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럽 순방을 마쳤다. 얼마 전에 발표한 대관람차 ‘서울링’의 원본에 해당하는 영국 런던아이를 방문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이후로 가는 도시마다 랜드마크 건립 계획을 발표한 건 의외였다. 독일 함부르크 유명 공연장을 방문해 서울 여의도공원에 제2 세종문화회관을 짓겠다고 했고, 덴마크에 가서는 한강에 부유식 수영장을 만들겠노라고 했다. 놀이동산에 처음 놀러 온 시골 소년이 신기한 놀이기구들을 사달라고 조르는 느낌이어서 안쓰럽기까지 했지만 오해였다. 보도에 따르면 건립 계획은 이미 세워져 있었고 유사한 유럽의 현지 랜드마크에서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앞뒤가 바뀌었으니 다행이지만 이 기획 또는 연출은 싱겁고 실망스럽다. 일종의 유럽 그랑 투어를 통해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인 듯하지만 결국 관광객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랑 투어는 17~18세기 유럽, 특히 영국 귀족 자제들의 교양수업 여행이었다. 여행단이나 1년 넘는 일정이 간단치 않게 대규모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동차 이름에도 GT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수십명의 일행과 함께 영국을 출발해 프랑스에 도착한 젊은 귀족은 몇 달간 머물며 프랑스어와 사교 에티켓을 익혔다. 이후 다양한 경로로 이탈리아 도시로 향했다. 이때 유럽 도시들은 이 부유한 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도시를 가꾸고 랜드마크에 해당하는 건축물을 지었다. 일반적인 경로에서 벗어날수록 노력은 더욱 치열해졌다. 도시 규모나 경제 여력을 넘어서는 대형 구조물들이 경쟁적으로 세워진 것 또한 이때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여행객은 고전 건축을 직접 경험하며 건축 언어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귀국길에는 유명 건축물의 모습을 담은 판화집이 필수 아이템이었다. 이렇듯 그랑 투어는 시각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유럽 내 건축 교류를 활발하게 했던 동인이 됐고 당대 신고전주의가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수백년 전 문화 변방이었던 영국 도련님이 가졌을 법한 느낌으로 경외와 감탄으로 유럽 도시를 여행하고 있다면 실망이다. 미국 디즈니랜드나 라스베이거스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유럽 도시에 가서 해야 했을까? 유럽 도시에서는 랜드마크보다는 시민의 일상적인 삶을 체험하는 일을 해야 했다. 유럽 도시에서 배워야 할 점은 일상 도시 공간의 위대함과 지속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 시장이 최근 발표한 커다란 변화의 정책이 아파트 층수 제한 완화인 점을 생각해보면 모순적이다. 끝없이 녹지가 펼쳐지고 초고층 건물에서 자동차가 미끄러져 나오는 광경을 도시적이며 선진적인 삶의 형태로 오해한 정책적 결과라고 본다. 시장이 그리는 도시는 고층 아파트와 대관람차가 뒤섞인 듯해 우려가 인다.
다시 유럽을 방문한다면 민박을 권한다. 기술력도 있고 자본도 있고 설계도 잘하는데 그들은 왜 고층 아파트를 마다하고 나지막하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지 해답을 몸으로 찾아보기를 바란다. 왜 고층 아파트들이 쇠퇴해 슬럼으로 변했는지 찾아가 보고, 건물들이 빡빡하게 늘어선 거리로 나서 느리게 걸으며 도시 특유의 활기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걸어서 출근하고 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웃과 아침 인사를 나누며 아이를 키우는 유럽의 도시 생활을 구경이라도 해보기를 권한다. 대형마트가 아닌 서로 이름을 아는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고 이웃의 소식을 전하는 진짜 도시를 경험해 보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어떻게 자동차 없는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지 바게트 향기가 담긴 새벽 공기와 함께 느껴보기를 바란다.
랜드마크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이웃이 있는 시민의 삶이 진정한 도시 경쟁력이라는 유럽 천년의 기획을 몸으로 느끼고 돌아오기를 권한다. 요즘 유행한다는 낯선 도시 ‘한 달 살기’가 번쩍번쩍한 명소에서 대관람차 계획을 발표하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겠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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