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대표 “관복 같은 품격과 금박 화려함에 기능성까지…세계에 자랑할 만하죠” / 김남희 (의상디자인학과 87)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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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한복 유니폼 제작한돌실나이 김남희 대표
선수용 158벌 등 모두 165벌
지난 8월24일 2020 도쿄 패럴림픽 개회식, 우리 선수단이 입은 한복 유니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은은한 분홍색의 덧저고리 재킷과 전통 대님으로 밑단을 처리해 편안해 보이는 바지, 슬쩍 드러나는 동정에 새겨진 금박장식까지, 한국 선수단의 단복은 단연 돋보였다. 올림픽 역사상 첫 한복 유니폼을 제작한 주인공은 돌실나이 김남희 대표(53)다. 지난달 27일 서울 혜화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단복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와서 이를 변형한 덧저고리와 장배자 20벌 한정판매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복 유니폼 아이디어는 우리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단복을 고심하던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나왔다. 한복전문가 자격으로 김 대표가 가세했을 때만 해도 한복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국제행사에서 선보이는 한복인 만큼 부담이 컸다. 자칫 무도인이나 역술인을 연상시킬까, 생활한복의 선입견을 우려한 이들도 있었다. 김 대표는 “현대 생활의 정장 차림에 맞는 형태로 한복의 요소를 보완·변형 적용한 점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재킷형 겉저고리 안에는 기능성 소재의 흰색 속저고리를 매치했다.
두 번째 고민은 색상이었다. 국적기 승무원 유니폼에 쓰이면서 언젠가부터 ‘고려청자색’이 한국의 대표색이 됐다. 앞서 치른 비장애인올림픽 선수단의 재킷도 고려청자색이었다.
“덧저고리의 분홍색은 천연염료인 홍화를 반복 염색하면 중간과정에서 나타나는 ‘훈색’이에요. 이황 선생을 비롯해 조선시대 당상관들이 입었던 관복색이죠. 색이 상징하는 품격을 담았어요.”
관복에서 힌트를 따온 만큼 당상관의 표식인 흉배를 덧저고리 뒷면에 달았다. 사악한 것을 징계하고 의를 지킨다는 영특한 동물 호랑이를 두 마리나 넣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도 약간 무수리 옷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뭔가 특별한 요소가 필요했다. “우리를 상징하면서 화려함을 더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덧저고리 동정에 금박장식을 넣어봤어요. 금메달을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새겼죠.”
지난 8월24일 2020 도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우리 선수단은 한복 유니폼으로 세계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연합뉴스
마침내 일반 유니폼들과의 경합 끝에 한복 유니폼이 최종 선정됐다. 가장 오래 걸린 작업은 원단 재직이었다. 덧저고리는 이탈리아 직수입 혼염사 울을 사용했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8월의 도쿄에서 시원하고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소재를 채택한 것이다. 문제는 원사를 염색하고 재직을 하는 데 통상 45~50일은 걸린다는 것. 여기에 일본선수단 유니폼 상의가 벚꽃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당초 의도했던 색보다 농도를 높이는 조정을 거쳤다. 디자인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부터 서두른 덕분에 스케줄에 맞춰 재직을 마칠 수 있었다.
전에 없던 한복 유니폼인 만큼 예사로운 공정이 없었다. 기성복처럼 사이즈별이 아니라, 선수별 맞춤 형식으로 제작해야 했다. 체촌(몸치수 재기) 작업도 쉽지 않았다. 일단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서 김 대표와 직원들은 코로나19 검사부터 받아야 했다. 하루에 체촌이 가능한 선수의 수도 정해져 있었다. 이 과정을 내켜하지 않는 일부 선수들은 일일이 설득하며 치수를 재고, 유니폼 샘플을 입혀보는 과정을 마치면 온몸이 땀에 젖었다. 각자 체형과 취향에 맞는 변형 요청을 반영해 반바지도 제작했다. 채 40일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선수 158명을 포함한 유니폼 165벌을 완성했다. 선수단을 위해 별도 제작해 선물한 전통매듭 마스크 스트랩도 개회식 화제의 아이템이었다. “처음에는 한복이라니까 반기지 않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완성된 옷을 본 뒤 정말 예쁘다고 하셨어요. 개회식에서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니까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입어보니 생각보다 편하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한복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부인 김정숙 여사도 패럴림픽 선수단 결단식에서 한복 유니폼을 입고 격려사를 전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해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혀서 선전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며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내부 만듦새를 손보고 최고급 봉제를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대표, 생활한복 디자이너 1세대
김남희 대표는 생활한복 디자이너 1세대로 통한다.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재학 시절 한복을 업으로 정하고 졸업작품 발표회에서 한복을 선보였고, 결혼식에서도 스스로 지은 한복을 입었다. 전남 곡성 석곡마을의 삼베 이름에서 유래한 돌실나이는 생활한복이 ‘개량한복’이라 불리던 1995년부터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만들어왔다. 100% 리넨이나 면 소재의 자연주의적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이 꾸준하지만, 요즘은 기계세탁이 가능하고 다림질이 필요 없는 소재의 제품도 제작하고 있다.
“창사 기념으로 ‘리폼 이벤트’를 하면 1996년에 산 옷을 가져오는 고객도 계세요. 제일 좋아하는 옷이니 깃만 바꿔달라고요. 세상에 어떤 옷을 25년 이상 입고, 또 더 입겠다고 고치는 분이 계실까요. 요즘 같은 물질만능시대에 정말 고맙죠.”
부침이 심한 인사동에서도 20년 가까이 건재한 1호점은 돌실나이의 한결같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 대표는 생활한복에도 유행이 있고, 여느 기성복 못지않게 잦은 신제품 출시 주기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줄였지만, 예년에는 연 1000개 이상의 아이템을 내놓았다.
“한창 생활한복 매출이 많았을 때는 자수가 들어간 제품이 인기였어요. 요즘 저희 고객들은 ‘대놓고 한복’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한복을 입은 듯한 옷을 선호하세요. 수공예적인 요소를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옷의 반응이 좋습니다.”
반면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세컨드브랜드 코마크는 누가 봐도 한복처럼 보이는 제품의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궁궐에 무료입장해 인증 샷을 찍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생활한복을 즐겨 입는 젊은층의 한복에 대한 애정은 고무적이다. 이효리와 BTS 정국의 생활한복 패션이 알려지면서 ‘한문선생님 룩’이라는 꼬리표도 무색해졌다. 해외 한류 팬들의 판매 문의가 증가하면서 김 대표는 글로벌 쇼핑 플랫폼 진출도 알아보고 있다.
“한류열풍을 타고 우리 문화가 세계 속에서도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그 자부심이 먹을거리, 입을거리 등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한복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도 그런 사회적인 맥락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복이 이젠 자랑하고 싶은 우리 옷이 된 거죠.” 리슬, 여미다, 차이킴 등 요즘 감각으로 한복을 만드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한복에 꿈을 품고 도전장을 내미는 젊은 친구들이 늘고 있는 데에 저희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며 뿌듯해한 김 대표는 한복의 일상화를 위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초·중·고 교복을 제작해왔다. 한동안 주춤했던 한복교복 사업은 2019년에 생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복진흥센터를 통해 무상지원이 이뤄지면서 본격화됐다. “일반 교복과 많이 다르지 않았으면 한다” “여학생용 바지도 있었으면 좋겠다” “섹시해보였으면 좋겠다” 등 김 대표가 청취한 학생들의 요구는 다양했다. 색동이나 오방색은 체크무늬로 살리고, 무지개치마를 현대적인 스커트로 만드는 등 수십 가지 디자인안으로 그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김 대표의 다음 프로젝트는 획일적인 대학 졸업식 가운과 장례식장의 상복이다. 언제부터인가 하얀 소복은 검은색 합성 섬유의 생활한복으로 대체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장소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의식에서 단지 며칠만 입는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있잖아요. 한복의 격을 떨어뜨리는 옷이기도 하고, 게다가 검은색 상복은 일본에서 들어온 문화이고요. 우리의 흰색 한복으로 디자인적으로 현대적이면서 실용적인 상복을 만들 수 있어요.”
김 대표는 “우리 것을 찾아 입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선언적인 운동이자,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