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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창현] 열린 한강은 새로운 기회다 / 이창현(언론정보학부) 교수

휴전선은 남북의 땅을 둘로 나누었고, 우리 마음을 적군과 아군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버렸다. 분단에 의한 단절과 불통은 남북 모두에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물은 자유롭게 흘러 남북을 넘나들며 바다로 향했고, 그 속의 생명들도 물살을 거슬러 올라 다녔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으니 이념을 뛰어넘는 최고의 상태가 흐르는 강물인 듯하다. 지난 5일 남북은 판문점선언에 따라 한강하구의 수로를 공동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통행이 막혔던 한강수로가 65년 만에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에 개방되는 한강 수역은 김포반도 동북쪽 끝에서부터 교동도 서남쪽 끝까지 70㎞ 수역으로 규모가 크다. 그리고 한강 수로가 바다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분단의 세기에 한강변에 철조망을 쳤고, 젊은 군인들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에 완성된 신곡수중보는 무장공비의 수중침투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중보 위에는 감시초소를 위한 박스형 구조물까지 설치되어 있다. 한강은 인천 앞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영향이 잠실까지 미치는 감조하천임에도 불구하고 신곡수중보는 오래도록 한강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 서울시에서 최근에 신곡수중보를 개방하는 실험을 통해 장기적으로 철거를 고려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서울은 한강 하류에 형성된 수도이다. 한강 상류에는 남한강, 북한강이 수로로 연결되어 중부내륙과 소통하고, 한강 하류에는 임진강과 예성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이어진다. 2000여년 전 위례백제는 송파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600여년 전 조선도 북한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모든 것이 열려있는 한강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한강의 수운을 고려하여 수도의 위치가 정해진 것이고, 이러한 지정학적 이점을 통해 국가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한강 수로가 막히면서 수도는 어쩌면 조금은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돼 왔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막혀버린 철길 때문에 한반도의 철도는 섬나라 철도가 되어버렸고, 우리의 청년들은 대륙의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한강하구가 막혀버렸기에 우리는 바다를 통해 주변국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역사를 오래도록 잊어 왔다. 근대 철도의 역사를 100여년으로 소급한다면 해양 소통의 역사는 수천년 전까지 올라간다. 한강이 열리면 배를 타고 예성강 밑의 벽란도로 향할 것이고, 강화도를 거쳐 중국으로 향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아라비아까지 연결되었던 벽란도의 해양 네트워크가 우리의 상상력의 기반이 될 것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는 닫혀 있는 한강에서도 경제적 성장은 이루었지만, 그 속에서 문화적 상상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분단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대륙과 해양의 연결통로를 찾지 못해 아쉬워했다. 이제 열린 한강을 통해 벽란도와 강화도로 향하는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한다. 흐르는 강은 인간 문명의 기반이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에서 기원하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삼각주에서 비롯된다. 근대국가의 성장도 강을 거쳐 바다로 나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이 그렇고, 독일의 라인강이 그렇다. 그런 면에서 고대국가와 근대국가 두에 흐르는 강은 문명과 국가 발전의 생명수다.

흐르는 것은 변화를 잉태한다. 역사 속에서 권력은 수없이 바뀌어 왔지만, 강은 그 흐름을 멈추지 않고 대지를 적셔 왔다. 역사에도 ‘흐른다’는 말을 쓰는 것은 아마도 강의 흐름과 역사의 변화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하구가 열려 남북 간에 사람과 물자들이 오가게 되면 한국의 경제 활력도 높아질 것이다. 분단과 단절을 넘어 화해와 협력을 통한 새로운 평화를 꿈꾸게 될 것이다. 열린 한강은 새로운 기회다.

이창현(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부)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32706&code=11171362&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