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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벤처 성패, 디자인 전략에 달렸다 / 안진호(대학원 경영학과) 겸임교수


우리나라는 성공적으로 정부주도의 디자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중심에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성공사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 유럽, 일본 등도 정부보다 민간주도로 디자인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만 정부 주도로 디자인산업을 육성하느냐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가 디자인을 도입하게 된 계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수출이었다. 그 수출전략의 핵심은 기술적 우위보다는 빠르고, 값싸게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제품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이 도입됐다. 디자인은 수출 제품의 경쟁력 도구였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원래 명칭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였고, 수출용 포장박스 등을 팔았다. 제품의 가치를 포장하는 디자인과 완제품의 포장박스를 한 곳에서 관리하는 것은 합당한 논리였다. 디자인은 이런 과정에서 이 땅에 정착했고, 수출 중심 산업구조는 정부주도로 디자인정책과 관련 산업이 발전했다.  

디자인은 그 의미와 용도를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고, 관련한 정부 정책도 경계를 짓는 것이 쉽지 않다. 디자인 정책은 어느 한 부처에서 모든 것을 담당할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4대강 수질문제 등의 물 관리 일원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부나 국토부에서 일방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디자인도 산업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이슈가 되지 않을 뿐이지 동일한 현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디자인을 산업적 측면으로 접근한다. 직접적인 디자인산업도 육성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산업군의 경쟁력 수단으로 디자인을 활용한다. 즉, 여기에서 디자인은 독자적 산업적 가치와 함께 산업기술적 가치가 중요하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산업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도 있지만, 캐릭터를 개발하고, 광고를 만들고, 문화상품을 지원하고, 표현하는 분야도 있다. 이런 분야에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서 디자인이 존재한다. 디자인이 콘텐츠가 되는 것이고, 문화적 관점으로 판단하기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런 측면만 보면 디자인이 다양하게 활성화된 것 같다. 하지만, 디자인은 애매하기에 스스로 가치와 중요성을 증명하기 어렵고, 범위가 축소되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게임산업에서 캐릭터부터 게임의 배경 등 모든 부분이 디자인이다. 게임산업은 디자인산업의 하나로 판단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군으로 분류되고, 디자인산업과는 별개로 인식된다. 환경디자인, 실내디자인은 건축산업으로 한 분야로 포함하지, 디자인산업에 관한 정책에서 배제되는 듯 하다.

이렇듯 디자인의 산업적 정의와 가치가 혼재돼 있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부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디자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디자인은 단지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생산하는 산업제품과 서비스, 문화콘텐츠 등의 포장 수단이 아니라 기업혁신의 원천이 돼야 한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누구보다 먼저 생각해내는 창의력과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결합을 시도하는 융합적 사고라고 한다.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먼저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최적화된 수단과 방법이 디자인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벤츠, BMW, 아디다스 등의 스마트공장이 있다. 여기의 핵심 설계와 컨설팅은 독일의 세계적 IT기업인 SAP가 주도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SAP의 전략적 사고방식이 디자이너의 문제분석과 해결방식인 '디자인 씽킹'이라는 점이다. 또한,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혁신기업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다이슨의 제임스다이슨도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디자인은 단지 예쁘게 그리는 수단이 아닌, 중소기업 성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4차산업혁명의 중추로서 키워내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중요하다. 이제는 단지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기존 산업화 시대의 수요와 공급, 자료 중심의 지원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명실상부 중소기업 관련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 질(質) 좋은 중소기업을 만들려면 디자인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단지, 제품을 포장하는 수단으로서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영양분 공급해주듯이 디자인을 지원해주는 방식이면 안된다. 디자인이 기존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는 역할과, 중소기업의 핵심 가치를 직원 모두가 연결하는 역할로서, 고객 중심의 시선에서 그들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그리는 디자인으로 성장해 왔다면, 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생각하는 디자인이다. 시작하는 벤처기업과 혁신을 꿈꾸는 중소기업이 필요한 것은 수단이 아닌, 전략으로서의 디자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디자인이 단지 기업의 포장수단이 아니라, 우리기업들의 시장 선도와 창출의 전략으로 디자인을 이해하고,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7103102102251607001&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