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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작가 9인의 미술철학이 녹아있는 녹색제의(綠色題意) / 대학원 미술학과

한스 갤러리에서 지난 11일부터 오는 7월 10일까지 전시되는 김신혜, 김재훈, 김준수, KIMA, 박민준, 서석원, 송재종, 이영롱한진주, 정혜경 아홉 작가의 ‘상태 메시지’展은 현대인의 자기표현 수단을 담은 작품전이다. SNS로 대별되는 자기표현의 시대, 이번 전시는 현재의 젊은 작가들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신조어인 ‘상태 메시지’를 주제로 기획되었다.

작가들은 소통을 갈구하며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현재 생각들을 상태 메시지처럼 한 줄로 정리하였고, 각자의 상태 메시지로 대표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친근하게 우리에게 나의 현재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유도한다.

아홉 명의 신진 작가들은 저마다 다루는 매체나 작품 소재, 관심 분야, 작품의 주제 등에서 공통점이 없고 각자 다양하다. 이들은 현재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상태 메시지’처럼 각자의 작품으로 구현하였고,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지면서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를 확인시켜 준다. 작가들은 ‘상태 메시지’속에 자신의 주된 관심사나 현재 기분 등을 표현한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국민대 대학원 동문이라는 점이다. 같은 대학 미술이론 전공의 피지혜 선생은 김재훈, 김준수, 박민준, KIMA, 정혜경은 개인의 경험이나 고민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김신혜, 서석원, 송재종, 이영롱한진주는 현대 사회와 관련된 특정 관심사, 즉 개인적인 관점을 주제로 작업하였다고 분류한다. 작가들의 작가노트를 살펴본다.



김신혜는 ‘불뿜는 돌고래’를 통해 사회 안에서 스스로 규정지은 한계를 벗어나려는 사람과 안주하려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누고, 그 한계 속 인간 행동을 자신의 능력을 알 수 없는 수족관의 돌고래에 비유한다. 수조에 갇힌 돌고래처럼 사람들도 장애, 가난, 가정환경, 인간관계 등 수많은 수조라는 한계들로 개개인을 옭아맨다. 작가는 속박되고 갇힌 소외 받은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수조 속 돌고래의 처지에 비유한 작업을 한다. 뛰어오르지 못하고 물에 반쯤 잠겨있는 돌고래와 기성품인 향초가 결합된다. 향초에 불을 붙일 때마다 수조 속 돌고래의 한계를 상기시키며, 스스로 자신을 수조에 가둔 적은 없었는지 반성과 사색을 하게 한다.



김재훈은 ‘소모’와 ‘소모의 사회’를 통해 ‘남들보다 특별하지 않은 존재가 작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원초적 물음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지금의 사회와 현대인들은 특별한 사람들만 기억하는 편이다. 작가 자신은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대단한 동기부여나 타인의 영향도 아니었다’라고 빈정거리듯 사회를 힐난한다. 작가는 미술을 시작한 이유를 곱씹으며 막연히 그림을 그리는 반복적인 행위로 미술을 시작했던 기억을 되짚어본다. 작가는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긴다. 특별하지 않으면 소모되어 없어져 버리고 어느새 잊혀진다. 특별하지 않은 자신을 작품에 투영하듯 작가는 현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 특별하지 않은 존재의 ‘소모’를 통해 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다.

김준수의 ‘ENERGY’ 연작과 ‘비상’은 요가수련을 통한 질병 치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의 고귀함’, ‘생명 에너지’라는 명제를 가지고 전개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직접 수련을 하며 몸소 체험한 ENERGY의 순환을 작품으로 가시화시킨다.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은 시선의 막힘이 없는 ‘Circle’의 형태로 표현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ENERGY’는 기하학적 선들의 교차를 통해 추상적으로 도식화되어 표현된다. 또한 수련의 의미를 반영하는 우주의 진리인 ‘만다라’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생명 에너지’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작가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비둘기라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비상’하는 비둘기에 숨겨진 ‘에너지’, ‘비상 에너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작가는 자신이 작가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깨닫게 되며 또 다른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듯하다.



키마(KIMA)는 퍼포먼스, 설치, 조각 등 미술 전 장르에 걸쳐 작업하는 아티스트이다. ‘적절한 거리’, ‘폐-1-숨’, ‘꿈’, ‘두사람’의 작가 키마(KIMA)는 인간 삶을 구성하는 여러 에너지 중 무기력감에 주목해왔는데, 이번 신작은 현재 그녀에게 무기력감을 주는 꿈, 인간관계, 결혼에 관한 3가지 주제를 압축한 무기력에 대한 드로잉을 입체로 전환시킨 3포 세대를 연상시키는 3가지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 삶의 전반을 에너지 활동으로 판단하고, 무기력 또한 수많은 에너지 중 하나의 형태로 간주한다. 우리는 트라우마나 미래에 이르는 잠재된 무기력부터 행동하는 무기력까지 다양한 무기력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작가는 무기력을 상징하는 일련의 과정과 구조를 임의로 설정하고, 다양한 에너지들을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한다.



박민준은 ‘봇물’을 통해 현재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묶여있는 자신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답답한 기분과 갑갑한 상황을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한다. 외부의 작은 자극일지라도 작품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형태이며, 그 속은 보이지 않아 불안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작품 안의 형태는 지금의 환경, 즉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신을 뜻하기도 하지만, 잠재력, 꿈 등을 의미하는 긍정의 힘이 될 수도 있다. 감내해야하는 분노나 흥분 등의 부정적 힘일 수도 있다. 이를 감싸고 있는 금속의 틀은 자신을 속박하는 그 어떠한 무엇도 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답은 ‘무제의 의식’처럼 관람자 본인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서석원의 ‘망각’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인해 파생되는 개개인의 상태인 꿈과 가치의 망각이나 변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 속 그들이 정해진 위치에 따라 그들의 가치나 꿈은 억압되고, 변질되며, 정체된다. 그는 이러한 감정을 하나의 인물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망각’은 작품 속 헐벗은 여인이 정적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작품 속 여인의 머리카락 끝은 시들어버린 식물을 연상시킨다. 이는 마치 내면의 가치와 꿈이 최대한의 높이로 상승하여 머리끝까지 도달하여 꽃을 피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억압의 굴복으로 인해 그녀 스스로 꽃 피우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그녀는 미동 없이 정면만을 응시하며 자신이 처한 억압을 조용히 감내하고 있다. 



송재종은 조각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고 환기시킨다. 작가는 인체의 형상 한 조각을 어떤 공간에 던져놓음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현실과 자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일으키길 바란다. 현대 사회는 한 가지 성향으로만 묶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과 사회구조의 발전으로 인해 한 가지 가치관만을 고집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의 형태는 과거보다 다양해졌고 복잡해졌다. 감정과 피로가 극에 달한 사회 속에서 현대인이 겪는 신경증적 질병들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병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물론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감정들이 대부분이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마주하고 사색하는 것이 성찰의 시작이다. 그는 현대사회 속에서 유발되는 현대인의 피로감을 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보여주며 성찰을 유도한다.



이영롱한진주는 멸종하는 생태계와 오염되는 환경이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파괴적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질적인 세계와 재 매개하는 생명들에 대한 탐구'를 통해 거대한 몸집이지만 나약한 존재이기도 한 어린 개체, 코끼리를 모티브로 삼아 부패와 생성하는 자기 진화적 모습을 밀랍을 통해 형상화시킨다. 정제되지 않은 상태의 밀랍은 일차적으로 벌들이 육아를 위해 만들었거나 화분과 꿀을 저장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이차적으로 밀랍은 인간을 통해 가공되어 음식이나 기타 보호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녀가 가공되지 않은 밀랍을 사용하는 이유는 벌들의 이질적인 세계(인간의 활동을 기준으로)를 만드는 본능적인 활동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활동 속 생성된 세계를 통해 만들어진 밀랍은 번식하는 엔지니어 활동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이질적인 생물은 수분 매개자이며 동시에 생태계의 순환을 돕는다. 작가는 코끼리와 벌집을 밀랍의 형태를 빌려서 이질적인 그들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고, 생물이라는 동일성의 질서를 교란시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하나의 생명체로 화합하기를 시도한다. 

정혜경은 'Red Sun'과 ‘보행’을 통해 인간의 불안에 주목한다. 그녀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 속 불안함과 폐쇄성이 짙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에서 영감을 얻어 불안함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불안은 대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초조함이나 두려움과 같은 불편한 감정이다. 특히 공간을 느낄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어둠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어둠은 빛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빛은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매개체가 된다. 주인공은 집으로 향하는 ‘보행’의 과정을 통해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버리고 마침내 마음의 자유를 얻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자가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 갇혀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빛을 향해 걸어 나와 마음의 치유를 얻기를 유도한다.

현대 작가 9인의 심오한 철학이 생동감 있게 담겨있는 ‘상태 메시지’展은 현실에 영합하지 않고 진지하게 성찰하여 자신들의 생각들을 작품화한 것들이다. 생의 약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 담고 있는 푸른 제목의 큰 뜻은 접근방식과 자세에 있어 연구자들의 진지한 면면을 보여준다. 한스 갤러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들을 보여준 ‘상태 메시지’展은 ‘시대색을 띄는 가치 있는 전시회’로서 손색이 없다.

원문보기 : http://www.g-enews.com/ko-kr/news/article/news_all/201506110924155251822_1/articl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