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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황우석 벤치마킹 하기 / 김형준(정치)교수
[한겨레 2005-05-24 20:03]


한국 사회에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하고 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은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치료용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생명과학 혁명에 성공했다. 작년에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 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한데 이은 과학적 쾌거이자 세계적인 업적이다. 황 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주관한 미국의 새튼 교수는 “영국의 산업혁명에 비견될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났다”면서 “한국, 그리고 한국인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감격했다.
인류에게는 희망을, 한국 국민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준 자랑스러운 혁명의 이면에 부끄러운 한국 정치가 숨어 있다. 정치가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 주고 있다. 한국정치가 국민에게 고통과 불안이 아니라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불굴의 ‘황우석 정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우선 황 교수팀의 철학과 혼을 배워야 한다. 이들의 업적은 단순한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일어낸 쾌거이다. 한국 정치도 저급한 ‘난닝구-빽바지’ 논쟁이나 한반도 핵 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대선을 염두에 둔 인기 경쟁에 나서는 무모한 발상에서 벗어나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과 민족 안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확고한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국민 우선의 강한 행보를 해야 할 것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 한다”는 불광불급의 도전 정신도 본받을 만 하다. 황 교수팀의 성공은 연구를 위해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계란으로 바위를 깨고 하늘을 감동시키는 심정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한국 국회의 연평균 본회의 개회일을 보면, 13대 국회 41일, 14대 국회 42일, 15대 국회 54일, 16대 국회 53일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미국 의회가 연평균 144일, 영국 의회가 170일 본회의를 연 것에 비교한다면 매우 부끄러운 수치이다.

4월 임시 회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외유에 돌입하는 의원들은 반성해야 한다. 올해 의원 외교 활동으로 배정된 국회 예산은 30억원 이상이고 전년 대비 20%가 증가한 수치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부가 100명이 넘는 황 교수 연구팀에게 올해 지원하는 예산의 규모가 2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가히 충격적이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밤낮을 가리지 말고 국회를 대낮같이 밝혀 민생 경제 잡기에 주력해야 한다.

황 교수팀의 끊임없는 자기 반성의 과학 정신도 깊이 간직해야 한다. 과학의 생명은 철저한 검증이다. 검증 과정에서 잘못된 사항이 발견되면 연구자들은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즉시 수정한다. 여야 정치권은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과 청계천 재개발 비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상대 정당에 대한 비난과 공격만 있을 뿐 통렬한 자기 참회가 없다. 각 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허물을 스스로 밝히려고 노력하는 진솔된 모습을 보여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혁명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학, 도전, 반성의 정신이 살아 숨 쉴 때만이 가능하다. 자기 수정 메커니즘이 효율적으로 작동될 때만이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선천적 상생 결핍증’과 ‘만성적 권력 집착증’의 정치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