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국민대학교

국민인! 국민인!!
대기업 부속품 되기 싫어 샌드위치 만듭니다… 삼성전자 뛰쳐나온 이남곤씨의 창업기/이남곤(컴퓨터응용전공 00) 동문

                                           

                

“2006년 달랑 토익 680점으로 삼성전자 입사가 확정됐다. 취업을 위해 영혼까지 판다는 요즘 대학생들에겐 꿈같은 얘기겠지만 2006년엔 정말 그랬다. 기업들이 R&D(연구개발) 인력을 확충하는 시기에 막차를 탔다. 그때는 너무나 기뻐서 몰랐다. 삼성맨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이남곤씨 블로그 Gony’s Style Story 중에서)

부속품 같은 회사 생활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이던 2005년 가을 이남곤(30)씨는 삼성전자 인턴사원이 됐다. 가끔 회사가 마련한 특강과 워크숍에 참가하고, 이듬해 봄 면접시험을 통과해 입사가 확정됐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복합단말기개발팀, 그러니까 스마트폰 개발 부서에서 일을 시작한 건 2007년 초다. 옴니아프로 같은 수출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뼈 속까지 엔지니어”라는 사람이 세계 일류 전자회사의 연구개발 일자리를 지난 3월 박차고 나왔다. 3년 3개월 만에.

-왜 그랬어요?(이걸 물어보려고 18일 찾아간 곳은 서울 화양동 건국대 앞 작은 레스토랑이다)

“갑갑했어요. 트렌드에 관심이 많아서 블로그나 트위터를 즐겨 하는데, 자연히 이런 스타일의 폰은 어떨까, 이런 서비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아이디어가 생기잖아요. 그런 걸 회사에 얘기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업무가 어떻게 돌아갔던 거죠?

“이런 식이에요. 새 휴대폰 만들라면서 기획안이 개발팀에 와요. 이런 기능 추가해라, 빼라 하는데 앞뒤 설명이 없어요. 그 기능이 왜 필요한지, 시장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뭔가 창의적인 게 나올 텐데…. 다들 일이 오면 ‘어, 왔네’ 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요.”

-건의를 해보지 그랬어요.

“(웃음)그럴 분위기가 아니에요. 삼성전자는 똑똑한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 회사예요. 그런데 밑에서 아무리 열심히 토론하며 만들어도 윗분 한마디면 모든 게 뒤바뀌는 곳이죠. 경직된 수직구조. 선배들 중에 애정 갖고 재밌게 일하는 사람 별로 안 보였어요.”

그의 삼성전자 이야기는 꽤 신랄했다. 창조와 혁신의 삼성이라는데 자신이 본 것은 ‘관리의 삼성’이었다거나, 그래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1등을 남보다 빨리 따라 하는 2등)란 소리를 듣는 것 같다거나, “이달은 무조건 전원 B타임(4시간 연장근무) 찍어” 하는 지시가 내려지는 곳이라거나….

이씨는 홀어머니를 모시는 가장이다. 대학 때부터 생활고는 톡톡히 경험했다고 한다. 등록금은 대출 받아 냈고, 늘 아르바이트를 했고, 점심 못 먹는 날도 있었다. ‘삼성’이란 타이틀과 안정된 수입을 버리는 일, “많이 겪어봐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는 말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역시 공모자가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라는 김태환(30)씨.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던 그도 “매달 회사가 꽂아주는 월급에 매달려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부속품 같아서 싫다”는 부류다. 둘은 나란히 사표를 내고 창업을 하기로 했다.

박원순을 배우다

먹는장사를 택한 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다고 판단해서다. 두 사람이 그렸던 ‘창업 시나리오’는 이렇다. 폴란드 출장 때 먹어본 케밥 정말 맛있더라, 미국 뉴욕에선 치킨라이스 노점에 줄이 100m씩 서 있던데, 아침 출근길 김밥 아줌마는 한두 시간 만에 다 팔고 가더군, 우린 블로그와 트위터 인맥이 꽤 두텁잖아, 깔끔한 요깃거리 개발해서 소셜미디어로 홍보하면… 대박 나겠다!

이 그림의 허점은 3월 29일 드러났다. 거리 장사를 시작한 첫날, 닭가슴살과 채소를 또띠아로 말아 만든 랩 샌드위치 70개를 들고 오전 6시 서울 시청역 앞에 나갔다. 길바닥에 간이 테이블 놓고 책상보 덮고 샌드위치를 진열했다. 출근행렬이 끝을 드러내고도 한참 지난 오전 10시까지 4개밖에 팔지 못했다. 이날 판매량은 모두 21개. 10개는 친구에게 강매했고, 1개는 여호와의 증인 아줌마가 전도하려고 사준 거니까 순수 판매량은 10개다.

준비는 완벽했다고 자부한다. 맥도날드 맥모닝 세트, 뚜레주르 텐더치킨 샌드위치 같은 ‘경쟁상품’을 아침마다 사먹으며 개발한 레시피에는 노랑과 빨강 파프리카, 두툼한 토마토, 살짝 절인 양파, 로메인 상추와 양배추, 올리브오일·바질·후추로 양념한 닭가슴살, 크림치즈와 비밀 소스가 들어갔다. 이걸 또띠아 샌드위치 70개로 포장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이날 이씨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시청역에 가면서 은근히 1시간 만에 다 팔면 어쩌나 하는 한여름의 거위 털 파카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치킨 랩 샌드위치 맛보고 가세요∼.’ 3425번쯤 외쳤다. 맨 처음 2개 사간 손님은 참 호기심이 많은 분이라는 걸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남은 샌드위치 싸들고 이씨가 간 곳은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 사표 내고 창업 준비하며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희망제작소 소셜디자이너스쿨에 등록한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만든 8주 코스의 사회혁신가 육성 프로그램. 이날 저녁에도 강의가 있었다.

-그 강의는 왜 들으러 다닌 거죠?

“사표 낼 때 주위에서 많이 말렸어요. 그걸 무릅쓰고 나왔는데 평범하게 장사하긴 싫더라고요. 뭔가 다르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한번 ‘착하게’ 해보자 생각했죠. 사회적이고 친환경으로. 돈 벌면서 남에게 도움도 되면 반대한 분들도 이해하겠다 싶어서요.”

-뭘 배웠나요?

“박원순 선생님도 변호사의 길을 접고 계속 새로운 걸 하는 분이잖아요? 일단 내 선택에 대한 후회는 덜 하게 됐죠. 그리고 힌트를 얻었어요. 아직 돈도, 재주도, 노하우도 없으니까 이왕 시작한 창업 과정이라도 착하게 해보기로요.”

이후 한 달간 밤새워 채소 썰고 고기 찢어 샌드위치 만들고, 새벽부터 서울 강남역(장사가 더 잘될 것 같아 시청역에서 옮겼다) 앞에서 “치킨 랩 샌드위치 맛보세요∼.” 소리치고, 강의가 있는 저녁이면 희망제작소로 등교하는 일과를 반복했다.

매출? 정산해보니 겨우 인건비 정도 벌었다. 삼성전자에서 마지막 월급이 통장에 들어온 날, 임금인상분이 반영돼 생각보다 큰 숫자가 찍혀 있었다. ‘3초간의 후회, 그리고 1분간의 걱정’이 찾아왔다는 블로그 글에서 애써 담담해지려 한 노력이 읽힌다.

두 사람의 ‘사회적 창업’ 1단계는 창업 과정을 모조리 블로그와 트위터로 공개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걸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많이 팔든 못 팔든 매일 실적을 공개하고, “압록강의 중공군처럼 밀려왔다”는 각종 난관을 솔직히 털어놨다.

유난했던 4월의 늦추위가 조금씩 풀려갈 무렵, 트위터로 “내일 아침 8시 반까지 3개요” 하는 예약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사람이 트윗과 댓글로 관심과 조언을 보내준다. 이거… 잘하면 되겠는 걸.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착한 창업, EWAK

서울 화양동 11-16번지. 건국대 앞 로데오거리 귀퉁이 좁은 골목에 8평짜리 빈 점포가 있었다. 5월 1일 임대 계약을 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 거리 장사로 번 돈에 두 사람 퇴직금을 합쳤다. 이 공간에 샌드위치와 퀘사디아를 파는 레스토랑 ‘이왁(EWAK·Earth, Wind and Kitchen)’이 문을 연 건 6월 28일이다.

꼬박 두 달이나 걸린 데는 이유가 있다. “식당을 차리려면 너무 많은 소비를 하고 너무 많은 쓰레기가 생기겠더라고요. 그런 게 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거니까, 모든 과정을 재활용과 D.I.Y(Do it yourself)로 해봤어요.”

두 사람은 작업복 삼아 예비군복 꺼내 입고 분식점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망치 들고 달려들어 일한 시간 못지않게 동네를 어슬렁거린 때가 많다. 나무판자나 벽돌이 필요하면 누가 버린 거 없나 공사판을 기웃댔고, 테이블 5개는 철제 다리 구해다 합판 붙여 직접 사포질해가며 만들었다. 의자도 2만원짜리 중고품 사다가 페인트칠하니 제법 모양이 났다.

식기와 주방용품은 트위터로 마련했다. “컵과 그릇, 쟁반이나 냄비, 안 쓰는 거 기부하시면 샌드위치로 보답합니다.” 몇 차례 트윗을 올리니 주방이 갖춰졌다. 음식점이 생기면 으레 길바닥에 뿌려지는 홍보전단지. 이것도 쓰레기다. 미국인 친구 알렉스(26)가 카우보이 차림에 ‘EWAK 아시나요?’라고 쓴 널빤지를 목에 걸고 건대 앞을 누볐다.

이렇게 이왁이 문을 연 지 넉 달째. 수입은 두 창업자의 직장 시절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한다.(18일 인터뷰하러 가서 오후 1시 반부터 4시까지 앉아 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이씨는 “주로 저녁에 손님이 많다”며 웃었지만)

대신 그동안 나미라는 젊은 미술가의 전시회를 이왁에서 개최했고, 제3세계 어린이를 위한 탐스슈즈의 신발 기부 행사에 샌드위치와 주먹밥을 납품했다. 블로그로 이왁 창업 과정을 지켜본 한 네티즌은 경남 거제에서 찾아와 샌드위치를 먹고 갔다. 요즘은 아예 트위터 이웃들의 오프라인 아지트가 돼 가는 중이다.

-이만하면 성공한 건가요?

“시키는 일만 하지 않고 내 아이디어로 내 멋대로 해보는 데는 일단 성공했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서울에서 보증금 포함해 2000만원도 안 들여서 창업했으니 그것도 성공인 셈이고요. 아직 못한 건 돈 버는 거죠(웃음).”

이씨는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안철수 교수가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번엔 의사의 길을 접고 벤처 창업에 뛰어든 안 교수에게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합격하면 내년부터 이왁은 김태환씨에게 맡기고 다시 공부할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5000원짜리 포크롤리(돼지고기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주방에 들어가 돼지고기 굽는 모습에서 제법 주방장 분위기가 풍긴다.

원문보기 : http://news2.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242740&cp=nv

출처 : 국민일보                                             기사입력 : 2010.10.21 18:06