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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남북한 역사학의 통합은 가능한가 / 박종기(국사)교수

2003년 6월 23일(월) - 조선 -

●북한의 역사 만들기

(한국역사연구회 북한사학사연구반/푸른역사/1만3000원)

남북한 역사학의 통합은 가능한가

남한의 한국사 연구자는 대체로 북한 역사학에 대해 애증(愛憎)이 엇갈린 감정을 가지고 있다. 고조선 연구, 조선후기 실학사상과 자본주의 경제발전, 갑신정변 등 근대 민족운동에 관한 1960년대 북한의 연구성과는 남한 역사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북한 역사학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1993년의 ‘단군릉 사건’으로 상징되는 ‘우리 민족 제일주의’, 평양이 세계 최초의 고대문명 발상지의 하나라는 ‘대동강문화론’은 남한 역사학자들이 도리어 냉소와 무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기대에서 실망으로 변한 것은 유물사관에서 주체사관으로 선회한 북한 역사학계가 과학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채 체제유지 수단의 ‘역사 만들기’ 작업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소속 8명의 연구자들이 3년간에 걸쳐 진행한 공동 연구성과를 담은 이 책은 북한 역사학계의 현황, 시대구분론, 단군릉 문제 등 북한 역사학의 전체 동향을 다룬 3편의 글과 대외투쟁사, 정치사상사, 생활풍속사 등 분야사의 연구동향을 다룬 5편의 글로 구성돼 있다. 북한 역사학이 남한 학계에 공식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지만 그간 유물사관에 입각한 연구성과가 주로 소개되었을 뿐이다. 1990년대 이후의 북한역사학, 이른바 주체사관에 입각한 ‘주체의 역사학’은 이 책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전모를 드러낸다.

1970년 지도이념이 된 주체사상이 하나의 사관(주체사관)으로 자리잡고 역사학의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이 지난 1980년대였다. 북한의 역사 연구자 양성과 연구체제, 시대구분, 단군릉 사건의 전모 등 전체 동향을 다룬 3편의 글은 특히 이 시기 이후 북한 역사학의 현주소를 시의적절하게 그려주고 있다.

필자들은 유물사관과 주체사관의 연구성과를 서로 비교·분석하면서 북한 역사학의 장단점을 짚어나가는 시시비비의 냉정한 자세를 시종 견지한다. 매 편의 글에서 남과 북 역사학의 역사인식에서 서로 합일 내지는 통합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형식으로 글을 맺는 서술 방식도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이다.


예컨대 단군릉 발견에 대해서는 북한이 1990년대 이후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곤란 속에서 체제의 정통성과 우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고, 통일 운동의 상징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작용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냉소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이후 북한 학계의 원시·고대사·중세사 연구가 급변한 것을 고려, 그 과정을 추적할 것을 촉구한다. 남북한 역사학의 차별성은 인정하되, 통합을 위한 역사인식의 공유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북한 역사학 관련 연표와 41명의 주요 북한역사학자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부록도 이 책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장점이다.

북한 역사학에 대한 섣부른 기대와 실망은 금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역사학계가 통일시대를 맞아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를 캐묻는 메시지인 셈이다.

(박종기 국민대 교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