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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비무장지대 지뢰밭에 시를 심다 / 신대철(국문) 시집


[국민일보 2005-02-24 15:14]


집 전화도,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 2002년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로 제4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신대철(60·국민대 국문과 교수) 시인. 그가 세번째 시집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창비)를 펴낸 뒤 “볼 일이 있어 아내와 함께 잠깐 지방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출판사 편집자에게 남긴 채 집을 비웠다. 시집이 나올 량이면 웬만한 집안 대소사도 미루고 턱을 괴는 법이건만,그는 왜 슬그머니 집을 비운 것일까. 시집을 펼치는 순간,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이상 톨고이에 올라/우리 몸 한없이 광활해질 때/흔들리는 발 저 밑에는/목조 건물 하나 어둡게 아른댄다//(중략)6·25때 북한 전쟁고아들 살던 집/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몽골에 남은 아이들/내 나이쯤 되었을 그 아이들/할흐족 사이사이 유민으로 떠돌다/옛 기억 되살려 서성이다 가는 집”(‘북한 전쟁고아 수용소1’ 일부)

‘자이상 톨고이’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전망대 이름. 전망대 인근의 북한 전쟁고아수용소를 둘러본 그의 소회는 이렇게 이어진다.

“평양에서 머나먼 울란바토르까지 쫓겨온 아이들,밤마다 꿈꾸는 게 무서웠던 아이들,손 잡고 나란히 잡들면 하나씩 악몽 속으로 끌려갔다 다시 한번 폭음 속에 화상 입던 아이들,솔개 내리쏟아도 한없이 고요해도 공포에 떨던 아이들”(‘북한 전쟁고아 수용소2’ 일부)

이렇듯 6·25 전쟁으로 말미암은 ‘디아스포라’(민족적 이산)를 현장감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은 자꾸 개인적 감성으로 축소,재편되고 있는 우리 문학의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시집에는 군복무 시절 최전방에서 북파공작원을 인계받아 북으로 보냈던 시인의 뼈아픈 기억이 값진 서정성으로 빚어지고 있다. “물안개 속에 떠오른 공제선이/문득 남북으로 갈라선다//땅속으로 잠복호 밀어넣고/얼핏 눈에 감겨오는 푸른 강줄기/목에 가슴에 두르고/물안개에 싸여 돌아오는 새벽”로 시작하는 제목시에는 북파 임무를 포기하고 귀환하는 공작원을 맞아들여 벙커로 귀환시키는 시적 화자가 등장한다. “정지!하고 소리쳐도 서는 시늉만 한다. 손도 올리지 않고 흰 손수건도 없이 머리 숙이고 흐느적흐느적 걸어 올라온다.(중략) 우리는 벙커 속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불빛 등지고 침상 모퉁이에 앉는 그대”

68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한달만에 학사장교로 입대,비무장지대에 배치되었다. 직책은 GP(감시초소) 책임자. 현장에 부임하던 날,주변 지형을 설명하던 중사가 발목지뢰를 밟고 눈앞에서 몸이 찢긴 채 죽어가자 대검 하나로 지뢰들을 제거하고 들어가 시체를 들쳐 업고 나왔다. 이후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북파공작원이 북한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주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중하는 일. 당시의 충격과 고통은 제대 후에도 그를 악몽으로 내몰았다. 일년에도 서너차례 이사를 할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했고 한동안 산에 갈 수 없었다. 산길을 걸으면 자꾸 지뢰를 밟을 것 같은 공포감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보냈다는 죄의식으로 시를 쓰지 못하다가 어느 한 순간,핏빛 울음을 울컥 쏟으며 시가 터져나왔다. 절필 23년만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적 서정은 이제 새로운 봄을 예고하고 있다. 해방 직후 일찍 아버지를 잃고 화전민으로 살았던 유년의 기억으로 한국 전쟁의 상흔과 개인의 특수한 체험을 말끔히 씻어낸 시편이 눈 시리도록 아름답지 않은가.

“흰구름 밑으로/우리도 돌아오는 중일까요/물소리 흔들며 흘러온 목소리들/아르방 다리 부근에서 잔잔해지고 있습니다”(‘물돌이동’ 전문)

그렇다. 잔잔해 지기 위해 그는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집을 비운 것이리라. 문득 흰구름 밑으로 돌아오는 무수한 발자국소리. 귀가 환히 열린다(신대철·창비).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