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눈치없는, 눈치만 보는 공직사회 / 이대현(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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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폭염이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 하루하루가 끔찍하지만, 이렇게 물러나 버리면 임시로 찔끔 생색내기에 그친 ‘가정전기요금 누진제’가 그대로 살아서 버틸지 모르니까. 정부와 여당이 여론에 밀려 뒷북치면서 ‘개편’을 논의한다지만, 해마다 국민들은 누진제 무서워 무더위를 참고 견디다 못해 불만을 폭발시키면 마지못해 정치권과 정부가 제도개선을 언급하지만, 몇 년째 서늘한 바람이 불기 무섭게 덮어버린 전례를 보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형평성, 과잉성, 효율성 등 다른 요인은 차치하고라도 기후환경이 변하면 생활패턴도 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만 제대로 했다면 국민들 화만 키운 산업통상자원부 간부의 어이없는 논리의 ‘불가’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올여름은 일찌감치 유례없는 무더위가 예상됐다. 그렇게 ‘선제적 정책’을 강조하는 정부라면 한편으로는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조치를 준비해야 했다.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 정책’으로 하루라도 빨리 방안을 내렸다면 해주고 욕먹은 ‘한시적 완화’도 박수를 받았을 텐데 국민이 아닌, 다른 곳 눈치 보느라 하지 않았다. 모든 회의나 발표의 뉴스 화면과 사진에 긴 셔츠에 양복저고리까지 입은 공직자의 모습은 연일 쏟아지는 국민들의 비난의 화살을 무시했다. 국회나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3~4년 전, 정홍원 총리 때에는 그래도 무더위에 정부와 모든 공공기관이 며칠 에어컨을 틀지 않았고, 모두 더위에 윗옷 벗고 회의하는 ‘솔선수범’과 ‘고통분담’ 시늉이라도 했다. 왜 눈치가 없고, 눈치만 볼까. 책임지기 싫어하는 고질적 병폐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정책에, 회의와 발표 자료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 4개가 있다. 계획, 추진, 논의, 검토이다. 혹시라도 이 단어에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하다. 검토는 생각조차 안 하겠다는 것이고, 논의는 말만 꺼내보겠다는 것이고, 추진은 시늉만 내겠다는 것이고, 계획은 언제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도 용기와 소신으로 ‘한다’와 ‘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위에서 시키면 모를까. 장·차관까지 그렇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유난히 회의를 많이 한다. 일하는 척하면서, 책임 회피와 분산에 회의만큼 그럴듯하고 좋은 것도 없다. 그것도 가능한 여러 분야, 부처가 참여하는 ‘TF’를 만들면 더 좋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그랬다. 사안을 시급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미지도 주고, 시간도 벌고, 나중에 유야무야돼도 특정 부처만 비난받지 않는다. 이번 전기누진제 개편에도 정부와 여당은 ‘TF’를 들고 나왔다. ‘세 시간 일할 것 한 시간에 끝내고 남은 시간 책을 보든지, 쉬어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은 하지 마라. 어떤 아이디어든 내라, 가능한 한 살리겠다.’ 잠시 공직에 있을 때, 직원들에게 강조한 세 가지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쉬면 논다고 찍히고, 쓸데없는 일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성실하다는 소리 듣고, 아이디어 내봤자 무시당하거나 좋은 것은 위에서 가로챈다는 것이다. 성과급조차 연공서열의 ‘철밥통’ 관례를, 그것도 딱 한번 깨는데 자리까지 걸어야 하고, 일을 가장 빨리 처리하는 방법으로는 거짓으로라도 윗선을 언급해야 하는 대한민국 공직사회. 이런 문화에서 소신, 책임, 능력, 창의, 자율을 고집하는 공무원은 바보가 된다. SBS 주말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 주인공인 우리 시청의 5급 공무원 고상식이 현실에서는 없다. ‘공직사회 개혁’을 외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그래 놓고서는 위에서부터 전문성, 책임감, 도덕성보다는 눈치 없고, 눈치만 보는 자기 사람으로만 채웠다. 자연히 아래에서도 ‘영혼 없는’ 공무원이 평가받고, 승진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인사시스템을 만들면 무엇하나. 눈치 보는 사람이 키를 잡고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제도가 ‘영혼’까지 불어넣을 수는 없다. 이대현 국민대 겸임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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