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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어제와 오늘] 한승조씨 와 한상일 교수

[주간한국 2005-03-23 17:35]

“동양민족의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 일본과의 합동(1905년 보호조약 후에 합병 이라고 씀)을 조선이 거부한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 하는 것이고 불행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조선이 스스로 용단을 내려 일본민족에 합동할 수 있다면 이는 조선인의 ‘영광’과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일본 혼고(本鄕)교회 목사이며 ‘천성의 웅변가’라는 에비나 단조(1856~1937)가 발행하는 ‘신진(新人)’ 1904년 7월호 사설이다. 1904년 7월은 그 해 2월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일본이 한반도를 석권하고 승세를 잡은 때다.

그 후 100년이 지난 2005년 3월 4일. 일본 우파 계열의 월간지 ‘세이론(政論)’에 고려대 한승조 명예교수의 다음 내용을 요지로 한 기고문이 실렸다.

“필자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은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하는 이유의 하나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혹은 문화적인 루트가 같은 점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민족 문화가 일제식민지 통치기간을 통해 보다 성장, 발전, 강화되었다. 한국의 역사나 어학, 문학 등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세워준 것은 오히려 일본인 학자와 그들의 제자인 한국인이었던 것이 아닌가. 일본지배는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조기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일본 통치 35년간 일본에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고 꾸짖거나 규탄, 죄인 취급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명예교수는 보도 3일 후에 명예교수직과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직을 자진 사퇴 했다. 한승조 전 명예교수는 1930년생. 1967~95년까지 고대 정치학과, 강사, 교수를 지낸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다. ‘많이 배우고 오래 가르쳤던’ 교수다.

많은 신문이 지적하는 것은 한 씨의 일제 식민에 대한 역사인식의 ‘망동(妄動)’의 황당성을 든다. 일제 식민정책의 최대 모순인 동화(同化)론의 전제가 되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혹은 문화적 루트가 같은 점’(同種同文)을 든 점이다.

바로 동문동어(同文同語), 일선동조(日鮮同祖)론은 일본의 식민 정책인 ‘조선민족의 일본혼(魂)화’를 위한 동화 정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한씨가 태어난 1930년, 창간된 동아일보 4월 20일자 사설은 동화정책에 대해 ‘축복’이나 ‘감사’를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오호라 동화정책이여, 너는 너의 내용과 행위의 시비곡직과 선악가부도 성찰치 아니하고 사뭇 무력과 금권만 믿고 우리 이천만의 무고한 동포로 하여금 입을 막고 혀를 봉하고 손을 묶고 발을 잘라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침묵케 하며 대양과 같이 유순케 하였도다. 너가 우리 이천만에 대하여 가한 독학과 독해를 말하면 너의 죄는 참으로 크도다. 동화정책 너의 죄가 어찌 경하다 하며 또 너의 죄가 어찌 조선인에게만 미쳤다 하리오. 너는 조선인에게도 죄인이 되는 동시에 일본인에게도 대죄인이 되는도다. 너는 실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대한 이간자이니 너는 동화(同化)정책이 아니라 동화(同禍)정책이로다.”

한씨는 30여년을 고려대학에서 가르쳤지만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작년 8월 15일에 나온 한상일 국민대 교수의 “제국의 시선 - 일본의 자유주의 지식인 요시노 사쿠조와 조선문제”를 읽었다면 이런 황당한 역사 인식을 일본에 기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상일 교수는 고대 행정학과를 나온 한씨의 후배이며 20년 연하이다. 미국 클레아몬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씨와는 고대 정경대 교수를 함께 지낸 적도 있다. 한상일 교수는 일본의 자유주의적 지식인이며 식민조선에 대해 민본(민주)적 자치정부를 주장한 도교대 정치학 교수이며 당대 논적인 요시노 사쿠조를 통해 일본 지식인들의 조선에 대한 역사인식 식민지관을 살펴 왔다.

이에 대한 결론은 그들은 조선이과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일본인이 아니며 ‘일본혼’을 가진 동화건 자치건 그들 ‘제국의 시선’ 내에서 조선을 식민국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상일 교수는 한씨가 문제의 동종동문(同種同文), ‘인종적, 문화적인 같은 루트’를 구상하기 훨씬 전에 일제의 조선인 동화정책이 내포한 문제를 지적했다.

또 “동화정책은 일본의 조선합병을 ‘제국적 종속이 아니라 민족적 통합’으로 미화했고, 조선인의 일본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고 ‘속임수’였을 뿐”임을 통찰했다.

전 고려대 명예교수였던 한승조씨는 한상일 교수의 ‘제국의 시선’을 읽기 바란다. 그리고 반박이 있다면 같은 루트(同文同種)를 찾아 더 배우기를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