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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시론] 왜 분노해야 하는가 / 류재우(경제학과) 교수

'소득주도'란 주술적 이론이 '고용참사' 초래
공공부문 노조는 '고용세습'으로 일자리 약탈
청년 취업문 좁히는 '닥치고 정규직화'도 문제

류재우 < 국민대 교수·경제학, 前 한국노동경제학회장 >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출범 1년5개월이 지난 지금 ‘고용대란’을 맞고 있다. 비농업 민간 부문 취업자가 해마다 30만 명 넘게 증가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고용은 추세보다 40만 명 이상 감소했다. 실업자 수는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고용절벽’은 주요 산업의 쇠퇴와 새 성장동력 부재에 일부 기인한다. 하지만 주원인은 일자리 파괴적인 반(反)시장적 정책들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주술적인 경제론을 내세워 과격하게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기업들이 인력 감축, 자동화, 해외 이전, 폐업 등을 하게 한 결과라는 말이다. 엄청난 혈세를 민간에 퍼부어 일자리 유지를 꾀하지만 통할 리 없다.

공공부문은 고용참사를 눈가림하는 도구가 됐다. 5만9000명의 ‘단기 알바’ 자리를 급조해 취업통계를 부풀리려 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늘린다며 비정규직 제로(0), 공무원 증원 정책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미 비정규직 약 8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공무원은 2022년까지 17만 명 늘릴 예정이다.

공공기관은 대부분 세금이나 준조세로 운영되며, 파킨슨의 법칙이 말하듯 계속 팽창하려는 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조직이 정원제로 운영되는 이유도 비대화로 인한 부실화 우려 때문이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는 효율화의 포기, 국민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들여다보자. 반복적·상시적인 일자리에 고용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일을 잘하든 못(안)하든 근속이 늘면 급여가 오르고 평생고용도 보장되는 ‘철밥통’ 구조의 변화 없는 정규직화는 문제다. 비전문적인 직군에 대한 직무급제의 시행, 저성과자를 걸러내는 장치의 마련이 전제되지 않은 정규직화는 경영 부실화 가능성을 높인다. 고용 여력을 줄여서 청년의 취업 기회도 줄어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정성 문제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32만 명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공시족이 취업대기 중이라 한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기존 비정규직만 정규직화하는 것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과 거리가 멀다.

이 정책을 노조와 임직원이 친인척 등 자기세력을 채용 과정이 느슨한 계약직으로 뽑은 뒤 정규직으로 바꿔주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교통공사는 직원 2000명가량이 친인척이며 100명 이상이 정규직화가 추진된 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그중 30여 명은 직원 자녀다. 새로운 형태의 고용세습이다. 조직 장악을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조합원을 계약직으로 기획입사시켰다고도 한다. 인천공항에서는 정규직 전환 1만 명 중 경쟁 채용은 1.5%뿐이었다. 그 자회사는 채용 방식을 바꿔 가며 전 민주노총 간부의 부인을 뽑았다. 노조의 공공 일자리 가로채기 사례들은 여러 다른 기관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와중에 민주노총은 공기업의 자회사들에도 정규직화를 압박하고 있는 한편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총파업까지 벌일 기세다. 정규직화가 노조의 공공 일자리 포획 과정이 돼 버린 느낌이다.

사실 공공부문 고용세습은 노조 및 연합세력에 의해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좋은 일자리 가로채기의 일부다. 단체협약을 체결한 기업 중 30%에는 고용세습 조항이 버젓이 존재한다. 서울시는 여당 시의원 부인들을 개방직공무원으로 임용했다. 한 방송사는 노조 출신 승진잔치를 벌여 간부가 평사원의 두 배가 됐다.

정부는 취업 비리를 뿌리 뽑는다며 전 정권 때 일부 공기업과 은행에서 있었던 취업 청탁에 대해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그러나 청년 취업준비생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노조의 일자리 가로채기에는 별말이 없다. ‘내 편이 하면 정의, 남이 하면 적폐’라는 도덕적인 이중성을 의심하게 된다.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 책임자는 몇 년 전 《왜 분노해야 하는가》란 책을 냈다. 청년들에게 나쁜 분배구조, 대기업과 재벌에 분노하라고 한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필자는 청년들에게 분노를 부추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가’ 묻는다면, 허황한 이론을 앞세워 수많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국민 부담으로 만들어진 공공 일자리를 가로채 청년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일자리 농단 세력’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103017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