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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귀환 韓人’ 자료 첫 집대성 / 국사학과
2004-06-03 21:38


“1인당 1,000엔까지만 휴대할 수 있다.”(조선인 귀선자 소지 금품을 제한하는 건). 일본정부가 해방을 맞아 식민지 시기 강제징집 등으로 건너갔던 재일한인들의 귀환을 이른바 ‘계획수송’의 형태로 통제했음을 생생하게 밝혀주는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민대 한국학연구소는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3~2004년 2년간 10여차례에 걸쳐 중국, 대만, 일본 등지를 돌며 수집한 한인 귀환관련 자료인 ‘한인 귀환과 정책’ 총서(역사공간)를 펴냈다.

일본편 2권, 중국편 3권 등 모두 5권으로 된 총서에는 한국학연구소가 일본의 각 도서관 및 문서보관소, 중국의 당안관, 대만의 국사관·중앙연구원 등에서 수집한 귀환자료 3만여점 가운데 중요자료 500여점이 담겨 있다. 수록자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인 귀환 예정자 미귀환자 명부’. 한인들의 귀환이 한창 진행되던 광복 직후 일본 시즈오카현 우라가와마치(町)에서 작성한 이 명부에는 1946년 6월19일부터 9월24일에 걸쳐,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인 244명의 본적과 이름, 성별, 직업 등이 명기되어 있다.

해방 후 연합국총사령부와 일본 정부는 1946년 2월 재일 한인의 귀환과 관련하여 귀국 경비 및 교통편을 제공한다고 공시하고 1946년 3월 말까지 등록하지 않은 한인에게는 귀환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일방적으로 공표한 바 있다.


자료를 수집, 분류한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이 자료는 일본 정부가 기간내 등록하지 못한 한인들을 소위 ‘특권 상실’자로 분류하고 행정기관을 총동원하여 이들 미귀환자에 대한 명부를 작성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재일한인의 귀환과 관련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돗토리(鳥取)현 등에서 세운 한인의 ‘수송계획’은 일본 정부가 해외 일본인의 안전한 자국내 귀환을 위해 한인들의 귀환을 엄격히 통제하고 감시하였음을 보여준다.


1945년 12월14일 돗토리현에서 작성한 ‘귀선자(歸鮮者) 계획수송에 관한 건’에는 조선인 중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모두 ‘계획수송’을 따를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계획수송의 내용은 ▲귀환한 한국인이 이동할 차와 배에 대한 계획은 운수성에서 세울 것 ▲한인들은 약 30명씩 단체를 조직해 귀환자 명부를 만들어 현(縣) 지사에게 제출할 것 ▲현은 철도국으로부터 수송할당을 받을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1945년 8월부터 1950년까지 ‘계획수송’에 의한 귀환자수는 1백4만3백28명이다. 이는 일본에서 귀환한 1백40만명 가운데 70% 이상이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 조국으로 건너왔음을 말해준다.


또 귀환하는 재일한인들이 가져갈 재산의 한도를 정한 ‘귀선 조선인 공탁금에 관한 건’ 및 ‘조선인 귀선자의 소지금품 등의 제한에 관한 건’ 등의 문건도 눈에 띈다.


귀환한인들에게 현금은 1인당 1,000엔, 수하물은 1인당 250파운드(약 113㎏)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제한조건 때문에 귀국해도 삶의 기반을 마련하기 힘든 상당수의 재일한인들이 귀환을 포기했다.


중국지역의 자료는 한인의 귀환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충돌과 대립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음을 보여준다. 국민당은 한인 전원 송환이라는 방침을 세우고 한인의 재산을 몰수했다. 반면 공산당은 한인의 현지 정착을 위해 이중국적을 부여하였다.


중국 동북지방의 한교(韓僑·조선족) 귀환정책을 담은 ‘동북한교처리통칙’에는 생산직에 종사하는 한인은 잠시 체류할 수 있지만, 그밖의 한인은 즉각 소환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학계는 1945년 일제 패망 당시 해외 한인의 수를 5백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광복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일본지역 1백40만명, 중국 동북지역 1백여만명, 중국 대륙 10만여명, 하와이·대만·오키나와 등 10만여명으로 3백만명 정도. 그러나 귀환 문제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료 입수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된 ‘한인 귀환과 정책’ 총서가 갖는 의미는 적지않다. 장석흥 교수는 “자료총서는 한인 귀환 문제의 연구뿐 아니라 해외 한인사회의 역사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