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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강제징용 문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로 해결하자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요즘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골이 깊어졌다. 서먹서먹하다 못해 꽁꽁 얼어붙었다. 일본 언론의 한국 보도 프레임은 네거티브 일색이고 혐한 분위기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한국은 한국대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일 과거사를 보는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반일과 혐한의 관계가 구조화되고 있다. 최근 한·일 관계 악재는 위안부재단 해산,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그리고 레이더 조준을 둘러싼 갈등이다.
  
위안부재단 해산은 일본의 반발을 샀지만,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도 재협상을 요구하지도 않겠다고 한 이상, 좋든 싫든 외교적으론 봉합이 되었다. 레이더 조준 갈등은 인접 국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해프닝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간 소모적 공방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당국 간 허심탄회한 대화만 이뤄진다면 수습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난항중인 것은 정부 간 소통이 두절 상태에서 양국 간 신뢰가 얼마나 바닥인지 보여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악에 빠진 한·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긴급한 해결을 요구하는 이슈는 강제징용자 문제이다. 정부는 해법을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일각에서 논의되는 재단 설립에 의한 해결 방식도 현실적으로는 간단치 않다. 정부와 청구권 수혜 기업으로 구성되는 1+1 방식 혹은 일본 기업까지 포함하는 1+2 방식으로 피해자 구제에 나선다 해도 배상액을 맞추기는 역부족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14건이지만 2007년 입법 조치로 정부가 증빙 자료에 따라 금전 지급한 피해자는 7만2000명에 이른다. 피해 구제에는 7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액수가 소요될 수도 있다.
  
피해자와 변호인단 요구로 법원은 해당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압류에 착수해 처분을 금지했다. 3월 1일까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마침내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하였다. 정부 간 협의가 진행된들 해법을 찾을 리 만무하다. 청구권협정 제3조는 해석 이견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외교 채널에 의한 협상으로 해결을 시도하고 그래도 안 될 경우 중재재판위원회를 구성해 사법적 해결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재위 구성은 30일 이내에 양국이 정하는 2인의 판사와 이 둘의 합의로 정한 제3국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판사로 구성된다. 이게 안 되면 한·일이 아닌 3개국이 지명한 판사 3인으로 중재위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연 3인의 판사로 구성되는 중재위가 순조롭게 설치될 수 있을지, 설사 가까스로 중재위가 구성되어 해결책이 도출되더라도 양 정부와 국민이 흔쾌히 최종적으로 승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중재 재판에 의한 해결이 좌초될 경우 최후의 해결 방법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방안이야말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한·일 관계의 파국을 막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ICJ에 제소한다고 해도 이를 국운을 건 국가 간 싸움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어디까지 대신하고 제한할 수 있는지가 판결의 요체가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강제징용 소송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일본 측이다. 일본 외무성은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않았지만, 피해자가 재판을 청구할 권능은 상실했다”는 애매모호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은 일본 재판부에서 모두 패소하거나 기각되었고 한국 대법원에선 승소했다. 누가 청구권협정의 타당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 ICJ 판단에 맡김으로써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나쁠 게 없다. 대법원의 판결이 ICJ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면 일본 정부와 기업은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에 응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반대로 청구권협정으로 징용 피해자의 보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피해자 구제는 국내 조치로 처리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일 외교 투트랙 원칙을 표방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 따질 건 따지되 경제·안보·문화 등 이슈에 관해서는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징용자 문제는 ICJ에 맡기고 최우선 과제인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선 일본의 건설적 역할을 견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정상 간 셔틀외교를 복원시켜 청년 일자리 협력,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통화스와프 등 실질적 경제 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일 외교의 긴급 과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286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