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금요칼럼]불안 없애줄 리더십 절실 /배규한(사회)교수

2003. 3. 21. - 동아일보 -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다고 한다. 무력 해결의 길에 들어선 이라크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경제에 미칠 파장은 얼마나 클지 불안하다. 북핵 위협은 어느 정도이며, 북한의 무모한 외교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원-달러 환율은 얼마나 올라가고 주가는 어떻게 될지, 국가신용등급은 언제 어떻게 조정될지도 걱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갈등이 ‘망국병’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좌우 이념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일 터질지…▼
불안감은 거창하게 국가적 차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주변에도 바짝 다가와 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를 겪고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다. 쉰 살만 되어도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전전긍긍해야 하니 남은 인생이 불안하기만 하다. 수천만원짜리 옷이 거침없이 팔리고 수만명이 호화사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걸 보며, 다수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아파트 값이 언제 폭등하고 폭락할지, 어느 순간에 부동산 특별조치가 나올지 모르니 이사하다 운 좋으면 횡재하고 재수 없으면 몇 년치 봉급을 날린다.

수출만이 살길이라 믿으며 수많은 노동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땀흘려 외화를 벌어들이지만 그 외화는 누가 어떻게 쓰는가? 행여 안보에 허점이 생길세라 불온 전단 한 장만 주워도 파출소에 신고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인터넷만 열면 김일성 부자 우상화며 북한 체제 선전물이 좍좍 쏟아지니 목숨 걸고 철책선 지키던 시절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대학가에서 이적단체 진압에 몸바쳤던 경찰은 바로 그 범법자가 국가유공자로 보상받는 것을 보며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어쩌다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던 대한민국을 누가, 어느 집단이 이처럼 불안하게 만들었나? 그것은 지역갈등으로 누가 혜택을 보았는지, 누가 외화를 낭비하고 있는지, 누가 가치관을 전도시키고 있는지 보면 알 것이다. 그들은 바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남용한 권력엘리트 집단이다. 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부정축재, 탈세, 자녀 불법 유학, 아들 병역 기피, 거짓말과 말 바꾸기 등으로 사회적 신뢰 기반을 붕괴시켰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한국은 과연 전쟁이나 경제적 파국을 우려할 만큼 불안정한가? 사실 1960, 70년대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의 상당 부분은 미래에 대한 목표와 희망이 안보이는데서 연유한다. 검찰은 신뢰할 수 없고, 재벌은 부도덕하고, 교육은 ‘마피아’가 주무르고, 기득권층은 수구세력이며, 메이저 언론은 왜곡을 일삼고, 관료집단은 조폭문화에 젖어 있다면, 분노와 정의감으로 모든 것을 뒤엎을 수밖에 없다. 그 전제가 옳은지도 의문이지만 뒤엎은 후의 비전이 안보이니 더욱 불안하다.

국가위기는 리더의 역할에 따라 관리될 수도 증폭될 수도 있으며, 국민적 불안감은 대응방식에 따라 가라앉을 수도 있고 더 커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권력엘리트 집단은 사회불안을 키운 측면이 있지만 이제는 국민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작년 대선 과정에서는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가 많았다. 국가의 CEO로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성취할 수 있도록 전 국민의 잠재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이었을 게다.

▼언행일치의 모범 보여야 ▼
지금 한국은 위기를 관리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리더십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리더가 CEO 역할을 하지 못하고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되어 세세한 일까지 챙기며 지난 과오를 바로잡는 데만 몰두한다면 국민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으며 경제는 활기를 되찾기 어렵다. 정부는 국가 장기비전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최고 리더는 고뇌에 찬 신중한 판단으로 신뢰와 언행일치의 수범을 보임으로써 이라크전 발발과 함께 점증하는 사회적 불안을 국민통합으로 승화시켜 주기 기대한다.

배규한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khbae@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