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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기고] 해법은 법치(法治)와 공정(公正)에서 / 이호선(법학부) 교수

이호선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법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무너진 법치주의 앞에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최근 법학 전공 교수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대상자의 75퍼센트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통령의 잘못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 위반 혐의의 핵심은 비선조직을 활용하고 이들의 국정 농단을 막지 못함으로써 헌법상의 3권 분립이 지향하는 “견제의 유효 사거리”를 대통령 스스로 벗어났다는데 있다고 본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 헌법상의 각종 회의, 예컨대 국가안전보장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모두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조력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기관이다. 내각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각 수석과 보좌진 역시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들 조직과 구성원이 헌법상 갖는 의미는 자연인이 갖는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보완해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이들에게는 모두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따르는 기밀유지와 청렴의무와 같은 책무가 주어지고 별도의 형사처벌이나 정치적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에 대통령의 수족에도 재갈은 물려 있어야 한다는 헌법적 합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투명함과 특별한 책임이 따른 공식 조직에 의해 보좌되는 대통령,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대통령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선서하고 취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구멍을 내버리고 만 것이다. 최순실 등에 대한 죄목 적용이 그 잘못에 비춰볼 때 국민이 볼 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고 개인의 일탈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를 말해 준다. 

대통령의 직무 과정 속에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 별도 세력이 숨어 있었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정해 준 공식적인 조력수단들을 배제하거나 후순위로 밀어내 버렸다는 점에서 대통령 스스로 권력 분립의 틀을 벗어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제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도록 되어 있는데, 비선 조직을 활용하면서 과연 이러한 절차적 제한도 지켜졌는지도 의문이다.

한마디로 작금의 모든 사태는 법치주의에 대한 경시가 일차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해법 역시 법치주의로 돌아가는 길이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헌법 질서에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이 보여주는 하야 요구라는 성난 민심은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헌법 기관인 국회와 이를 구성하는 정당과 그 지도자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좀 달라야 할 것으로 본다. 헌법 제정권자가 헌법에 탄핵 제도를 두었을 때는 불행하게도 이런 사태에 쓰라고 한 것이며,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거치는 절차를 통해 예측 가능하면서 질서정연한 퇴진이 가능하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국회와 헌재에서의 탄핵안 통과를 장담하지 못해서, 헌법상의 탄핵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 지레 포기한다면 입법부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 정당들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정공법을 택하여야 한다. 국회가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여 헌법상의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정도이자, 지금의 정국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는 길이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대통령 2선 후퇴와 국회 추천 총리, 그 총리가 사실상 임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내각 구성과 운용은 또 다른 위헌 소지에 휘말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우선, 헌법 제83조는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직을 겸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말은 총리가 대통령직을 겸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말이 좋아 2선 후퇴이지, 외치와 내정 모두 총리에게 맡긴다면 비록 사람은 둘이지만, 겸직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법률상 대리나 대행 등은 특별히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범위를 정한 구체적 위임이 원칙이고, 포괄적 위임이 안 된다는 법 이론의 기초에 비추어 봐도 총리에게 모든 권한을 다 위임한 대통령은 생각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위임이 아니라 포기일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왜 그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그런 포기는 바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해 놓은 헌법 제86조와 정부조직법 제11조 위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헌법 제86조 제2항에 의하면 국무총리의 역할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것에 그친다. 뿐만 아니라 정부조직법은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으로서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ㆍ감독토록 하고, 국무총리의 명령이나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면 중지 또는 취소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규정을 사문화하지 않고서는 총리에게 전권을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비상한 시국이라면, 비상한 시국에 대비한 헌법 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정강과 정책으로 국민에 의하여 선택된 대통령이 그 책임으로 운영하던 국정을 사실상 선거 없이 바꾼다는 점에서 대통령제를 택하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만일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고 어쨌거나 현직 대통령이 추진하던 정책들을 180도 되돌린다면 4년 전 선거에서 이 정권을 택하였던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통령에 분노하고, 탄핵을 주장하더라도 정책 사안별로는 여전히 지지하는 국민이 있는 법이다. 사실상의 정권 교체란 없다. 그건 또 다른 편법이고 변칙일 뿐이다. 반칙을 변칙으로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인 국민의 표에 의한 정권 교체만이 법치주의 정신에 충실하다.

대통령 2선 후퇴는 원칙도 아닐 뿐 더러 정국의 연착륙보다 당파적 대립, 국론분열만 더 부추길 공산이 높다. 

따라서 가장 좋은 해법은 대통령의 자진 사임이다. 그러나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리한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헌법상 취할 수 있는 방안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국민 앞에서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어떠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는지 보여 주어야 한다. 대의제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닌가. 

또 하나 지금 성난 민심은 단지 대통령과 그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행위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노한 국민의 마음 저 깊숙한 곳에는 점점 닫혀지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거나 방조하는 기성 정치인, 위정자들의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배신감도 깔려 있다. 최순실 딸의 이화여대 입학 과정에서의 불공정성은 우리 사회의 각종 불투명한 절차와 과정의 작은 한 단면일 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소외된 사각지대에서 기회균등이라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단식으로 기성세대에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차제에 권력구조의 개편뿐만 아니라 사회통합과 청년 세대가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하여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개헌 논의도 물 밑에서나마 이뤄져야 한다. 최순실 류(類)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장벽을 쌓아 올리고 도처에서 권력과 금력을 농단하는 ‘열린사회의 적’들이 사회적 룰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광장의 정치가 미래를 위한 규범의 합의로 승화된다면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실질적 법치주의를 위해, 그리고 격랑이 예고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 한국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헌법은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보완될 필요가 있다. 약에 쓰기 위해 3년 묵은 쑥을 구하려면 지금부터 쑥을 묵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당장의 사태가 위중하고 긴급해 보인다 해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할 것은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허약한 나라가 아니며,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더 큰 나라, 제대로 격을 갖춘 나라, 국민이 통합된 나라로 가기 위한 길은 법치주의라는 정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