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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화석’ 동인 금강산 시화전을 마치고 / 신대철(국문)교수
2004년 04월 08일 (목) 19:49



시모임 ‘빗방울화석’ 회원들은 지난 3~5일 금강산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시화전을 열었다.(경향신문 3월29일자 30면 보도) 이번 시화전은 남쪽 시인들이 남녘에서 갈고 닦은 시심(詩心)을 북쪽 사람들을 위해 북녘 자연속에서 전시했다는 점이 자못 뜻깊다. 금강산 만물상 등에서 전시된 시화전은 남쪽 시인들이 금강산에서 얻은 시적 영감을 다시 금강산에 바치는 작은 의식이었다. 남과 북을 관통한 시들은 북녘 사람들의 가슴을 덥혔다고 한다. 이 행사를 이끈 신대철 시인의 글을 통해 그 감회를 다시 새겨본다.









이번 시화전의 목적은 분리된 남북한의 정서를 융합하여 따뜻한 동포애를 나누는 데 있었다. 시화전을 준비하면서 ‘빗방울화석’ 시인들은 모두들 처음 시를 쓸 때의 자연인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 말 하나를 품고 눈발 사이를 서성거리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꿈꾸고 생각하고 밤늦도록 이야기하면서 몸속에 돌아다니는 이상한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던 시절로 하나씩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한 계절이 지나서야 불쑥 싱싱해진 얼굴로 되돌아왔다.





아마 젊은 시인들은 말이 도구화되기 전의 첫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시를 쓰기 위해 아는 길도 헤매었을 것이다. 품고 있던 말들이 사물로 되돌아가 제자리를 잡고 현장에서 빛에 바람에 흔들리고 향기를 낼 때까지 시인들은 떠오르는 말과 끝없이 부딪쳤을 것이다.





말의 첫모습을 살린 현장 체험시들이 하나씩 완성되면서 금강산 시편들도 늘어났다. 처음엔 백두대간 시편들을 골고루 선택하려 했지만 금강산 시편들이 늘어나자 아예 금강산 특집으로 시화전을 열기로 했다. 그래서 그림도 금강산만 십여년 그린 신장식 화백과 그 제자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시화전의 장소를 관폭정이나 만물상으로 잡은 것도 시의 현장성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시화전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그 무거운 패널을 지고 십리 가까운 산길을 걸어와 관폭정에서 하느냐고 물었다. 남쪽 북쪽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같은 시화를 보고 같은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금강산에 와서 관광객으로만 돌아다니지 말고 민족의 정기도 느껴보고 북쪽 사람들과 정서적 교감을 해보라는 뜻이군요” 하면서 다시 한번 시화를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북쪽 사람들은 우리 시화전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첫날 북쪽 출입국관리소에서 시화전 현수막을 압수하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시화전 현장에서는 우호적이었다. 북쪽 환경관리인들이 시 속에 표현된 도장골 피아골 같은 말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남쪽 백두대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림에도 관심을 보여 자연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고 왜 여기 저기 물감을 뿌렸느냐고 묻기도 했다.





금강산을 백두대간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기백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시화전을 통해 체제나 이념을 떠나 남북이 함께 한가롭게 정담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구룡폭포 앞에서 시화를 사이에 두고 정담을 나누는 동안 구룡폭포 소리는 어느새 원경으로 물러나고 남쪽 북쪽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파릇한 봄의 소리처럼 어깨를 스치곤 했다.





시화전 둘째 날은 장소를 옮겨 만물상 귀면암 바로 밑에서 열었다. 패널이 떨어질 정도로 바람이 거칠게 불었지만 현수막을 돌려받아 편안한 마음으로 시화전을 열었다. 첫날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시를 설명해 주었다. 분단 이후 남쪽시가 청록파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비유시 위주로 쓰여진 데 비해 북쪽시는 조기천 등의 영향을 받아 주로 서사적인 시가 쓰여졌기 때문에 기법상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예를 들면 북쪽시에 흔한 전쟁시가 우리 시에 없는 것도 시에 대한 태도와 시작 기법상의 차이에서 온다. 남북이 시로써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려면 시에 리얼리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 시들은 현장 체험시들이었기 때문에 낯선 지명을 빼놓고는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만물상 일대를 소재로 한 시 ‘망장천, 마시면 지팡이를 버린다는’은 현장감과 맞물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였다.





이번 시화전은 뜻밖에도 북쪽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어 성황리에 끝날 수 있었다. 다음 시화전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되었다. 북쪽의 한 여성은 시를 꼼꼼히 읽어보고는 웃으면서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에서는 이미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두들 함께 웃었지만 가슴 한쪽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신대철 시인/국민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