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광장] 종편 규제와 블랙리스트 효과 / 신홍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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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종합편성방송사업자, 즉 종편의 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과연 그런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서 피자 한 판을 나눠 먹겠다는 사람이 많을수록, 피자는 잘게 쪼개진다. 사람이 많으면 누구나 조금씩만 먹게 되고, 누구나 만족하지 않는다면 피자 먹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다. 종편도 그런가? 한편 주파수의 제한이 없는 케이블방송이 등장했다. 그 뒤를 이어서 인터넷방송이 등장했다. 특히 인터넷방송은 자유공간을 제공한다는 인터넷망과 접속되면서 채널이 무한대일 수 있다. 주파수 같은 자원의 공급부족은 쟁점이 안된다. 그때 둘째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 광고시장의 규모 문제이다. 즉 나라의 경제사정에 따라서 광고하겠다는 기업의 수요가 달라진다. 광고 수요가 줄어들면 방송사의 광고매출이 줄어든다. 결국 방송사에게 광고시장은 한정된 자원이고, 그래서 너무 많은 방송사업자가 존재하면 운영이 어렵다는 논리가 타당하다. 그러나 주파수를 나눠쓰는 것과 광고매출을 나눠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주파수의 양에 따라 최대 방송채널 수는 확정된다. 그 숫자의 타당성은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반면에 광고매출을 얼마큼씩 나눠쓰는가는 사업자가 정할 사항이다. 방송의 제도적 자유의 법원리에서도 방송사의 경영에 국가 또는 사회가 관여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또한 사업자의 경영의 타당성이 사전에 객관적으로 입증될 수는 없다. 단지 추정에 의할 뿐이다. 예컨대 제한된 광고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광고수익을 얻어서 어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할 것인가는 추정치이다. 그래서 방송하려는 사업자의 의사와 그에 기초한 추정적 계획을 정부가 평가해 사업이 허가되고, 그 의사와 추정된 계획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가 재허가 심사대상이 돼왔다. 그래서 종편의 수가 너무 많다는 명제는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시각과 기준에 따라서 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종편의 수가 실제로 너무 많다는 명제의 진리값이 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 그 명제를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 첫째, 현행 법제도와 거리가 먼 발상이다. 즉 현행 법제도는 종편의 최대 숫자를 정해놓고서 그에 맞추려고, 예컨대 최저 점수를 득한 종편을 퇴출시키는 제도가 아니다. 그래서 종편이 너무 많다는 발상은 실제 구현은 못하고 단지 종편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만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둘째, 방송 규제 역사상 전대미문의 살생부 리스트가 쟁점이 될 수 있다. 현재 종편 채널은 4개다. 4개를 두고서 너무 많다고 하면, 적어도 한 개, 많게는 두 개가 과잉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4개 중에 1개를 뽑는 경우의 수는 4가지다. 즉 각 종편이 퇴출될 확률은 무려 25%에 달한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이 속개되고 있다. 특정 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을 금지하는 리스트가 사전에 작성돼 조직적으로 적용됐기에 위법할 수 있다는 법리가 쟁점이다. 퇴출확률 25%를 연상하게 하는 종편이 너무 많다는 발상은 그에 비하면 위법성을 따질 여지가 당연히 없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의 효과가 발생할까봐 우려되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필자의 우둔한 기우에 불과한 것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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