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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시론] 국가, 민족 그리고 계급 / 조중빈(정외)교수

[중앙일보 2005-10-19 07:38]


국가, 민족 그리고 계급 이 셋 중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국가다. 정말 그럴까? 따져 보자. 우선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민족이 같이 사는 길이라면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같은 민족을 조금이라도 비판할 양이면 왕따를 각오해야 한다. 계급의 이익은 어떠한가? 두말할 필요도 없다. 97%의 가지지 못한 자와 3%의 가진 자 사이에서 정부가 앞장서 가진 자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국가의 이익은 누가 챙기나?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끌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좋게 봐서 촌스럽고, 의심하면 색깔론자가 된다.

이해가 간다. 우리는 '국가 과잉'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국가라고 하면 아직도 고문과 테러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 기억이 말끔하게 정리될 때까지 한동안은 국가 없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리라. 국가가 우리의 마음속에 실체로서 자리 잡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고 있는 현실을 독재정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국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말하는 국가와 사뭇 다르다. '글로벌' 국가는 소위 '근대 국가'를 말하는데, 이는 서양 사람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개념이다. 그 요체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근대 국가에서는 국경이 중요해진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려 할 때 출입국 비자 없이는 꼼짝 못하는 것이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국민이다. 그 국경 안에 거주하는 자는 모두 국민이다. 이런저런 이유(민족이든, 언어든)로 '국민 하기' 싫어도 국민이 돼야 한다. 아니면 지구를 떠나야 한다.


이런 국가가 쉽게 유지될 리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국가의 통제 장치다. 이를 멋있게 말해 "국가는 폭력 장치를 권위적으로 독점하는 것"이라 가르친다. 그 폭력 장치란 다름 아닌 군대.검찰.경찰, 그리고 정보기관이다. 이것 없이 근대 국가가 유지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데 '권위적'이란 단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 장치들이 무턱대고 폭력을 휘두르면 국민이 목숨을 부지할 재간이 없으니까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행사하라는 것이다. 기본권.자유주의.민주주의 등의 사상이 그렇게 해서 배태된 것이다. 생각보다 살벌한 것이 자유주의고, 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의 법을 어긴 시민을 대하는 그들 경찰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시민이 경찰을 때릴 수는 있어도 경찰이 시민을 때리면 난리가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어떻게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안팎은 이렇게 다르다.


이처럼 냉혹한 것이 근대 국가인데 우리나라 국민은 자비로운 국가에 살고 싶어 한다. 독재정권이라서 국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국가 그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런 국가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지난 20여 년간의 민주화 투쟁을 돌이켜 볼 때, 이러한 틈새가 있었기에 국가보다는 민족을, 국가보다는 계급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점차 강화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족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가 곧 민주적 가치로 여겨지는 현실도 근대 국가가 학습되지 않은 증거다.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갈등, 강 교수 발언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기본권.민주적 통제.민족 통일 등의 화려한 수사가 난무하지만 국가는 소멸돼 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글로벌시대에도 국가는 가깝고, 민족은 먼 것이 현실이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이 통일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비로운 국가의 꿈도 냉혹한 국가를 세워야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