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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자성의 기회…개혁테러 곤란" [한국인터뷰] 정성진 총장
2003. 3. 12. - 한국일보 -

요즘 검사들의 ‘인사파동’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팔을 걷어 부치고 평검사들과 직접 만나 사태수습에 나섰을 정도다. 그러나 검찰 개혁과 중립성 확보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정성진(鄭城鎭)국민대 총장은 정치권의 때가 묻지 않은 검찰의 원로로 불린다.

그는 검찰의 인사파동을 보며 착잡한 듯 했다. 정 총장 자신이 문민정부 초반인 1992년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됐으나 단지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에 휩쓸려 낙마했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후 정 총장은 학자로서의 인생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고 어느덧 총장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북악산 기슭에 있는 국민대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검사들이 국민 여론을 직시하고 스스로에 엄격해져야 한다” 면서도 인사파동에 대해선 “개혁 테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며 특유의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총장님이 검찰에 재직하실 때보다 요즘 검찰은 무척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수사 환경도 변했고 권력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 하는 모습입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검찰은 역할이 제한돼 있었고 국민들의 기대도 적었습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검찰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토양이 갖춰졌지만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지요. 타성에 젖고 정치권과 유착되는 등 1차적으로는 검찰 자체의 책임이 큽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이 개혁의 대상으로 된 것도 같은 맥락이죠. ”

-말씀 하신 것처럼 과거 검찰은 정권 출범과 함께 개혁의 주체로 ‘사정정국’을 주도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오히려 ‘개혁대상 제1호’로 지목되는 분위기입니다. 법조계 원로로 느끼는 감회는.

“검찰이 통치권의 수단이 돼서 국가를 다스리고 야당을 탄압하는 등 정권에 이용된 측면이 있어요. 법치주의의 대변인, 인권옹호의 파수꾼, 사회정의의 실현자로서의 검찰상이 구현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최근 검찰파동은 이런 검찰의 이상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의 진통이라고 봅니다.”

-최근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대화를 본 소감은.

“먼저 시대가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대화 자체는 긍정과 부정적 측면이 다 있었다고 봅니다. 국민여론을 의식하면서 직접 대통령이 평검사를 설득한다는 것은 좋았지만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이 처리할 문제에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검찰개혁이라는 국민적 의지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승리가 아니었나요(웃음).”

-김각영 전 검찰총장은 ‘인사를 통한 검찰 장악의 의도가 드러났다’며 대통령을 향해 정면으로 도전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사실 김 총장이 떠날 시점을 실기한 걸로 봅니다. 대통령의 불신을 확인한 뒤에야 사표를 냄으로써 국정운영에 저항하는 것처럼 비쳐진 점도 유감이지요. 사실 ‘인사로 검찰을 장악해선 안된다’는 말은 옳지요.

그러나 김 총장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과 신망을 받는 분이었다면 그런 반발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이 총장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사퇴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이번 토론회 이후 검찰 내부에서는 후련하다는 반응이지만 일반인들은 ‘역시 검찰은 개혁대상이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후배 검사들은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검사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여론은 검찰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지요.

검사들 말에 공감이 가고 눈물겨운 부분도 있지만 다수 국민은 검찰에 대해 반감이 강하고 ‘역시 검사는 특권의식을 가진 부류구나’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검사들이 대통령에게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국민들은 심리적인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검찰 선배로 보자면 검사들이 당당히 의견 개진하는 것이 신선해 보였고 검찰 장래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연중에 검사들의 직업적 속성이 나왔고 이것이 오만하게 비쳐졌지요. 검찰이 버릇없고 특권의식에 젖었다는 일반 여론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국민을 위해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해 일을 하는 조직입니다. 국민들도 검찰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시각으로 이 문제를 봐야지 ‘그 동안 특권을 누린 놈들 이제는 맛 좀 봐라’는 식의 반응은 곤란합니다.”

-검찰개혁의 화두 중 하나는 법무부와 검찰의 분리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요.

“한번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법무부는 장관을 포함 대부분 간부가 검사의 신분이었기에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검찰권 행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근본적으로 치유한다는 측면에서도 시도해 볼만한 일입니다.”

-검사들은 서열파괴에 대해 ‘나이만 낮춘다고 개혁이 되느냐’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준사법기관이라는 검찰의 특수성 때문에 서열이 존중돼 온 것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어요. 검찰동일체 원칙도 살아있는 상황에서 ‘서열파괴는 개혁으로 옳은 것이고 서열을 존중하는 것은 수구적이다’는 인식은 동의할 수 없어요.

서열파괴 인사를 하더라도 검찰 내부가 공감할 수 있는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면 저항이 덜했을 텐데 그런 지혜가 아쉬워요.”

-비 검찰출신의 40대 여성인 강금실 장관의 발탁에 대해 검찰 일부에선 “검찰 전체를 욕보이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 듯 합니다.

“나도 법조인 출신으로 처음에는 생경했어요. 그러나 인식을 고쳐야지요. 기수가 낮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생각입니다. 인사권자의 의도를 존중한다는 자세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구시대적인 사고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이번 파동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이 왜 국민으로부터 불신과 외면을 받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합니다. 검찰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을 옹호하고 법을 지켜나가는 기관이기 때문에 대통령도 검찰을 타율적이라는 시각으로 보지말고 국민의 검찰이 되도록 이끌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겁니다.

극단적으로 개혁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대립각을 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검찰은 뼈아픈 자성의 기회로 삼고 대통령은 국민이익과 법치주의 정착을 위한 기구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번 파동이 검찰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까요.

“검찰입장에서는 국민의 혹독한 비판이라는 절차를 거쳤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태어났다는 기분으로 출발해야죠.

다만 총장 이하 인적쇄신이 이뤄졌는데 물러나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배려가 아쉬워요. 공안부 검사로 일생을 바친 김원치 검사장만 해도 긍지와 자부심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는데 ‘청산대상이니 나가라’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인적청산의 방법이 틀렸다는 말인가.

“대통령이나 민정ㆍ사정에서 유념해야 할 부분이에요. 광범한 정보에 의해 개혁의 대상을 선별했다고 하지만 검사들이 보기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한정된 부류의 사람들만 대상으로 했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 정치인과 각계 원로 등의 여론을 듣는 모양새를 갖추고 인사위원회의 정신을 살리는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밀실인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총장님도 검찰을 떠날 때 억울함을 겪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이번에 떠나는 분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웃음) 전직 대통령들은 검찰을 쓰면서 편하다는 이유로 검찰을 통치권의 수단으로 활용했어요.

검찰권 행사에 직접 간여하기 보다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 등을 통해 검찰을 통제해 온 것이 사실이에요. 이런 과정이 누적되면서 검사들은 피해의식이 커졌고 반대로 국민들은 검찰을 불신하는 악순환이 된 겁니다.”

-검찰개혁을 위해 제언이 있다면.

“검찰권 행사에 정치권의 의사가 반영되거나 영향력 행사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독자적인 검찰권을 행사하는데 정치권이 인사문제로 제동을 걸어왔기 때문에 검찰이 반발하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젊은 검찰 지휘부가 잘 할 것입니다.

인사문제를 포함해 검찰의 독자성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검찰이 권력화ㆍ파쇼화한다면 시민의 참여로 통제해야 하겠지요.

검찰의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하지만 인사권을 통한 정치권의 간섭만 없으면 검찰개혁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 참, 그리고 검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큰 물결이 올 때는 개인이 거스를 수 없습니다. 자신을 되돌아 보고 이를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질적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대담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정리 김정곤기자 kimj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