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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시론]"부안 주민투표하자" / 홍성걸(행정)교수
핵폐기장 설치를 둘러싼 전북 부안군민과 정부의 대립 양상이 심각함을 넘어 민란 수준에 이르렀다.


화염병과 LP가스통을 동원한 폭력시위는 물론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각종 공공시설 방화가 자행되었다. 병원에서는 시위대의 보복이 두려워 부상한 경찰의 치료를 거부하는가 하면, 이들을 실은 앰뷸런스가 시위대에 습격당해 부상자들이 뭇매를 맞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처럼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을 따지자면 정부나 부안군민 대책위나 할말이 많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도덕적 정당성과 절차적 합리성에 문제가 있는 정부의 행위는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국민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믿고 따르지 않는 정부는 국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법과 질서를 지키고 원칙을 바로세울 수가 없다. 주민들은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불법행동을 서슴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국민 전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고 주장을 관철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결국 불법적 수단을 통한 사적 이익의 실현이 반복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핵폐기물은 원자력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원자력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국내 에너지 수급 상황에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건립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민들은 원자력의 혜택은 당연시하면서도 폐기물 보관을 위한 시설을 내 고장에 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운동가들도 문제는 지적하면서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모두들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다.


부안군민들은 당장 연내 주민투표를 요구하면서 점점 폭도화하고 있다. 정부로서도 25년 이상 끌어온 핵폐기장 건설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어찌해야 하는가.


국민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원자력 발전의 비용은 역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는 핵폐기장을 유치하는 지역에 막대한 혜택을 주겠다는 당근을 활용해 자발적인 유치신청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부안군처럼 대다수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곳에 핵폐기장을 설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주민투표법의 조기 입법을 통해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주민들의 의사를 직접 물어야 한다. 부안군민들이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확정된다면 미련을 버리고 새롭게 후보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폐기장 유치에 따른 혜택을 구체화하고 국회에서 이를 사전에 확정함으로써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정부를 믿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정부도 유치를 신청하기 전에 주민투표를 통해 사전에 지역사회 의견을 공식적으로 결집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를 포함한 모든 집행단계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주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직을 한시적으로 설치·운영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과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여 고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들이 정부의 약속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말로만 엄정대처할 것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단이기주의적 행태를 뿌리뽑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가 유린되고 파괴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국가 권위와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경찰관이 두들겨맞는 사회에서는 결국 주민들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당근에 대한 약속뿐만 아니라 채찍에 대한 약속도 지켜져야만 국민들은 정부를 믿을 것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 타협하기 위해 또다시 법질서를 유린한 자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