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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디자인 목마른 기업 학교 문 두드리세요 / 정도성 조형대 학장 인터뷰
'산학 협력 성공사례' 국민대 정도성 조형대학장
학생 작품 들고 기업 누비며 홍보
'러닝머신' 등 히트 뒤 제안 줄이어

[중앙일보 2006-04-04 22:10]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시장을 여는 열쇠다."
디자인 산학 협력의 메카로 불리는 국민대 조형대학의 정도성(48.사진) 교수가 강의 시간에 강조해 온 말이다. 1995년 모교에 부임해 지난달 조형대학장이 되기까지"디자인을 미술의 일부로 묻어둬선 안된다"며 산업 현장을 누벼왔다. 제자들의 작품을 홍보물에 담아 기업을 찾아다니며 써달라고 졸랐다. 그가 꺼내든 수첩을 보니 한 주 11시간의 강의 외에 매달 10건 넘는 업계 접촉 일정으로 빼곡했다.

땀은 곧 빛이 됐다. 조형대학 산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생들이 운동기구 제작업체인 태하메카트로닉스와 합작해 2004년에 내놓은 러닝머신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12억원 어치가 팔려나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성공 디자인에 주는 SD마크를 받았다. 유명 중소기업과의 제휴가 줄을 이었다.지난해 기능성 의자 제작업체인 듀오백코리아와, 지난 2월에는 디지털도어록 제조회사인 아이레보와 손잡았다.

대기업에서도'러브콜'이 오지만 그는 중소업체를 고집한다."학생들의 풋풋하고 거침없는 창의력을 실현하기에는 안정을 추구하는 대기업보다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빠르고 모험을 저지를 수 있는 중소기업이 낫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디자인에 목마른 곳은 중소기업 아닌가. 대기업 하청에서 벗어나 자립하려면,나아가 대-중소기업간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디자인이라는'열쇠'가 필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디자인으로'보이지 않는 시장'의 문을 연 사례로 아이레보의 디지털도어록'게이트맨'을 꼽았다. 디지털 암호기술도 획기적이지만 색다른 자물쇠 디자인이 더해져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정 학장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어린 마음이 민족차별로 상처받을까 염려한 부친은 그를 일본인으로 키웠다. 중학 2년 때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고 이듬해 홀로 한국에 왔다. 국민대 졸업 후 다시 일본행. 각고 끝에 일본의 유명 디자인 회사인 도요구치 디자인연구소의 핵심 디자이너가 됐다. 88년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은"후배를 길러달라"는 은사 김철수 교수의 부름 때문이었다.95년에는 한국 여성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그는"기업인들이 명색이 전문가인 내 의견을 듣기보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성향이 강해 당혹스러웠다"고 산학협력 초기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정 학장의 눈에 우리 중소업계의 디자인 마인드는 걸음마 단계다. 중소업계가 정부나 대기업의 디자인 컨설팅을 받는 인프라도 일본보다 뒤졌다. 그는 특히"수요나 시장의 변화 흐름을 파악할 자료를 수집.분석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과학적 분석으로 제품 구상 단계부터 숨겨진 소비자 욕구를 알아내야 디자인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디자인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학교 예산과 정부지원금 54억원과 10여 업체의 협찬으로 빛을 본'UIT 디자인 교육원'은 이런 발상의 결과물이다. 사물을 보는 시선의 궤적을 파악하는 아이트래킹 시스템, 프로그램 한 카피 당 2억원이 넘는 소프트웨어 '아리아스(Alias)'전용 교육장,각종 모형과 금형 제작설비를 갖췄다. 이 곳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스케치를 정밀한 실물 형태로 만들어 본다.

그는 열쇠라는 말을 또 썼다."미래 한국 산업의 열쇠가 디자인 과학도들에게 있어요."

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