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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멈춤과 떠남 / 이의용(교양대학) 교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수고한 직원에게 사장이 휴가를 권하던 이 카피. 요즘엔 장사 잘되는 세입자에게 건물주가 가게 비워 달라고 할 때 써먹는 말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땀 흘린 사람에게 가장 요긴한 건 쉼이다. 하나님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하루 쉬셨다. 사람이나 가축, 심지어 땅까지도 쉬게 하라고 명하셨다. 쉼은 창조주의 법칙이다.

조선시대에 관리들은 열흘에 하루 정도 쉬었다. 머슴들도 명절이나 절기를 이용해 대략 한 달에 한 번 쉬었다. 요일제가 도입되면서 공휴일이 생겼고 산업화가 되면서 휴가가 생겼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러 통계가 대한민국을 과로사회로 지목하고 있다. 지친 사람에게는 물과 음식, 그리고 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은 바람 빠진 바퀴 같아 능률이 오를 리 없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 같아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 냉각수 없는 엔진처럼 조금만 더 과속하면 폭발할지도 모른다.

쉼을 뜻하는 ‘휴(休)’는 사람이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는 모습이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쉬면서 피로도 회복하고 영양도 섭취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캐나다나 미국에는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들이 울창하다. 그래서 벌목을 겸해 가끔 나무 베기 시합을 한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선수들은 있는 힘을 다해 톱으로 나무를 베기 시작한다. 나무가 워낙 커서 아침에 시작한 경기가 오후 늦게 끝나거나 중간에 포기하기도 한다. 어느 경기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나무를 벤 선수가 꼴찌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50분 일하고 10분 쉰 선수는 2등을 차지했다. 우승은 놀랍게도 가장 짧게 일한 선수가 차지했다. 그는 겨우 30분 동안만 일하고 15분을 쉬고 15분은 무뎌진 톱날을 갈았다.

겨울에 눈 쌓인 운동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본 적이 있다. 앞만 보며 똑바로 걸어가려 했지만 돌아서서 보면 구불구불했다. 그래서 뒤로 걸어봤는데 발자국이 직선을 이룰 수 있었다. 쉼은 멈춤이다. 멈춰야 옆도 보이고 뒤도 보인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 현관에 상자를 하나 놓는다. 그리고 그 안에 24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을 찾아 담는다. 그러고는 하루 동안 푹 쉰다. 요즘 우리라면 스마트폰, 자동차 열쇠, 컴퓨터, 텔레비전 리모컨 같은 것들이 아닐까.

쉼은 떠남이다. 지금 있는 곳,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떠나봐야 내가 보인다. 요즘 대학생들 중에는 휴학을 하며 해외 생활을 해보는 이들이 많다.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살아보면서 자기를 찾게 됐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익숙했던 자리에서 떠나봐야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성찰할 수 있다. 쉰다는 것, 성찰해본다는 것은 그 똑똑한 인공지능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지혜다.

휴가철이 되면 많은 이들이 어디론가 떠난다. 그래서 ‘휴가를 간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시원하고 한적한 곳이 아니라 더 뜨겁고 복잡한 곳을 찾아간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인가. 더 창조적인 휴가가 필요하다. 평소 안 해 보던 일을 해 보는 건 어떨까. 머리로 일하는 이는 육체노동을, 육체노동을 하는 이는 머리로 하는 일을 해 보면 어떨까. 모두가 떠난 한적한 도심의 명소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동료들이 떠났을 때 남아서 일하고, 모두가 돌아온 후 떠나는 건 어떨까.

기계는 녹이 슬면 기름을 치고 닦으면 되지만 사람은 한번 녹이 슬면 닦아낼 방법이 마땅찮다. 화초에 물 줘본 지 오래된 이, 밤하늘의 별을 본 지 오래된 이, 다른 사람 배꼽 잡게 웃겨본 지 오래된 이, 가장 가까운 사람과 영화 본 지 오래된 이, 재미있는 일을 재미없게 하는 이, 회사 일을 자주 집에 들고 오는 이, 누군가를 위해 땀 흘려 봉사해 본 지 오래된 이, 주위 사람들과 말이 잘 안 통하는 이. 이런 이가 삶에 녹이 슬어가는 사람이다. 혹시 이렇다면 지금 하던 일을 당장 멈추고 그 자리를 떠나보라. 뭔가 보게 될 것이다.

이의용 (국민대 교수, 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80934&code=2311141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