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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이경훈] 노트르담과 숭례문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다. 중앙의 첨탑과 지붕 상당부분이 불에 탔다. 고딕 건축의 정수라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규모에서는 랭스 대성당이, 역사나 정교함에서는 샤르트르 성당이 앞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딕의 대표 건축은 노트르담이다. 수많은 예술작품의 배경이자 파리의 상징이며 프랑스의 국보 1호이다. 노트르담 사원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단순한 성당이 아니라 최초의 삼부회나 나폴레옹의 대관식 같은 국가적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지만 건축에 있어서 고딕은 이후의 건축양식마저 압도하는 커다란 진보가 있었던 시기다. 중세인들은 석재로만 높고 큰 공간을 만들면서도 전체의 하중을 분산시켜 벽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과감한 기술 덕분에 큰 창을 낼 수 있었고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신비한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이후 르네상스 양식의 교회가 인간적 비례나 내부 회화장식에 치중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 기술적 성과나 공간의 역동성에서는 천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고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TV로 생중계되는 동안에도 불길은 잡히지 않고 보물은 불탔다. 허망하게 무너지던 숭례문의 경험 때문인지 안타까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이후의 논쟁이다. 단 이틀 만에 10억 유로에 달하는 성금이 모였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5년 내 재건을 약속했지만 복원의 방향은 예상치 못하게 논란 중이다. 화재 이전의 원형으로 그것도 600년 전에 사용했을 전통방식으로 복원했던 숭례문의 사례가 당연해 보이지만 프랑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우리 시대의 기술과 도전을 적용한 새로운 첨탑을 세울 것이며 이에 적합한 설계안을 찾는 설계경기를 발표했다. 그러고는 당선된 건축가는 건물 진화의 다음 단계를 설계할 것이라며 ‘문화유산의 진화’를 당연한 개념으로 제시했다. 건축가 미셸 빌모트는 공영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무거운 재료인 납으로 만든 지붕과 참나무를 다시 사용할 의무는 없다며 현대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성급한 유럽의 건축가들은 화재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복원 계획안을 발표했는데 복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첨단의 소재와 형태를 제안한 것도 많았다. 높이가 100m에 이르는가 하면 화재 순간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불꽃 모양의 첨탑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의 배경은 노트르담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건물이 850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내내 같은 모습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프랑스혁명 당시 심하게 훼손되었고 나폴레옹 전쟁 직후에는 철거를 고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놓이기도 했었다. 이즈음 빅토르 위고가 그 유명한 ‘노트르담의 곱추’를 집필한 것도 성당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정도다. 1844년 루이 필립 왕은 외젠 비올레르뒤크를 복원을 담당할 건축가로 임명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고작 서른이었다. 이 젊은 건축가는 “건축물의 복원이란 건물을 단순히 유지하거나 수리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시점에도 없었던 완벽한 상태로 다시 창조하는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며 당시로는 가장 최신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강철 기둥과 새로운 첨탑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렇게 완성된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던 노트르담 성당이다. 성당의 핵심을 잃거나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적용한 그 당시의 완성된 형태였던 것이다.

독일 전통과 20세기 초반의 현대 음악의 가교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는 “전통이란 잿더미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꽃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에서 내려오는 불꽃을 우리 시대의 방식과 재료로 일으켜 세우고 다시 후대에 전하는 일이 전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럽인의 관점에서 노트르담 복원 논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 100년간 도시 개발로 흔적이 지워진 서울 성곽을 600년 전 방식으로 재현하거나 광화문의 월대를 복원하려 현재의 도심구조를 100년 전으로 되돌리고 교통체계를 다시 바꾸는 일이 혹여 잿더미를 숭배하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볼 만한 일이다. 숭례문 화재 당시 첨단의 재료와 기술로 재창조하는 계획은 선택지에도 없었다. 이 또한 과거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는 최선의 방식이었는지 스스로 물을 만하다. 21세기의 노트르담 성당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되어 돌아올지 궁금해진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2874&code=11171426&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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