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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청사초롱-이창현] ‘각자도생 공화국’의 국민노릇 / 이창현(언론정보학부) 교수

꽃이 피는 봄날, 국민들은 미세먼지로 숨쉬기조차 힘들다. 국민노릇 열심히 해 온 국민들로서는 참기 힘든 고통이다. 남자들은 군대 가서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여자들은 마초적 조직문화에서 숨죽이고 있으면서도 ‘대한민주공화국’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재벌들이 곳간에 돈을 쌓아놓고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으려 해도, 직장인들은 유리지갑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국민노릇을 해왔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한다기에 자원봉사자가 돼 그 추운날씨에도 무한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온 대한민주공화국인데, 미세먼지가 닥치니 정부는 국민들에게 각자도생의 길을 걷도록 요구하는 듯하다. 미세먼지 경보 기준을 국제적 기준으로 낮추었다고는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불안감만 더하게 하고 정작 대규모로 미세먼지를 발생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는 국제적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듯하다. 미세먼지를 다량으로 발생하는 기존의 에너지정책과 교통정책의 본질은 손대지도 못한 채, 미세먼지가 심한 날만 공공기관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는 할 일을 다한 듯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가 미세먼지 경보가 발생하는 날 대중교통요금 무료정책을 시행했었지만 그 취지를 이어가는 정부차원의 행정조치도 입법조치도 없다. 최근 일기예보 시간은 미세먼지 예보시간이 됐고 기상캐스터는 출근할 때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쓰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에는 미세먼지에 좋은 음식과 공기청정기의 필요성을 알리는 내용이 이어진다. 기회는 찬스라고 했던가? 기업들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몇 만원짜리 마스크, 몇 백만원짜리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가뜩이나 얄팍해진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간다. 국민노릇에 이어 ‘호갱’ 노릇을 해야 할 처지다.

이쯤 되면 각자도생공화국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가 떠오르며 괜히 부아가 치미는 것은 나뿐일까? 오죽했으면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미세먼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지 못한 국회의원과 장관 전원에게 옐로카드를 꺼내들었을까. 미세먼지가 심각한데도 국회의원들은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정부 내의 미세먼지 정책도 실효성이 없다. 몇 년 전 환경부가 미세먼지 주범으로 고등어구이를 꼽아 무능한 정부라는 비판을 자초했었는데, 정부가 바뀌어도 환경부는 변화가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환경부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전국으로 그리고 민간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또한 찔끔정책 수준이고, 실효성 강화엔 한계가 있다고 환경운동연합은 비판한다.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니 정치인들은 나랏돈으로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달도록 한다거나,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시내버스에 비치한다는 등 선심성 정책을 내놓는다. 미세먼지의 본질은 담지 못한 정치적 이벤트만 만연하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벤트만 쫓아다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미세먼지 해결의 본질을 착각한다. 미세먼지 문제는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고 발생원을 근원적으로 줄여갈 때 해결될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환경부 장관이 중심이 돼 고도성장기에 만들었던 기존에너지 수급체제와 교통체제를 과감하게 바꾸는 장기적 미세먼지정책을 제안해 주기 바란다. 입장이 다른 장관들과 공개토론이라도 해야 한다면 국민들은 그런 환경부 장관을 지지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국민들은 각자도생공화국의 국민노릇과 호갱노릇말고, 대한민주공화국의 당당한 국민노릇을 하고 싶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인생도 그렇고 정책도 그렇고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미세먼지가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다. 각자도생공화국의 국민노릇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불만은 고조될 것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마스크만 권하고 무한 댄스를 추게 할 것인가.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27718&code=11171362&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