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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직업의 세계]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한국인 최초 수석애니메이터 김상진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월트디즈니의 특별전이 미국, 호주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3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이곳에는 디즈니의 수석 애니메이터인 김상진 감독이 함께한다. 그는 15년이란 세월동안 디즈니의 아티스트로서 활약하며 영화 ‘타잔’ ‘볼트’ ‘치킨리틀’ ‘공주와 개구리’등의 많은 작품에서 그의 재능을 펼쳐왔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경제학과 출신이라는 것이다. 경제학도에서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의 한국인 최초 수석 애니메이터가 된 그. 자신의 꿈을 멋지게 디자인한 김상진 감독을 만나보자.

- 대학교를 다니실 때는 어떤 학생 이셨나요?

학과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조용하고 사고 안치고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주로 여학생들과의 미팅에만 관심이 있던 그런 학생이었죠.

- 지난 16일 초청강연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후배들은 어떤 모습 이었나요?

졸업 후 처음으로 학교에 가 보았습니다. 정말 못 알아보게 많이 바뀌었더군요. 건물뿐 아니라 학교 내에 흐르는 분위기, 어떤 기운이랄까? 많은 것들이 참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는 Disney Character Creation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다들 매우 흥미 있게 듣는 것 같아 좀 긴장되기도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한 학생이 제게 오더니 자기 삼촌이 저와 잘 아는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자신을 소개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거의 30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이지만 제 조카들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개인적인 경험담 같은 것을 좀 더 들려주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경제학도에서 애니메이터가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경제학을 원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림그리기를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했고 미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또 당연히 그리될 줄 알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색약(적록색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대에 원서도 한 번 못 내게 된 거죠. 별 생각 없이 좌절감은 좀 있었지만 학력고사 점수에 맞는 학교, 학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어서 선택한 전공이 아니었기에 학과공부는 당연히 제대로 할 리가 없었죠. 대학시절 내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갈망은 계속 있었습니다. 졸업한 후에도 그림과 관련된 직업을 계속 찾다 우연하게 본 신문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관한 소개 기사를 읽고 애니메이션 회사의 문을 두드리게 됐어요. 그것이 애니메이터로서의 시작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디즈니에는 어떻게 입사하시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시작한지 3년 정도, 같은 회사에 있던 캐나다인 수퍼바이져가 캐나다로 돌아가서 스튜디오를 세웠는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했어요. 토론토의 조그마한 스튜디오에서 6년 정도 일하다가 이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죠. 그때 마침 LA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설립됐는데 디즈니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디즈니와 드림웍스 양 사(社)에서 애니메이터를 구한다는 채용 공고가 나게 됐죠. 되든 안되든 ‘애니메이션의 본 고장에서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두 군데 모두 지원을 했는데, 먼저 연락을 준 곳이 디즈니였어요. 그리고 한 번의 실기 테스트를 더 거친 후 꿈에 그리던 디즈니에 오게 되었습니다.

- 현재 일하고 계신 디즈니는 어떤 곳 인가요?

정확한 명칭은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입니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만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가 가진 많은 계열사들 중 하나인데 그룹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죠. 디즈니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컨텐츠, 캐릭터들이 창조되는 곳이죠. 전 세계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는데 현재는 약 700명 정도가 됩니다.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 몇 년 간, 책으로만 접하던 유명한 애니메이터들, 아티스트들을 직접 스튜디오 안에서 보면서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게 제겐 꿈만 같았죠.

- 잘 알려진 ‘타잔’ ‘볼트’ ‘치킨리틀’에 이어 ‘라푼젤’까지의 캐릭터를 만드셨는데 캐릭터 구상과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제가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여한 건 '볼트'와 '라푼젤'입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실사 영화로 말하자면 배우 캐스팅하고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크립트를 읽고 등장인물들의 역할에 맞는 배우를 찾는 작업, 그것을 저는 그림으로 할 뿐이죠. 우선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파악 하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에 감독의 의도 역시 잘 파악해야 겠지요.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있고 감독의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벌 디자인으로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고 거기서 몇 가지의 아이디어를 추린 후 다시 좁혀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한 디자이너의 그림을 기초로 다른 디자이너가 자신의 스타일로 다시 그리기도 하고요. 보통 한 영화의 캐릭터 디자인은 최소한 1년 이상 걸립니다.

- 감독님께 최신작인 라푼젤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Glen Keane 이라는 분과 직접 같이 일할 수 있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제겐 매우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저의 5년의 노력이 들어간 영화이기도 하고요. 디즈니 영화의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했다는 뿌듯함 또한 느낍니다. 제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이 신데렐라나 피노키오, 라이온 킹 같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캐릭터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디자이너로서 그만한 보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영화 라푼젤의 남자주인공과 닮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라푼젤의 남자주인공 '플린' 과 닮았다고들 하더군요.(웃음) 글쎄요, 제가 보기엔 전혀 아니지만요. 플린이 훨씬 핸섬하죠!

- 감독님과 같이 훌륭한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군요. 100장 그리는 사람보다는 101장 그리는 사람이 더 실력이 나아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는 만큼 많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 그림들, 사진, 실물,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요!

- 앞으로 어떤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으신가요?

요즘 들어 예전에 비해 일에 대한 열정이 많이 줄어든 느낌입니다. 더 나이 들어도 어렸을 때의 열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요구되는 일인데 열정이 메마르면 아이디어도 메마르기 마련인거 같습니다. 오래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 마지막으로 국민대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졸업한 이후 날로 성장해가는 학교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민대를 졸업한 후배들을 만나면 새삼 뿌듯해지더군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제가 일하는 이 분야에서 많은 후배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 하는 후배님들을 위해서 한마디 하자면 무엇보다 즐겁게 학교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실력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큰 회사에 들어가 세계 각지에서 오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경쟁하려면 그들보다 실력이 좋아야하는 건 당연하겠죠?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급하게 어떤 성취감을 맛보려 하기보단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대 진학을 꿈꾸고 받은 색맹판정과 한국 광고회사 입사 후 1년 만에 받은 해고통보까지. 김상진 감독님의 이야기는 한 편의 파란만장한 소설 같다.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계시지만 그것을 이루기 전 까지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아왔을지 뒤돌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 자신의 꿈을 향해 내딛는 첫 걸음을 망설이는 자가 있다면 한걸음 뒤로 물러나 길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영화 라푼젤 속 모든 인물들이 이룬 꿈들처럼 국민*인들의 모든 꿈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