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평택공장 국유화 논란이 시작됐다 / 권용주(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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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의 시작은 1954년 설립된 하동환자동차제작소다. 주로 버스와 특장차를 제작했는데 1972년 상공부는 신진, 현대, 아시아, 기아 등 4개 기업을 제외한 군소 조립공장의 폐쇄를 결정했다. 이때 하동환자동차는 정부 권유에 따라 신진자동차와 업무 제휴를 시작했다. 제작은 하동환자동차가 하되 브랜드는 신진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하동환’에서 ‘신진’으로 명찰이 달라졌지만 경영은 변동이 없었다. 그리고 1977년 사명이 ‘동아자동차’로 바뀌고 1979년 경기도 평택에 공장을 마련했다. 공장이 들어선 곳은 평택시 칠괴동(七槐洞)이다. 동네 이름인 칠괴동은 마을 앞 우물가에 느티나무 일곱 그루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쌍용차 사람들은 칠괴를 일곱 개의 괴물로 비유하곤 한다. 1979년 자리를 잡은 후 무려 일곱 번에 걸쳐 주인이 바뀐 우여곡절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평택공장 준공 2년 후 동아자동차는 신진의 거화자동차를 흡수했지만 특장차의 한계 속에 어려움을 겪다 첫 번째 주인이었던 하동환 시대를 접고 1986년 두 번째 주인으로 쌍용그룹을 맞이한다.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쌍용자동차는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등과 기술제휴하며 성장했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8년 대우그룹에 세 번째 주인의 자리를 넘겨준다.
당연히 일곱 번째 주인인 마힌드라가 전설의 마지막이 되길 바라지만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대주주의 지위를 흔들고 있어 안타깝다. 마힌드라가 당초 미래 제품 개발을 위해 쌍용차에 투자하려던 5000억원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지원금이 400억원으로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감염병 탓에 지난 4월 인도 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모든 자동차회사의 판매실적이 0대에 머무른 것 자체가 마힌드라의 생존을 위협했다. 더불어 무디스는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떨어질 것이란 예측도 내놓았다. 인도 자국은 물론 세계시장이 쪼그라들었으니, 쌍용차를 돌볼 여유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여덟 번째 대주주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르노자동차 지분을 일부 인수해 국유화를 유지한 것처럼 쌍용차도 그렇게 하자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국유화의 전제 조건은 경쟁력인 만큼 먼저 쌍용차 직원 전체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대주주가 되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근로자 전체가 경영에 책임지고 효율을 높이는 방안이다. 물론 효율이 오르지 못하면 당연히 국유화 등의 진전도 없다. 효율성이 낮은 곳에 국민 세금을 투입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더불어 국민적 합의도 어렵다. 물론 국내 전체 자동차산업에서 쌍용차의 비중이 높지 않은 만큼 국유화 자체가 오히려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노조를 중심으로 근로자들이 지분을 인수한 후 위기 극복에 성공한다면 쌍용차 국유화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뒤따라올 수도 있어서다. 게다가 지금의 자동차산업 경쟁력은 생산의 효율 경쟁으로 변모했으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누구를 탓할 때도,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인 만큼 쌍용차 직원 모두가 합심해 먼저 행동에 나서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야 할 때이니 말이다. 글_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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