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Life]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 (국어국문학과 95 동문) | |||
---|---|---|---|
교정 참여한 독자이름 신간에 새겨 주고 日작가 미야베 알게되면서 출판사 설립
교정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수작업으로 오타를 잡고 비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출간된 책에서 오타라도 발견될 경우 독자들의 항의를 감수해야 한다. 오타가 많아 출시된 책을 수거해 다시 인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에는 경제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독자에게 시키는 출판사가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교정에 참여한 독자의 이름을 책에 새겨 신간이 나오면 건넨다. 서울 마포구 거주지에 집무실을 차려놓고 독자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 김홍민(39·사진) 북스피어 대표를 그의 놀이터에서 최근 만났다. ◇출판계의 이단아? '야매' 출판인 마포 김 사장=김 대표는 2005년 북스피어를 설립했다. 문화잡지 '아웃사이더'에서 일하다 그만둔 그는 딴지일보 전 편집장 최내현씨의 투자로 출판사를 설립한다. 최씨가 투자한 제작비 1억원으로 '아발론 연대기'를 낸 후 현재까지 120종의 책을 내왔다. 매달 1권씩 책을 낸 셈이다. 출판사 일을 시작한 후 김 대표는 재밌게 일을 하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출판사를 경영했다. 스스로를 '야매 출판인'이라 거리낌 없이 부를 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가 지난 10년 동안 한 일은 국내 출판마케팅의 역사가 됐다. 누구도 시도하고 싶지 않은 혹은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도한 이벤트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출판사 설립 첫해 시작한 독자교정 이벤트는 시작에 불과했다. 2008년 '이와 손톱'을 출간할 때는 결말 부분을 봉인한 채 '봉인을 뜯지 않고 가져오면 환불해주겠다'는 공약을 하고 책의 띠지를 싫어하는 독자들을 향해 띠지를 모아 오면 선물을 주기도 했다. 2011년에는 앨범도 하나 냈다. 만우절 이벤트로 홈페이지에 미야베의 '홀로 남겨져' 북 OST를 제작한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독자들이 거짓말을 믿지 않자 실제 제작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가 직접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시작' '산책' 등으로 잘 알려진 가수 박기영씨가 작사·작곡한 노래가 담겨 있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이밖에 책 속에 각종 메시지를 숨겨 놓고 독자가 발견하게 하는 '이스터 에그(Easter egg)' 이벤트도 수없이 진행했다. "재미없으면 안 해요." 다양한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지만 그의 철학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그렇다고 재미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자신의 얘기를 담은 책 제목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처럼 이벤트를 통해 출판업자로서의 의미도 찾는다. 모든 이벤트의 핵심은 독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수많은 이벤트를 진행했지만 김 대표는 '원기옥 이벤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로 꼽았다. 그는 "시도하기 전에 주변에 있는 출판사 사장 등 100명이 넘는 분들한테 이벤트 성공 여부를 물어봤지만 모두들 투자 상품으로 가치가 없어 실패할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첫 원기옥 이벤트의 조건은 1만부 이상 팔리면 원금 보장, 1만5,000부 이상이면 10%, 2만부 이상이면 20% 수익을 돌려주는 것. 목표금액은 5,000만원이었다. 그러나 당시 '안주'의 한국어판 제목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줄거리도 공개되지 않았다. 독자들이 알 수 있는 건 미야베의 작품이라는 게 전부였다. 김 대표는 "저도 처음에는 돈이 모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 이벤트를 진행했다"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독자들에게 책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홍보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대표의 생각과 달리 이벤트 시작 열흘 만에 목표금액이 모였다. 독자 중에는 유학비 일부를 주겠다고 한 학생, 남편 몰래 비자금을 건네겠다고 말한 주부도 있었다. 원기옥 두 번째 이벤트도 독자들의 지원으로 성공했다. 김 대표는 "엄청난 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는 거라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는데도 독자들은 의무감을 갖고 나를 도와줬다"며 "독자들이 배신감을 느낄 만한 짓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무한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저도 이유를 잘 모르지만 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우리가 꾸준히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한 분야의 책을 내면서 독자들이 '북스피어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낼 거야'라는 생각을 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재미를 무기로 독자들과 유대감을 쌓아가고 있는 김 대표에게 출판사 대표로서의 꿈을 물어봤다.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가야겠다는 건 전혀 없습니다. 다만 독자들과 함께 좋아하는 책을 매달 내면서 먹고사는 게 목표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내 운명=장르문학만 고집하며 수많은 책을 냈지만 김 대표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언 미야베다. 그는 출판사 설립 이후 미야베 책만 총 40여종을 출간했으며 미야베를 만나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두 번이나 몸을 실었다.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김 대표가 미야베를 알게 된 시기는 출판사를 창업하려고 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출판사를 설립하기 전 출판사 창업에 도움을 얻기 위해 다른 출판사 대표를 찾아가게 됐다. 그냥 방문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미야베 책을 읽었다. 그 순간이 김 대표의 인생을 바꿨다. 김 대표는 "국문학과를 나왔고 나름 소설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재밌는 건 처음 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출판사를 방문한 후 회사 대표가 미야베 책을 더 이상 안 낸다고 하자 미야베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미야베의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재밌었다. 이후 일본 아마존에 들어가 보니 일본에서 미야베는 이미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미야베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바로 미야베 책을 낸 출판사와 10종을 계약했다. 김 대표는 "당시 국내 기획자들이 일본 추리소설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결정이 빨라 계약을 하게 됐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추리소설 육성보다는 순문학에 집중해라=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대표인 만큼 김 대표는 추리소설 공모전 심사에 직접 참여한다. 사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김 대표는 심사를 하면서 '이 정도의 작품성으로는 국내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일각에서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나 한국의 스티븐 킹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순문학은 문학성으로 평가받고, 팔리는 건 대중문학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순문학이 좋은 평가도 받고 많이 팔리기도 한다"며 "그럼 순문학을 육성해 수출하고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과 미국의 스티븐 킹 책은 수입해 읽으면 된다.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정도는 북스피어에서 '야매 출판인'으로 경영을 더 할 생각이다. 출판사 대표를 그만둔 후에는 장르소설만 취급하는 전문서점을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책 잘 알릴수 있는 채널에 출판사 생존 달려"
원문보기 : http://economy.hankook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