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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살아있다면 ‘미 총기소유’ 기본권이라 했을까? / 김영수 일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미국 텍사스 공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온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때 한국 사람들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세계의 죄인이 된 듯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다행히 이 문제는 더 이상 민족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의 분노 혹은 미국사회의 폐쇄성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 사회의 신중함과 합리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인들은 미국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같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총기 보유가 합법적일 수 있는가? 문명사회의 첫 번째 조건은 사적인 폭력을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간에는 2002년 기준으로 2억 5000만 정의 총기가 존재한다. 연간 총기 피살자 수는 3만 명에 이른다. 1만 명당 1명이 피살 당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정헌법 제2조 ‘무기 휴대의 권리’ 조항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기 소유가 헌법적 권리이다. 그 이유에 대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서는 총기 소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돼 왔으며, 여기에는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관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통상의 헌법 원리는 이와 반대된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국가라는 공동의 권위체를 만들어 모든 폭력수단을 양도하고, 사회구성원간의 모든 분쟁을 그 권위체의 판단에 따르도록 했다. 그 이유는 국가 없는 인간의 자연상태가 더럽고 비참하며, 공포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상태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가 되어,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는 전쟁상태이다. 미국은 홉스의 자연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 헌법의 원리는 이런 자연상태의 보존이야말로 인간의 안전과 문명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어떻게 이런 역설이 가능한가?

그 사상적 기원은 로크(John Locke, 1632-1704)이다. 로크는 18세기 이후 세계 민주주주의 혁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사상가였다. 17세기 영국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의 아들이었던 그의 정치사상은 전제주의(tyranny)로부터 어떻게 인간의 권리를 지킬 것인가라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상태와 자연권이란 개념은 그런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로크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상태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며, “그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허가를 얻는다든가 또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존하는 일이 없이, 자연법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또한 그 소유물(possessions)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다.(시민정부론 II, 2장) 자연상태는 또한 평등한 상태이다. 그곳에서는 “일체의 권력과 권한은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는 일은 없다.” 즉, 인간은 본래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만 보면, 로크의 견해는 홉스와 정반대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로크에게 ‘자연적’(natural)이란 의미는 동시에 ‘옳은’(right)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홉스의 ‘자연적’이란 ‘실제적’(real)이란 의미에 가깝다. 그러므로 로크는 ‘자연상태’에 이어 실제적 상태인 ‘전쟁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전쟁상태란 인간의 난폭한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냉정하고 침착하게, 다른 사람의 목숨을 노릴 것을 선언할 경우”이다. 그 목적은 “다른 사람을 절대적인 권력 밑에 두려고 하는 것”이다. 즉, 타인의 동의에 의하지 않고,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것이다.(시민정부론II, 3장) 이 경우 로크는 “모든 사람들은 살인범을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범죄자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살해해도 좋다. 이것이 위대한 자연의 대법칙, 즉 ‘자연법’(natural law)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관계되는 사건에서 스스로 ‘재판관’이 될 수 있다. “법률이 나의 생명을 당면한 폭력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자기 방어와 전쟁의 권리, 즉 그 공격자를 살해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된다.” 즉, 자기방어의 권리는 실정법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된다.

문명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로크의 주장은 급진적이다. 그러나 그는 전제 왕권에 반대하여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로크의 사상적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건국 이상을 담은 미국헌법은 약간의 수정만을 거친 채 오늘날도 여전히 미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근본적 가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런 한, 총기를 보유할 수 있는 미국인의 헌법적 권리는 어떠한 희생의 치른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인지도 모른다.

출처 : [조선일보] 2007년 04월 26일(목) 오전 01:50
원문보기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2&articleid=2007042601503998234&newssetid=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