지 않고 말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가 자유롭고 신나게 멋있는 삶을 살게 한다. 배후는 때론 공격적이고 더 저돌적으로 정면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건축을 공부한 뒤 불교공부는 왜 하게 됐는가.

▶동국대학 선학과에서 철학박사를 수료했다. 젊은 시절 10년에 걸쳐 미국과 중동에 있으면서 ‘건축이란 무엇인가’가 나의 화두였다.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할 수 있게 된 이후 그 질문에 깊이 있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불교공부를 했다.

-전문가이고 싶었다는 말인가.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점은 아마추어는 자신이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프로는 누가 제일 잘하는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전문가는 세세한 말을 할 수 있고 아마추어는 큰 말만 한다. 기왕이면 프로답게 알고 싶었다. 깊어지고 넓어지고 싶었다.

-선(禪)의 건축가로 불리고 있는데.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건축을 하고 싶었다. 진리도 구하지 않고 망상도 타파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일하고 싶었다. 5년마다 건축에 대한 생각은 달라지고 있다. 예술가가 똑같은 그림만 그린다면 예술가가 아니다. 계속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가.

▶30대 때 나의 건축은 ‘툭툭 툭툭 탁탁’이었다. 그 시절 건축은 두드려 짓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지을 수 있는가만 생각했다. 지금은 건축이 아닌 것으로 건축을 만들고 싶다. 보이지 않는 데 존재하는 도발적인 건축을 하고 싶다. 섹시한 건축이라고 할까.

-도발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그 경계가 없는 외부가 내부가 되고 내부가 곧 밖으로 열려 있는, 걸림과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건축을 말한다. 완전한 자유다.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이 구속당하지 않는 그런 건축을 만들고 싶다.

-담양의 ‘정토사’와 양평의 ‘한칸집’이 그런 형식을 띠고 있는 것 같다.

▶정토사의 무량수전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지 않다. 그냥 콘크리트 건물이다. 그리고 모든 무량수전이 서쪽을 향해 있는 것과는 달리 산과 연못을 볼 수 있도록 동쪽을 향하고 있다. 파격이다. 스님이 이런 파격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기둥만 있을 뿐 벽은 모두 들어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되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절이다. 없으면서 있는 그런 절의 구조를 하고 있다. 자연에 열려 있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양평의 한 칸집도 9개의 공간을 트면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그런 건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축주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건축은 제약과 구속이 많다. 건축가는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득할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건축주의 요구 때문에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은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고집하면.

▶전문가도 틀릴 수 있다.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한다. 그러나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양보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건축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건축주의 생각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 건축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에게 멋진 삶을 제안하는 것이다.

-멋진 삶이란 어떤 것인가.

▶새로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건축으로 인해 닫혀 있는 사람은 열리기를 희망한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다. 그 건축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틀이 그 건축으로 인해 변화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매력적인 건축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건물은 마치 영혼을 갖고 있는 듯 느껴진다. 살아 있는 인간처럼 다가와 말을 안 해도 저절로 스며든다. 내 마음에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이런 마음을 나는 ‘쌔하다’고 표현한다. 쌔한 건축이 매력적인 건축이다.

살아있는 건축은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자연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타지마할을 봐라. 지금도 세련돼 있다.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자연에 종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거느리고 있다.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건축이 아름답다.

-한국의 옛 건축에 관심이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한국의 미는 얼른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적 미의 중요한 특징은 없으므로 있는 형식이다. 드러내지 않는 형식으로 드러냄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대중적이지 못하다. 또 자유롭고 편안해 미(美) 같지 않다. 무엇인가를 강요하거나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 건물은 알아주기를, 느껴주기를 강요한다. 긴장감을 강조하는 것이 일본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보면 사람들은 감동하나 왠지 불편하다. 중국은 혼재돼 있다. 너무 깊고 넓어 무슨 맛인지 알기 쉽지 않다.

-한국건축의 매력이라면.

▶강요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추측할 수 없는 형식과 건축이어서 좋다. 자연을 포괄하는 건축적 장치를 즐겨 이용하고 있다. 포용하는 큰 형식의 건축이다. 산을 그림자처럼 혹은 건물의 벽처럼 이용한다. 엄숙함을 강요하지 않고 숭고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국의 건축을 ‘명묵(明默)의 건축’이라고 처음으로 이름 붙였다. 명묵의 건축은 무슨 뜻인가.

▶해와 달이 함께하는 밝음이다. 일본의 침묵은 정묵적 침묵이다. 달빛이 물에 비친 고고함을 가진 침묵이다. 중국은 해 질 녘의 침묵이다. 침묵하지 않는 침묵이다. 한옥의 방은 침묵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당도 그렇다. 밝은 침묵이다. 한국건축의 핵심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일본, 중국은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우리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수준이 아직 선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따라했을 뿐 자신의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수준이 빨리 되어야 한다.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갖고 있지 않다. 그냥 끊임없이 흔들거리고 싶다. 다른 말로 몸부림치고 싶다. 진동하는 형식이다. 고정적인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탄력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나 자신과 삶을 즐기고자 한다.

-선의 건축가로 알려진 이가 진동, 몸부림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게 놀랍다.

▶심지어 나는 천박함까지 좋아한다.(웃음) 국제템플스테이센터를 지으면서 탑 안에 부처님의 사리 대신에 엘리베이터를 넣었다. 물론 화장실도 있다. 탑은 부처님의 상징이다. 나의 템플스테이는 진리만 속해 있는 형식이 아닌 배설하는 형식도 넣고 싶었다. 이것이 천박함이다. 지적이면서 천박함이 있어야 더 풍요롭다. 40대쯤 되어서 천박함이 좋아졌다. 그리고 고백하는데 나는 지독히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이기적이고 천박한 불교건축가, 어울리지 않는다.

▶나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남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생각 좋은 행동 이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 어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들 어울린다는 것을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전혀 다른 것과의 어울림이 더 멋지다.

-건축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갖게 됐는가.

▶중학교 때 선생님의 칭찬이었다. 기술시간이면 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소설 속의 건축가는 멋있었다. 건축가가 된 지금은 건축이 삶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건축뿐 아니라 인문과 철학까지도.

-건축가가 안 되었다면.

▶영화감독을 했을 것 같다. 영화 역시 건축처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남을 시키고 많은 것이 등장하고… 영화의 매력은 문학적이고 대중적이다. 건축과 영화는 많이 닮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미래에 관심이 없다. 현재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디저트와 에피타이저를 좋아한다. 디저트는 여유로워서 좋고 에피타이저는 설레게 해서 멋지다. 매 순간 고고하고 유혹적이고 천박한 삶을 살고 싶다.

 

원문보기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5840&yy=2015#axzz3ZmgEW7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