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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디벗 빠진 공 그대로 친다’ 美 주말골퍼들이 억울해하는 규칙 1위/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불합리해 보이는 규칙들
진흙 묻은 공 닦지 못하고 치기
OB 벌타후 되돌아가 치기도 불만
48% “라운드 중 규칙 어겼다”
21% “한 라운드 2회 이상 위반”
PGA선수 44% “동료 부정 봤다”
억울하다 생각드는 상황일수록
규칙 위반하는 주말골퍼 많아

지난달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SK네트웍스 서울경제 클래식 2라운드 2번 홀(파3·165야드)에서 박민지가 티샷한 공이 그만 그린 앞 벙커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다음 플레이를 위해 벙커로 간 박민지는 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모래 속에 깊이 박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녀와 캐디는 공이 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 주변의 모래를 다 파헤쳐봤지만 황당하게도 끝내 공을 찾을 수 없었다.

골프 규칙에서는 찾기 시작한 지 3분 안에 공을 발견하지 못하면 분실구로 처리하게 돼 있다. 결국, 박민지는 1벌타를 받고 직전에 플레이한 티잉 그라운드로 되돌아가 다시 티샷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티샷을 그린에 올린 박민지는 2퍼트로 홀아웃하며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골프에서 이처럼 벙커에 들어간 공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똑같이 공을 찾지 못했더라도 만약 공이 페널티구역(해저드)으로 들어갔다면 공이 페널티구역의 경계를 마지막으로 통과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두 클럽 길이 이내에 구제구역을 정해 공을 드롭한 뒤 플레이를 하면 된다. 벌타를 받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거리에서의 불이익은 없다.

지난해 6월 PGA투어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는 미국의 잭 존슨이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12번 홀(파4·424야드)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존슨은 5m 남짓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시도했다. 아슬아슬하게 홀을 스친 공은 홀에 살짝 걸친 채로 멈췄다. 10초를 세며 홀 옆에서 공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존슨이 포기하고 퍼팅을 하려고 공에 다가서는 순간 갑자기 공이 홀로 굴러 들어갔다. 물론 존슨이 공을 건드린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버디라고 생각한 존슨은 확인을 위해 경기위원을 불렀는데, 뜻밖에도 그에게 1벌타를 부여했다. 골프 규칙에 따르면 홀에 걸친 공이 10초 후에 떨어질 경우 그 전에 스트로크로 홀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되, 1벌타를 부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10초 안에 공이 떨어졌다면 벌타 없이 버디로 처리돼 존슨은 10언더파로 공동 선두에 오를 수 있었다.

골프 규칙에는 이처럼 플레이를 하는 골퍼로서는 다소 불합리해 보이거나 억울한 느낌이 드는 규칙이 꽤 많다. 미국골프재단이 일반 주말골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골퍼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골프 규칙은 다름 아닌 디벗 자국에 빠진 공을 옮기지 못하고 그대로 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억울해하는 규칙은 페어웨이에서 진흙이 묻은 공을 닦지 못하고 그대로 치는 것이다. OB가 났을 때 벌타를 받고도 공이 코스를 넘어간 자리가 아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공을 쳐야 하는 규칙도 이에 못지않게 많은 표를 받았다.

다행히 2019년부터 골프 규칙이 큰 폭으로 바뀌면서 골퍼들의 억울함은 많이 해소됐다. 먼저 벙커나 페널티구역 내에서는 방해가 되는 돌과 나뭇가지 같은 자연장해물(루스 임페디먼트)들을 치울 수 있고, 페널티구역 내에서 어드레스 때 클럽을 지면이나 물에 대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자신이 친 공에 실수로 맞거나 클럽 헤드에 공이 두 번 이상 맞는 경우(일명 투 터치)도 예전 같으면 1벌타를 받았으나 지금은 고의가 아니라면 벌타가 없다. 그린에서 골프화 스파이크로 인한 손상 역시 수리가 가능해졌다. 모두 골퍼들이 억울해하던 대표적인 규칙들이다.

하지만 디벗 자국이나 벙커 안의 다른 사람이 남긴 발자국에 들어간 공을 꺼내지 못하고 그대로 쳐야 하거나 존슨의 경우처럼 여전히 억울한 규칙들은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미국골프재단의 같은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8%의 주말골퍼들이 라운드 중 규칙을 위반한다고 대답했다. 한 라운드에서 두 번 이상 규칙을 어기는 골퍼도 21%나 됐다. 프로골퍼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무려 44%의 프로골퍼들이 라운드 중 규칙을 위반하는 동료의 부정행위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미네소타 주립대 심리학과의 댄 섀커 교수가 골퍼를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애매하거나 억울하다고 생각될 여지가 있는 상황일수록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규칙을 어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거짓 동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한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규칙을 어기거나 규칙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자꾸 규칙을 어기고 합리화하다 보면 종국에는 자신의 행위가 규칙 위반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둔감해진다는 점이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21&aid=0002408797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출처 : 문화일보| 입력: 2019-11-20 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