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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의 ‘험지’와 대선주자급 중진의 ‘전략지역’ / 김우석(행정대학원) 객원교수

<김우석의 이인삼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 버리고 ‘선전포고’
‘자기희생’과 ‘정치적 타협’ 없는 인사는 ‘개혁의 주체’ 아니다


▲ 21대 총선이 100일 남겨진 지난 6일 오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이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주 금요일, 자유한국당 장외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평일이기에 과거 장외집회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못했다. 집회 전에 한국당 관계자에게 들은 얘기다. 주말 집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긴 하지만, 한국당이 주장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평일 오후로 집회시간을 잡았다고 했다. 한국당 만의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특별한 메시지가 황교안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연동형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막지 못해, 한국당 비주류에서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세간에는 황 대표가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었다. 황 대표는 연설 말미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스스로 ‘수도권 험지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비주류들은 황 대표에게 ‘험지에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사지로 몰아 리더십을 흔들어 보겠다는 심사였던 것 같다.

당직자와 황 대표 측근들은 흔들렸다. 황 대표가 험지에 출마해 떨어지기라도 하면, 총선에서 한국당이 승리를 하더라도 황 대표의 대권 꿈은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정당의 존재이유는 ‘정권창출’에 있다. 황 대표가 낙마하면 ‘한국당 정권창출’의 희망은 다시 안개 속에 갇히게 된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런 상황을 예상한 국민들은 총선에서 한국당에 표를 주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결국 황 대표의 험지출마는 당과 황대표 개인 모두에게 도박이 되는 것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황 대표의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당 대표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비례대표 후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전국유세를 도는 것이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비례대표 14번에 출마했는데 딱 13번까지 당선돼서 낙선한 바가 있다. 이런 희생이 미담이 되어 김대중 총재는 향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의원직과 관계없이 ‘호남야당의 영원한 수장’이었다. 직위보다 개인의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비례대표 순번이나 국회의원 직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황교안 대표는 그런 세와 상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떨어지면 끝’이 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둘째, ‘불출마선언’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보수진영 통합을 이루고 총선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이다.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의(大義)를 추구하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원로들을 비롯해 보수진영 많은 사람들이 요구했다. 이 또한 첫째 선택의 한계를 답습한다. 당에 세(勢)가 없고, 국회의원직도 없는 사람이 한국당계 정당에서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수진영에 대선후보가 사라진 상황에서 당과 진영은 칩거하던 황교안을 불러냈다. 그러나 그가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어지면, 총선에서 불쏘시개 이상이 되지 못한다. 아니 불쏘시개도 못하게 된다.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니, 공허한 헛바람이 되고 만다. 과거 한국당계 정당이 그랬듯 멀쩡한 사람을 불러내 바보로 만드는 일이다. 한마디로 자원낭비고 자멸행위다.

게다가 이는 비당권파의 ‘비대위 시도’와 맥이 닿아있다. 지난 3년 동안 지속된 ‘지도체제 흔들기’ 고질병이 다시 도지는 것이다. 과거 그런 ‘흔들기’에 낙마한 피해자들이 다시 가해자에 합류해 현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 스스로 좀비가 되어 불치병을 전염시키는 것이다.

셋째가 ‘험지출마’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예비후보 등록일에 맞춰 대선후보급 중진들에게 ‘전략지역 출마’를 권유했었다. 그 권유를 공식적인 결의문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과거와 같이 ‘험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험지’는 당선이 불가능한 지역이고, ‘전략지역’은 보통후보들은 이기기 힘들지만 대선후보급이면 당선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들이 전략지역에서 선전을 하면 주변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런 영향이 쌓여 전체판세에 반영된다. 바람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중량급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 큰 꿈을 위해 결단을 내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한국당에는 그런 중량급인사는 이미 없었다. 있다 해도 더 이상 희생할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원내에 진입하겠다”는 욕심이 앞선 사람들만 가득하다.

‘대선주자급 중진’이라는 기준이 모호할 수 있다. 그 평가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선후보를 지냈고 대선후보의 꿈을 가진 인물도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당에 혜택을 입었다면 이제는 결단을 할 법도 하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당이 그에게 원하는 지역은 당선불가능한 지역도, 개인의 지지기반이 없는 지역도 아니다. 원래 의원을 했던 지역이고 그곳에서 바람을 일으키면 수도권 일각에서 작지 않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이다. 거기서 성공하면 대선주자로서 입지도 탄탄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릴 그릇이 못되는지 한국당 후보면 ‘말뚝만 꽂아도 이기는 지역’을 고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순진한 인사도 있다. 자신의 고향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했지만 당이 험지출마를 요구하자 깨끗이 접고 지지자들을 설득한 인사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직전 당권을 가진 대표(비대위원장은 비상시에 대표를 대신함)로서 충분히 고집을 부릴 수 있었다. 그는 대권을 꿈꾸는 인물로 대구시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대구에 연연하지 않았다. 더 큰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할 구국의 사명감 말이다.

황교안 대표가 마지막으로 결단을 내렸다. 스스로 험지에 가겠다고 했다. 이는 결단인 동시에 선전포고다. 무시하고 버티는 인사는 공천을 줄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에 호응하지 않는 지도자급인사에게 공천을 주어서는 안 된다. 황 대표가 제공한 마지막 기회를 잡고, 이번 총선에서 한국당의 어벤저스가 되어 당과 나라를 구해야 한다.

“‘혁명’은 무력으로, ‘개혁’은 자기희생으로, ‘정치’는 타협으로 해야 한다.” 지난 주 일요일 만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맞는 말씀이다. 지금은 무력으로 ‘혁명’을 할 때가 지났다. 정당은 ‘개혁’과 ‘정치’로 국가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는 ‘자기희생’과 ‘정치적 타협’에 익숙해야 한다. ‘자기희생’과 ‘타협’이 없는 인사는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 대상’이고 정치를 타락시키는 위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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