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태어나 한국서 공부… 韓日협정 전문가가 된 남자 / 장박진(일본학연구소 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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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의 자유인]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상임연구원… 재일교포 3세, 張박진 장박진(52)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 대한 굵직한 연구서를 잇따라 펴낸 연구자다. '식민지 관계 청산은 왜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2009년)와 '미완의 청산'(2014년)을 통해 그는 한·일 양국 정부의 협상 자세와 한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때로는 "한·일 청구권 교섭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일본 정부보다 오히려 한국 정부에 조금 더 두고 있다"는 입장으로 국내 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에게는 남다른 삶의 이력이 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在日) 한국인 3세라는 점이다. 제주도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았던 1940년대 초반 할아버지를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의 아버지는 남의 배에서 밥 짓는 일을 하고 살았다. 형편이 넉넉할 리 없었다. 그는 "명절이나 제사 때 어른들이 모여서 술판이 벌어지면 끝내 말다툼이나 싸움으로 번졌다. 모두 가슴속에 한(恨)이 많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 저서 잇따라 출간 그의 할아버지는 재일교포 북송(北送) 사업이 시작되자 1964년 북송선을 탔다. 장 연구원이 태어난 해였다. 제주도에 사는 고모들까지 포함, 그의 가족은 남북과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장 연구원은 "한국에서는 이산가족이라고 하면 남북을 떠올리지만, 재일교포 중에는 남북과 일본으로 갈라져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가족이 적지 않다. 우리 집도 재일교포의 슬픈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경우"라고 했다. 1984년 와세다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그는 도쿄로 향했다. 그는 "집에서 달아나고 싶다는 무의식이 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같은 대학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제체제 비교'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뒤, 1997년 오사카 시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 뒤 류코쿠(龍谷)대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한국어는 드문드문 했을 뿐, 한국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뒤늦게 한국행을 결심했다. "뿌리를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밀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년간 고려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뒤, 이듬해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는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후회하느니,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후회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제시대 경제·사회사를 전공하려고 했지만, 대학 도서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관련 논문과 단행본을 본 뒤 깨끗하게 마음을 접었다. 그때 그의 눈에 띈 것이 해방 후 한·일 간의 과거사 처리 문제였다. 당시까지는 상대적으로 '미개척 분야'였다. 그가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인 2005년부터 양국 정부는 한·일 회담 관련 문서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자로서 예상하지 못했던 복(福)이 터진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건너온 재일교포 3세라는 이력은 학문적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관련 학술회의와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장 연구원은 '초청 1순위'로 꼽힌다. 1910년 강제 병합 조약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연구 작업이 지금 그의 관심사다. 올해 말 발간 예정인 새 책의 가제(假題)는 '허구의 감옥'. 이미 단행본에 필요한 원고의 90% 정도는 써놓았다. 그는 "강화도 조약(1876년)과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에서 '조선은 자주 독립 국가'라고 인정했던 일본이 1910년 병합 조약을 강요한 건 스스로 논리를 뒤집고 짓밟은 격"이라고 말했다. 그의 생일인 8월 22일은 1910년 강제 병합 조약이 체결된 날이기도 하다. 그는 "어릴 적에는 한·일 문제가 튀어나오면 고개를 돌렸지만, 지금까지 잡혀 있는 걸 보면 분명 질긴 인연인 셈"이라고 말했다. "만약 일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적어도 지금처럼 지적(知的)으로 자극을 받으면서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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