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정치적 사익에 휘둘리면…지역별 대표성 불균형 초래, 정책결정 왜곡 / 이상학(국제통상학과) 교수 | |||
---|---|---|---|
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8) 선거구 획정과 민주주의 가치 실현 18대·19대 선거구간 불평등 심화
헌법재판소는 2014년 10월 30일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 획정(劃定) 법조항에 대해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 간 인구비례 허용 기준을 현행 3 대 1에서 2 대 1로 바꿔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6년에 치러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지역구 개편이 불가피하게 됐다. 2013년 7월 말 인구 수를 기준으로 총 60개 선거구가 분구·통합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국회의원)가 대의기구(국회)를 구성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따라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제도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제도는 선거구 크기, 당선자 결정방법, 투표구조 및 선거구 획정 방식 등의 요소로 구성되는데 선거구 획정방식이 선거 결과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가장 크다. 선거구 획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공정 경쟁이 저해됨은 물론 정치적 평등이란 자유민주주의 가치도 훼손된다.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은 민주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자의적인 선거구 획정을 지칭하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란 용어가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주의회 선거구역을 자의적으로 소속 당에 유리하게 획정한 데서 유래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헌재 판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현재 한국의 선거구 획정 상태를 살펴보자. 국회의원 선거구는 대체로 광역시 지역이 유권자 비중에 비해 의원 수 비중이 낮으며, 도 지역은 유권자 비중에 비해 의원 수 비중이 높다. 이는 국회의원 선거구가 전반적으로 도시 지역보다 농어촌 지역의 의원 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획정돼 있음을 나타낸다. 헌재 판결 이후 충청권이 과소 대표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사실 충청권은 대전을 제외하고는 전국 평균에 비해 오히려 과다 대표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구별 유권자 수의 격차는 선거구 ‘획정지수’의 분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획정지수는 지역구별로 유권자 비중을 의원 수 비중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이 획정지수의 평균은 1인데, 소선거구제에서 획정지수가 1보다 큰 선거구는 전국 평균보다 유권자 수가 많아서 동 선거구의 유권자들은 과소 대표되며, 획정지수가 1보다 작으면 유권자들은 과다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이상학·이성규, ‘제도와 경제’ 제7권 3호, 2013)에 따르면 19대 국회의원의 획정지수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1.0837)에 비해 강원 충남북 대전 세종 등 중부권(0.9524), 부산 대구 울산 경남북 등 영남권(0.9609), 광주 전남북 제주 등 호남권(0.8444) 순으로 더 낮게 나타났다. 대체로 도시지역보다 농어촌지역의 정치적 비중 즉, 의원 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지역 선거구가 획정됐다는 의미다. 또 획정지수 값이 18대와 19대에 계속 커졌는데, 이는 18대와 19대 선거구 획정에서 선거구 간 평등성이 계속 훼손됐음을 의미한다. 선거구 획정의 왜곡도는 ‘정치적 지니계수’로도 파악할 수 있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주는 지니계수처럼 의원 수 비중의 불평등도를 지수화한 것이다. 선거구에 m명의 유권자가 존재하면 유권자 개개인은 m분의 1의 정치적 지분(의원 수)을 갖는다고 전제하고 선거구별 정치적 지니계수를 측정한다. 1에 가까울수록 선거구 간 불평등이 악화됨을 의미한다. 이상학·이성규(2013)의 연구 결과 16대 총선의 정치적 지니계수는 0.3014인데 17대엔 0.2338로 작아졌다가 18대는 0.238, 19대는 0.2431로 커져 18대부터 선거구 간 불평등도가 심화됐음을 보여준다.
선거구 획정의 왜곡은 정책과 정책결정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입법 활동을 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 지역구의 산업구조가 1차 산업 10%, 2차 산업 20% 및 3차 산업 70%로 구성돼 있다면 의원은 이 산업 비중에 의거해 입법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표의 등가성(等價性)이 확보된 경우에는 각 의원이 반영하는 산업별 비중의 합계, 즉 정치적 비중은 국가 전체의 산업 구성과 동일하며 입법 활동에 왜곡은 없다. 또 모든 지역구의 산업구조가 같다면 의원 수 분배의 불균형과 관계없이, 즉 선거구 획정과 관계없이 의원 수는 전체 산업구조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서비스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의 유권자가 과다 대표된다면 서비스산업의 이익도 과다 대표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농림·어업과 서비스산업은 전체 산업 대비 부가가치 비중보다 정치적 비중이 높아서 과다 대표되고 있다. 반대로 제조업은 정치적 비중이 부가가치 비중보다 작아서 과소 대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농림·어업 부문은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원 수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무역정책 면에서 농업과 서비스산업은 과다 대표되고, 제조업이 과소 대표될 가능성이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이런 왜곡적인 구조는 농림·어업과 서비스산업의 정책이 보호주의적 경향을 띠게 하고,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개방도가 높아지게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선거구 획정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선거구 획정의 첨예한 이해당사자들이 논의의 중심에 서면서 본질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임시방편적인 논의와 처방으로 시종일관했다고 볼 수도 있다. 헌재가 사회적·경제적 환경을 반영해 선거구별 인구 편차 허용 비율을 4 대 1에서 3 대 1로, 이번에 다시 2 대 1로 조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표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의 출발은 ‘1인 1표가 동등한 중요성을 지녀야 한다’는 공정성(公正性)의 원칙을 확인하는 데 있다.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자기자신이나 소속 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구를 나누려고 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립적인 기구에서 선거구 획정을 맡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상학 <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515456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