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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日에 금전배상보다 정신적 차원 사죄 추궁을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신일철주금은 1억원의 위자료 배상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어 11월 29일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한 명당 1억~1억5000만원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불법적인 식민지배하에서 발생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위자료, 즉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로 오랜 고통을 감수해왔던 피해자 구제의 길은 열리게 됐지만 한일 관계에는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했다. 국제법 위반이므로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격하게 반발하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이 판결 이후 한일 관계 과거사 문제에 관해 공수가 전환돼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마치 역전된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련의 강제징용 소송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는 일본 측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1991년 외무성 조약국장은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됐지만 외교 보호권을 상호 포기한 것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입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본 사법부 재판에서 거의 모든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기각됐다. 일본 사법부는 "개인청구권은 소멸됐다고 할 수 없지만 피해자가 재판을 청구할 권능은 상실했다"는 지극히 애매하고 기묘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일찍이 노무현정부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징용자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입법을 통해 금전 지급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즉, 징병·징용 피해자 7만2000여 명에 대해 도합 6200억원의 금액을 지불했다. 사망자·부상자에게는 최고 2000만원을, 생환 피해자에게는 연 80만원 한도의 의료비를 지급했다. 이보다 앞서 1974년에는 정부가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군인·군속·노무자로서 사망한 8552명에 대해 1인당 30만원씩 총액 25억6560원을 지급한 바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가장 유사한 국제 사례는 독일의 경우로 `기억책임미래 재단`에 의한 피해자 구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재단은 독일 정부와 강제노동 관련 기업이 각 50억마르크씩 100억마르크를 출연해 900만여 명의 피해자 중 170만명의 생존 국외 강제노동 피해자에 한해 1만5000마르크(약 1200만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구제했다.

대법원이 내린 식민지배의 불법성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의 기존 원칙과 부합하는 것으로 이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식민지배가 불법이었으니 전면적 배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대일외교를 전환할 것인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필자는 국제법 및 국제정치의 현실을 고려할 때 금전적 배상 요구보다는 도덕적 우위에 바탕을 둔 정신적 차원의 사죄 반성을 추궁해온 정부의 대일과거사 외교는 현명하고 타당했고,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와 관련해서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재편해 국내의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 출연을 받아 대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미쓰비시중공업·신일철주금 등 관련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 기회는 오픈해두는 것이 좋다.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본 기업에 대한 압류 등의 강제 집행이 이뤄진다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걸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어차피 한일의 최고 사법기관은 상이한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을 일본재판소에 제소하면 백전백패이고, 반대로 한국 법원에 제소하면 백전백승이다. 과연 누가 청구권 협정에 관해 타당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 국제사법재판소 판단에 맡김으로써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출처: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77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